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타이어그룹…2차 형제의 난 [스페셜리포트]

김경민 매경이코노미 기자(kmkim@mk.co.kr) 2023. 12. 19.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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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 정윤정 기자
한동안 재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한국앤컴퍼니그룹(옛 한국타이어그룹) ‘형제의 난’이 또다시 불거졌다. 1라운드에서는 차남이 장남을 제치고 회장에 오르면서 그룹 경영권을 거머쥐었지만 2라운드 향방은 좀처럼 예측하기 어렵다. 장남이 탄탄한 자금력을 자랑하는 국내 최대 사모펀드 운용사 MBK파트너스와 전격 손을 잡은 가운데, 차남도 부친을 비롯해 hy(옛 한국야쿠르트) 등 든든한 우군을 등에 업고 반격할 채비라 재계 관심이 뜨겁다.
한국앤컴퍼니그룹 ‘형제의 난’이 또다시 불거지면서 재계가 시끌시끌하다. 사진은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충남 금산공장. (한국타이어 제공)
한국앤컴퍼니 지분 공개매수 추진

장남 조현식, MBK와 전격 동맹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조양래 한국앤컴퍼니그룹 명예회장의 장남인 조현식 한국앤컴퍼니 고문이 MBK파트너스와 손잡고 그룹 지주사 한국앤컴퍼니 지분을 대상으로 공개매수에 나선다. MBK파트너스의 공개매수 특수목적법인(SPC) 벤튜라는 12월 5일부터 24일까지 주당 2만원에 한국앤컴퍼니 지분 20.35~27.32%를 공개매수한다고 공시했다. 목표 물량을 모두 매수한다고 가정하면 약 5187억원에 달하는 규모다.

공개매수에 성공하면 조현식 고문 지분율은 기존 18.93%에서 단숨에 39.28~46.25%까지 늘어난다. 조 고문과 MBK파트너스는 조양래 명예회장 장녀 조희경 한국타이어나눔재단 이사장 지분 0.81%, 차녀 조희원 씨 지분 10.61%를 우군으로 확보해 한국앤컴퍼니의 과반 지분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로써 한국앤컴퍼니그룹 경영권 분쟁은 3년여 만에 재발하는 형국이 됐다.

‘형제의 난’의 발단은 2020년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조양래 명예회장이 돌연 자신이 보유한 한국앤컴퍼니 지분 전량(23.59%)을 차남 조현범 한국앤컴퍼니그룹 회장에게 블록딜(시간 외 대량매매) 형태로 매각하면서 경영권 분쟁이 시작됐다. 지난해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이하 한국타이어) 지분 5.67%도 조 회장에게 증여했다.

부친이 차남을 사실상 후계자로 점찍자 장남인 조 고문과 장녀 조희경 이사장은 곧장 반발하고 나섰다. 조 이사장은 “아버지의 결정이 건강한 정신 상태에서 자발적 의사에 따라 이뤄진 것인지 판단해야 한다”며 조 명예회장의 성년후견심판을 청구했다. 성년후견은 고령이나 장애, 질병 등으로 의사 결정이 어려운 성인에 대해 후견인을 선임해 돕는 제도다.

조현식 고문은 이듬해인 2021년 한국앤컴퍼니 주주총회에서 반격에 나섰다. 주총에서 자신이 추천한 감사위원(이한상 고려대 경영대 교수)을 선출시키는 데는 겨우 성공했지만 경영권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결국 조 고문은 그해 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조 회장이 한국앤컴퍼니그룹 회장으로 공식 선임되면서 형제의 난은 일단락되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올 들어 다시 불씨가 피어올랐다. 조현범 회장이 지난 3월 200억원대 횡령, 배임과 계열사 부당 지원 혐의로 구속 기소되면서 경영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앞서 조 회장은 2019년에도 뇌물 수수 혐의로 실형을 산 바 있다. 이를 눈여겨본 조 고문은 총수 부재로 그룹 경영이 흔들리는 것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다고 판단해 또다시 반격을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

경영권 분쟁에 나선 조현식 한국앤컴퍼니 고문(좌)과 조현범 한국앤컴퍼니 회장(우).
경영권 분쟁 관전 포인트는

조현범 회장 우군 hy 역할 주목

이번 한국앤컴퍼니그룹 경영권 분쟁은 단순히 형제간 다툼이라고만 보기는 어렵다. 조현식 고문이 스스로의 힘이 아닌 국내 최대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와 전격 손을 잡은 데다, 조현범 회장 우군으로 불리는 hy(옛 한국야쿠르트)가 갑작스레 지분 매입에 나선 것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투자은행업계에서는 이번 경영권 분쟁에서 MBK파트너스가 사실상 ‘꽃놀이패’를 쥐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MBK파트너스가 조현식 고문 측과 맺은 계약 내용을 보면 만약 공개매수에 성공할 경우 대표 선임 권한 등 경영 주도권은 MBK파트너스가 잡게 된다. 조 고문 측은 MBK파트너스 동의 없이 주식을 팔 수도 없다.

