야근도 뛰었지만, 22살 청년 파산…시작은 학자금 대출이었다 [빚에 짓눌린 청년]

서지원 2023. 12. 20.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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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김모(22)씨가 법원에 개인회생을 신청하기까지는 성인이 되고 불과 3년이 걸리지 않았다. 집안이 넉넉하지 못했던 김씨는 대학 입학금부터 ‘부모 찬스’를 쓰기 어려웠다. 처음엔 아르바이트와 정부 지원금으로 버텼지만, 등록금과 기숙사비를 메우기 위해 결국 학자금 대출을 받아야 했다.

한번 진 빚은 인생 고비마다 올가미가 되어 김씨를 옭아맸다. 병원비와 월세방 보증금 등 목돈이 필요했던 김씨는 금융권의 '학자금 생활비 대출'과 '비상금 대출'에도 손을 댔다. 빨리 부채를 털고 싶어 직장에서 추가 근무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빚을 갚으면서, 생활비까지 감당하기엔 돈벌이가 크지 않았다. 씀씀이도 늘어나면서 결국 카드를 돌려막기 시작했고, 빚은 또 다른 빚을 내 갚았다. 약 3000만원 빚을 진 김씨는 법원에 제출한 개인회생 진술서에 “혼자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빚을 안고,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는 저를 발견했지만 제대로 된 방법을 찾지 못했다”고 했다.


청년 개인회생 신청 급증


김영옥 기자

빚에 짓눌린 청년층은 영끌족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대출로 부동산을 구매할 수 있다면 나은 편에 속했다. 취업난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들 중 부모에게 손을 벌릴 수 없는 사람은 사회 첫발부터 학자금과 카드빚에 시달려야 했다. 이 과정에서 사금융에 빠지며 결국 파산에 몰리는 청년도 많았다.

19일 서울회생법원이 집계한 개인회생신청 현황에 따르면 전체 개인회생신청자 중 30세 미만 청년의 비중은 지난 2020년 10.7%였다. 하지만 지난해 이 비중은 15.2%로 급등했다. 40대의 개인회생신청 비중이 2021년(29.9%) 대비 지난해(27.9%) 2%포인트 하락한 것과 비교하면 대조적이다.


학자금 대출 연체 1년 새 2배 넘게 늘어


생활고로 빚의 굴레에 빠지는 청년 대부분은 학자금 대출부터 손을 댄다. 학자금 대출은 통상 소득에 따라 갚을 수 있는 만큼 상환액이 정해지기 때문에 비교적 부담은 적다. 하지만 취업난이 길어지면서 이들 연체액 마저 치솟는 추세다.

실제 지난달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차주가 갚지 못해 회수하지 못한 학자금 대출은 지난해 274억8900만원으로 2021년(118억6200만원)과 비교해 131% 급증했다. 같은 기간 학자금 대출을 못 갚은 인원도 2218→4778명 115% 늘었다.


생활비·주거비 부담에 추가 대출


학자금 대출은 또 다른 부채의 시작이 된다. 앞선 김씨 사례처럼 학자금 대출이 있는 상황에서는 취업을 해도 원리금 부담에 실제 가처분 소득이 떨어진다. 적은 소득으로 생활비까지 감당하다 보면 다른 대출까지 손대는 경우가 생긴다. 특히 높아진 주거비용 등은 청년층에 추가대출을 압박하는 요소다.
차준홍 기자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발간한 ‘2021년 청년 사회·경제 실태조사’에 따르면 18~24세 청년들은 채무 발생 이유로 학자금 마련(68.8%)을 첫손에 꼽았다. 하지만 30~34세 청년들은 주거비 마련(68.9%)으로 인한 부채가 가장 많았다.

개인회생 전문인 황현종 더와이즈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학자금 대출은 상환 부담이 적은 편이라 개인회생을 신청하는 직접적인 원인인 경우가 드물다”면서 “졸업 후 취업을 해도 소득이 낮다보니 보증금이나 생활비를 빌리면서 빚이 계속 늘어나는 구조”라고 했다.


빚 부담 청년, 전세사기·사금융에 노출


생계형 청년 채무자들은 전세사기나 코인 사기, 사금융 등에 노출되기도 쉽다. 사회 초년부터 감당 못 할 빚을 지면서 신용도가 떨어져 제1금융권에 손을 벌리기가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법승 회생팀 관계자는 "신용대출 한도가 낮은 청년들이 '카드깡'이나 불법 사금융을 쓰다보면 순식간에 채무가 불어난다"며 "급여로는 돈을 벌 수 없다고 생각해 코인‧주식을 하다가 상담을 오는 청년도 다수"라고 했다.

실제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10월 지방자치단체에 접수한 전세 사기 피해(1212건) 중 약 70%(20대 21.5%, 30대 48.2%)가 청년층으로 집계됐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불법 사금융 채무자대리인 지원 신청자 73%도 20·30대 청년층이 차지했다. 채무자대리인 제도란 불법 사금융 피해자를 대신해 대리인이 채권자에 대응하는 제도인데, 이와 관련 신청자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피해자가 많다는 의미다.

서지원 기자 seo.jiwon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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