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비전포럼] “트럼프 당선되면 힘이 곧 정의인 세상 맞게 될 것”
미·중 정상회담 이후 2024년 세계 정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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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만 선거 결과 큰 영향 없을 듯
러·우 전쟁은 출구 찾기 본격화
중국, 분배보다 성장 우선할 것
트럼프 집권 대비한 정책 필수
」
트럼프 승리, 1930년대 혼란 예상
▶윤영관(사진)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 전 외교부 장관(발제)=새해 미·중 관계는 비교적 안정적인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다. 미국은 대선의 해를 맞았고 중국은 국내 경제의 어려움으로 서로 상황 관리에 협력해 갈 듯하다. 1월 초 대만 선거가 있지만, 누가 당선돼도 현상 유지의 틀을 벗어나진 않을 전망이다. 국민당이 이기면 양안 관계가 회복될 것이고, 민진당이 승리해도 가시적인 독립 추구로 상황을 악화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국과 유럽에 전쟁 피로증후군이 퍼지고 있어 2024년엔 종전 협상 등 출구 전략이 본격화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2차 대전 이후 미국이 주도해온 자유주의 국제질서와 미국의 리더십은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중동 사태는 전쟁 종결→가자 지구 거버넌스 확립→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공존 순서로 해결될 텐데, 관건은 바이든 미 정부가 대선 캠페인 와중에서 과연 어느 단계까지 진전을 이룰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미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되면 미 외교가 고립주의로 회귀하는 대신 중국과 러시아 등의 영향력은 확장될 것이다. 미국의 국제정치적 리더십이 커다란 타격을 받게 되며 세계 도처의 민주주의 역시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이다. 규범에 기반한 국제질서가 무시되고 ‘힘이 곧 정의’인 세상을 맞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극심한 보호주의와 함께 다른 나라 경제를 희생시키며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는 근린 궁핍화 정책이 만연할 것이다. 트럼프의 당선은 국제 질서를 1930년대의 혼란기로 밀어 넣을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에 대한 공세 거세질 듯
▶신정승 동서대 석좌교수, 전 주중대사(사회)=세계가 맞고 있는 변화의 시기 그 중심에는 미·중 경쟁이 위치한다. 특히 내년은 미 대선의 해로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중국에 대한 공세적 비판이 강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미·중 관계가 과연 안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 트럼프가 당선되면 동맹과 파트너를 중시했던 바이든의 외교 정책엔 어떤 변화가 생길까. 또 한반도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깊이 있게 논의할 필요가 있겠다.
▶이희옥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2024년은 4불(不) 즉 불확실성, 불안정성, 불명확성, 불가예측성의 한 해가 될 전망이다. 가장 큰 변수인 미 대선과 관련해 바이든과 트럼프의 세 가지 결정적인 차이점에 잘 대처해야 한다. 에너지와 기후 정책, 국제기구와의 협력, 동맹과의 파트너십 등이다. 트럼프가 당선돼 미국과 유럽이 기후나 에너지 등 미래 이슈에서 분열할 경우 한국은 가치외교 차원에서 어떻게 유럽과 접맥할지 고민이 필요하다. 트럼프는 또 바이든의 전략적 인내와는 다른 방식으로 북한에 접근할 수 있고, 동맹인 한국에 방위비 증액 등 더 많은 책임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의 선택지 좁히지 말아야
▶김재철 가톨릭대 국제학부 교수=미·중 경쟁과 관련해 ‘전략 경쟁’이나 ‘패권 경쟁’과 같은 용어 사용에 신중히 해야 한다. 최근 미국조차도 미·중 경쟁의 성격을 장기적이고 관리적인 경쟁이라 말한다. 전략 경쟁이라고 하면 미국이 중국을 봉쇄하고 높은 상호 의존을 해소해야 하는데 이는 가능한 일이 아니다. 미국 스스로에 자멸적인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한데 한국에선 이 말이 너무 일상화돼 있다. 이는 한국의 선택지를 너무 좁히는 행동이다. 미·중이 피할 수 없는 전략 경쟁 중이라고 본다면, 자연히 누가 승리하는지에 집중하게 되고, 미국이 이긴다는 전제에서 우리의 유일한 선택지는 결국 동맹 강화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김진호 단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대만 총통선거가 미·중 대리전이라는 말도 있지만, 사실 선거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미·중 양국은 손해 보지 않는다. ‘하나의 중국’을 말하는 국민당이 승리하면 양안(兩岸) 관계가 안정돼 미국이나 중국 모두 충돌의 위험이 사라진다. 대만의 분리독립을 추구하는 민진당이 이길 경우에는 미국은 대만을 중국의 압박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는 이점을 갖게 된다. 한편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입장에선 민진당을 외부의 적으로 규정하며 중국 내부를 단속하는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어서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다.
