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전용대 (12) ‘나래선교회’ 열어 척박한 삶 속 방황하는 청년들 돌봐

최기영 2023. 12. 20.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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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집 앨범을 준비할 당시 나는 미용실을 하는 넷째 누나의 집 다락방에서 생활했다.

누나 집은 서울 독산동이었는데 나는 일부러 세 정류장 떨어진 가리봉 오거리에서 내렸다.

연습하며 거리를 걷다 보면 구로공단 쪽을 지나는데 그때마다 방황하는 청년들이 눈에 띄었다.

'주님, 저들이 주님 사랑을 알기 원합니다. 저들을 위해 사역할 수 있게 해주세요.' 나는 기도만 하지 않고 2집 앨범을 녹음하면서 그 청년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으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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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듯한 일상에 지친 구로공단 청년들에
먼저 다가가 하나님 만난 이야기 들려줘
서로의 마음 열고 나서 청년 사역 시작
전용대(뒷줄 왼쪽) 목사가 1994년 11월, 서울 구로공단에 있는 예배 처소에서 청년들을 위해 찬양을 인도하고 있다.


2집 앨범을 준비할 당시 나는 미용실을 하는 넷째 누나의 집 다락방에서 생활했다. 누나 집은 서울 독산동이었는데 나는 일부러 세 정류장 떨어진 가리봉 오거리에서 내렸다. 제법 긴 거리였지만 누나 집까지 걸어가며 길거리 노래 연습을 하곤 했다. 연습하며 거리를 걷다 보면 구로공단 쪽을 지나는데 그때마다 방황하는 청년들이 눈에 띄었다.

‘주님, 저들이 주님 사랑을 알기 원합니다. 저들을 위해 사역할 수 있게 해주세요.’ 나는 기도만 하지 않고 2집 앨범을 녹음하면서 그 청년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으러 갔다. 구로공단엔 낮에 일하고 밤에 공부하는 청년들이 많았다. 빠듯한 일상 속에서 개인 시간을 갖는 건 사치였다. 그렇게 일주일 내내 공장에서 같은 일을 하며 똑같은 물건을 만들다 보니 토요일이 되면 그간 쌓인 스트레스가 보통이 아닐 만도 했다.

그뿐이랴. 냉혹한 사회에서 그들의 삶은 척박하기 그지없었다. 열심히 일하고도 월급을 떼이는 경우도 허다했고, 일하다 몸을 다치면 제대로 치료를 받기는커녕 일당도 받지 못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주말마다 거리로 몰려나와 방황하는 것뿐이었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 이야기를 들려줬다. 온전치 못한 몸으로 공장일을 하다 쫓겨났던 일, 하루를 채우지 못하고 부당 해고당하기 일쑤였던 아픔들, 결국 술로 나날을 보내다 자살 기도를 네 번이나 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던 지난날들. 그 끝자락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지금은 찬양하며 행복한 나날을 살고 있다는 이야기. 그들은 내 이야기에 공감해줬고 나를 도우신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 했다.

서로의 마음을 열고 나서는 조그마한 장소를 빌려 찬양 모임을 시작했다. 선교단체 이름은 ‘나래선교회’였다. 제대로 걷지 못하던 내 모습, 제대로 날개를 펴지 못한 청년들의 모습을 털어내고 훨훨 날아가고픈 꿈을 이름에 담았다.

예나 지금이나 청년들은 그들의 청춘을 담아 뜨겁게 노래하길 좋아한다. 그들 중엔 찬양을 하다 하나님을 만나고 회심하는 청년도 있었다. 그런 청년들과 삶을 교제하며 찬양팀, 율동팀을 만들고 매주 토요일이면 청년들을 위한 찬양집회를 열었다. 구로공단에서 정기적으로 펼쳐지는 최초의 찬양집회였다.

우리의 찬양 소리는 한 공간에 머물지 않았다. 온 거리를 울렸고 그 소리가 거리로 퍼지니 그 소리를 듣고 또 다른 청년들이 점점 모여들기 시작했다. 모임이 점점 커지면서 감사함만 커진 건 아니었다. 고정 수입이 없었기 때문에 구로공단에서의 청년 사역을 계속하기가 쉽지 않았다.

‘주님, 재정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반드시 채워 주실 것을 믿습니다.’ 어느 날 당시 돈으로 30만원이란 큰돈이 후원금으로 들어왔다. 전주에 사는 한 부부였다. 감사하게도 3년 동안 매달 30만원을 보내주셨다.

한번은 외국 집회를 다녀오면서 그 부부에게 보답하고 싶은 마음에 작은 선물을 사서 보내드렸다. 얼마 후 한 통의 편지가 왔다. ‘우리는 드러나는 게 싫습니다. 하나님 영광을 위해 한 것인데 이렇게 선물을 받게 되면 그동안 한 일이 무의미해집니다.’ 아차 싶었다. 그날로 매달 이어지던 30만원 후원은 멈췄다.

정리=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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