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한동훈 사용법
내년 4월 22대 총선에서 ‘한동훈 사용법’을 놓고 여당에서 중구난방으로 의견이 분출하고 있다. 국민의힘에서 오랜만에 보는 토론이다. 지난 18일 국회의원·당협위원장 연석회의에선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총선을 지휘할 비대위원장에 추대할지 찬·반을 두고 33명이 발언대에 섰다. 개중 압권이 한 장관을 KBS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의 대미인 귀주대첩(1019년) 강감찬 장군에 빗대 “강감찬 장군을 임진왜란(1592년)까지 기다려서 쓸 수 없지 않으냐” “신상품 아꼈다가 헌 상품 되면 어디에다 써먹느냐”고 한 주류 찬성론자들의 발언이다. 한 장관이 서초동 검사 시절 얻었던 ‘조선제일검’ 별명이 여의도로 건너오면서 고려를 구한 강감찬 장군으로 격상된 느낌이다.
국민의힘의 입장, 특히 총선에 출마할 예비 후보자들의 급한 마음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윤석열 정부 중간평가 총선인데 대통령 지지율은 거의 30% 수준으로 떨어진 상황. 4년 전 100석을 간신히 턱걸이했던 21대 총선 결과가 재연될 수도 있는 위기인 건 분명하다. 그래도 한 장관을 공천권을 포함한 당의 전권을 쥔 ‘비대위원장’으로 쓸지, 총선용 얼굴이자 치어리더인 ‘선대위원장’으로 쓸지를 놓고 격론을 벌이는 모습은 볼썽사납다.
정작 여당이 왜 주권자 국민의 마음, 민심에서 멀어진 건지 위기의 원인을 따져보고 적절한 대안이 무엇인지 찾는 토론은 철저히 생략됐다. 모두가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2위인 한 장관이 하늘이 내린 금동아줄이라도 되는 마냥 ‘공천’과 ‘표’를 한꺼번에 몰아주기만 바란다. 국민의 대표가 거저 되겠다는 심보이자 ‘용산 바라기’가 ‘한동훈 바라기’로 바뀐 것밖에 없다.
여당의 토론에서 또 하나 빠진 건 현재 내각 멤버이자 국민의힘 당원도 아닌 한 장관 본인 생각이다. 지난 13일 김기현 전 대표의 전격 사퇴 이후 한 장관은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여당의 차기 사령탑으로 부상했다. 그는 일주일 만인 19일에야 “제안을 받은 적 없어 말할 게 없다”면서도 “세상의 모든 길은 처음에는 다 길이 아니었다”는 비대위원장을 수락할 듯한 묘한 발언을 했다.
여당은 대통령의 국정의 동반자이면서 국정을 원활히 펼칠 수 있도록 야당과 대화와 타협으로 정치를 주도할 책임이 있다. 그중 여당 대표는 대통령의 최고 조언자이자 야당과 협상을 위한 중재자이다. 때론 대통령에 쓴소리를 마다치 않는 견제자 역할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윤 정부 17개월 동안 여당에선 실종됐던 모습이다. 한 장관은 한국 민주주의 ‘최후의 방어벽’이 될 각오가 충분히 돼 있는가.
정효식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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