중국 자원 확보에 집중해야
▶문흥호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우리가 미·중 관계를 볼 때 이 두 나라는 수교 이래 늘 국내 정치적 이유로 만났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미·중은 만남 속에서 갈등을 조절하면서도 자기 원칙은 고수하는 일정한 패턴을 보여왔다. 대만 총통선거와 관련해선 대만의 선거 지형이 크게 바뀐 점에 주목해야 한다. 대만 유권자들은 미·중을 의식하기보다 각 후보에 대한 평가에 더욱 신경을 쓰고 있다. ‘국민당=친대륙’ ‘민진당=독립적’이라는 이분법적인 접근이 줄었다. 어떤 후보가 본인에게 더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지를 따지고, 후보의 능력과 자질을 중시하고 있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 소장=얼마 전 열린 중국 경제공작회의에서 먼저 세우고 나중에 부순다는 키워드 ‘선립후파(先立後破)’가 나왔다. 이는 내년도 중국 경제 기조가 분배 중심이 아니라 성장이 우선할 것임을 뜻한다. 중국 경제가 위기인가를 보려면 중국 내 미국 기업을 기준으로 봐야 한다. 테슬라·애플·포드·GM 등은 왜 중국서 떠나지 않나. 이런 기업들이 중국서 빠져나올 때가 진짜 위기다. 한국은 앞으로 중국을 중동처럼 볼 필요가 있다. 감정이나 이념, 가치를 논하지 말고 중동의 석유처럼 중국의 자원을 확보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트럼프가 당선되면 무형의 기술전쟁이 유형의 무역전쟁으로 바뀔 것이다. 트럼프가 말하는 미국 수입품에 대한 10% 관세 부과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폐기 등은 한국에 심각한 영향을 줄 것이다.
▶최필수 세종대 중국통상학과 교수=중국에선 미국의 제재 때문에 제한된 기술을 기반으로 한 ‘검약형 혁신’이 일어나고 있다. 진정한 혁신이 아니기에 수율은 낮고 원가가 높다. 그러나 시간과 비용을 투입해 계속 생산하다 보면 원가가 떨어지게 된다는 ‘학습 곡선(Learning Curve)’ 이론에 따르면 중국은 정부가 ‘인내 자본’을 계속 투입할 여력이 있어 결과적으론 원가가 낮아질 것이라고 본다. 미국도 한국과 대만 기업을 불러들여 자국에서 반도체를 만들겠다고 한다. 반도체 원가가 높지만 이를 상쇄하기 위해 미 정부가 보조금을 투입하고 있다. 이 역시 인내 자본이다. 미·중이 학습곡선 이론대로 원가가 떨어지고 공급망에서 각자 독립하게 되면 한국에 큰 위협이다.
중국의 반도체, 한국에 큰 위협
▶이하경 중앙일보 대기자=과거 소련의 경제력이 취약했던 미·소 냉전기에는 한국이 미국 편에만 서면 안보와 경제가 모두 해결됐다. 그러나 중국의 종합 국력이 강화된 미·중 대결 시대에는 어느 일방에 서면 문제가 발생한다. 미국도 중국을 관리하는 데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번 샌프란시스코 미·중 정상회담은 양국 관계가 대결보다 협력을 통해서 관리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신호를 보냈다. 한·미·일 협력만 잘되면 한국의 입지가 강화돼 중국이 한국을 더 존중할 거라는 생각은 지나친 낙관론이다. 한국은 한·미, 한·미·일 관계를 최우선시하되 중국과의 협력관계도 흔들리지 않게 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특히 트럼프 재집권 변수를 상정한 철저한 대비는 지금부터 이뤄져야 한다.
▶위성락 한반도평화만들기 사무총장=글로벌한 정세를 배경으로 한·중 관계를 봤을 때 지난 8월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담이 분수령이었다. 중국 입장에선 수교 이래 30년간 한국을 중국 쪽으로 견인하려 노력했는데 성과가 없었다고 인식할 수 있다. 중국은 강성 대응을 하고 싶지만, 그 경우 한국이 미국 쪽으로 완전히 돌아설 것을 우려하는 듯하다. 이런 중국의 느린 대응이 한국 내 오해를 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한국의 입지가 올라가 중국이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는 부정확한 인식이 생겨나고 있다. 종합적인 대미, 대중 정책이 필요한데 고위급 대화만 하면 다 해결될 것이란 흐름으로 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가 다시 등장한다면 한국의 대중 정책은 또다시 요동치게 될 것이다.
정리=사공관숙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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