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86 운동권 세대’ 종언 앞당길 송영길 구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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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봉투 수수 대부분이 이 세대…밑천 드러낸 도덕성
생활정치의 시대에 담론 제시 못 해, 이제 길 터줘야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의혹 등과 관련해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어제 구속됐다. 최대 수혜자인 그는 2021년 당 대표로 뽑힌 전당대회를 앞두고 6000여만원을 의원 등에게 살포하는 과정에 개입한 혐의를 받는다. 후원 조직을 통해 기업인 등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 7억여원을 받은 혐의도 있다. 구속을 결정한 판사가 혐의가 소명되고 증거인멸도 우려된다고 한 것을 보면 “이게 무슨 중대 범죄라고 지×을 하느냐”고 목청 높이던 그의 행태가 측은하기까지 하다.
그간 송 전 대표는 뉘우친 적이 없다. 프랑스 파리에서 체류하다 의혹이 나오자 민주당을 탈당했을 뿐, 귀국해서도 “캠프 일을 챙기기 어려웠다”며 무책임한 태도를 보였다. 녹취록이 공개되고 관계자들이 줄줄이 구속되는데도 검찰청사를 찾아가 회견을 하며 결백을 주장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향해 ‘건방진 ×’ ‘어린 ×’이라거나 “물병을 던져버리고 싶다”는 막말까지 쏟아냈다. 내년 총선 불출마 선언을 번복하고 최근에는 비례정당을 만들겠다고까지 했으니 참으로 몰염치다.
송 전 대표의 구속은 86세대(80년대 학번·60년대 출생·운동권 출신)의 민낯을 보여준다. 총학생회장 출신인 그는 1987년 출범한 전대협에 다소 앞선 86 운동권의 ‘맏형’에 해당한다. 2000년 민주당 공천으로 국회에 들어와 5선을 했고, 인천시장과 180석 집권당 대표까지 지냈다. 대통령 빼고 다 해봤다는 그가 도덕적 문제를 ‘별것 아니다’고 넘긴 것 자체가 이 세대 종언의 필요성을 보여준다. 민주화 이력을 발판으로 20년 이상 누릴 대로 누렸지만, 이들의 밑천이던 ‘도덕적 우위’는 바닥을 드러냈다. 이번에 금품 수수자로 지목된 대다수가 86세대다. 검찰 수사가 이어질 텐데, 스스로 고백하고 성실히 수사받아야 마땅하다.
소속 의원들의 돈거래에도 민주당은 당 차원의 사과를 하지 않는다.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 탓에 관련 의원들에 대한 조사조차 하지 못하는데, 86 운동권 출신들이 당의 요직에 있는 것이 배경으로 꼽힌다. 당내에서 “70년대생은 86세대 수발들다 시간 다 보냈고, 이젠 80년대생까지 위협받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이 그룹에서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이는 우상호 의원 정도다.
젊은 피로 정치권에 수혈된 청년들이 장년을 훌쩍 넘겼지만 달라진 시대에 맞는 새 담론을 내놓은 적도 없다. 진영 논리에 갇혀 있다 개혁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 세대 맏형 중 한 명인 김영춘 전 장관은 지난해 정계를 은퇴하며 “이제 민주주의, 통일, 기득권 타파 등 거대 담론의 시대가 아니라 생활정치의 시대가 됐다”고 했다. 통렬한 참회와 함께 각계 전문가 등 이후 세대에게 길을 터주는 게 이제 86세대가 우리 사회에 기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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