주주 간 계약에 따르면 조현식 고문과 조희원 씨는 MBK파트너스 동의 없이 보유 주식을 제3자에게 처분하지 않기로 했다. 또 공개매수 성공으로 50% 넘는 지분에 대한 의결권을 확보할 경우, MBK파트너스 측이 한국앤컴퍼니 이사 총수의 절반을 초과하는 이사를 지명한다. MBK는 공개매수에 성공하면 원매자 등장 시 조 고문과 조희원 씨 지분을 함께 묶어 팔 수 있는 ‘드래그얼롱’ 조항까지 확보했다.

게다가 이번 공개매수는 MBK파트너스 측이 20% 이상 매수하지 못하면 자연스럽게 취소되는 이른바 ‘조건부’ 형태다. MBK파트너스는 공개매수에 응한 주주가 최소 목표치인 20.35%에 미치지 않으면 단 한 주도 매입하지 않겠다고 못 박았다. 공개매수가 인상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결국 MBK파트너스 입장에서는 손해 볼 것 없는 장사인 셈이다.

MBK파트너스가 국내 대표 사모펀드답게 한국앤컴퍼니그룹 핵심 계열사인 한국타이어 가치를 눈여겨봤다는 관측도 나온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한동안 타이어 업체들이 경영난을 겪었지만 최근 분위기가 되살아났다. 타이어 주원료인 고무 가격이 하락한 데다 글로벌 신차 수요가 늘어 한국타이어 실적이 날개를 달았다. 한국타이어는 올 3분기에만 3963억원 영업이익을 기록해 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거뒀다. 컨센서스(시장 전망치 평균)를 50%가량 웃돈 호실적이다. 3분기 누적 기준 영업이익은 8355억원으로 이미 지난해 전체 영업이익(7058억원)을 넘어섰다. 2016년 이후 7년 만에 영업이익 1조원 돌파를 기대하는 모습이다.

장문수 현대차증권 애널리스트는 “한국타이어는 시장 우려와 달리 미국, 유럽 점유율이 계속 커지는 모습이다. 때마침 원재료 가격 하락으로 투입원가가 떨어져 수익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향후 호재도 많다. 한국타이어는 한동안 내연기관차 타이어 시장만 공략했지만 최근 전기차 시장이 안착하면서 전기차의 타이어 교체 시기가 다가오는 모습이다. 전기차는 배터리가 무겁다 보니 내연기관차보다 타이어 마모가 크다. 이 때문에 교체 주기가 빨라 국내 1위이자 글로벌 6위 타이어 업체인 한국타이어가 수혜를 입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기업가치가 높은데도 주당 2만원에 지분 20%가량을 공개매수하는 데 드는 비용이 5000억원 수준에 불과한 것도 MBK파트너스가 주목하는 포인트다.

MBK파트너스 측은 “공개매수가 성공해 50%를 넘는 지분 의결권을 확보하게 되면 기업 지배구조를 다시 바로 세우고,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해 한국앤컴퍼니 기업가치 제고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이뿐 아니다. 형제의 난 진행 과정에서 hy가 한국앤컴퍼니 지분을 전격 매입한 것을 두고서도 재계가 시끌시끌하다. hy는 조 고문이 MBK파트너스와 함께 한국앤컴퍼니 지분 공개매수에 나선다고 공시한 12월 5일 한국앤컴퍼니 주식 일부를 추가 매입했다. 조현범 회장이 그룹 경영권을 쥔 2021년 160억원을 투입해 한국앤컴퍼니 지분 0.9%가량을 확보한 hy는 이번 주식 추가 매입에 40억원 이상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에서는 이번 투자를 두고 윤호중 hy 회장이 조 회장과 ‘40년 지기 죽마고우’라는 점에서 사실상 ‘백기사’ 역할을 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1972년 1월생인 조 회장과 1971년생인 윤 회장은 서울 주요 기업인 자택이 밀집한 서울 성북동에서 사립초등학교(성신초교)를 함께 다닌 막역한 사이다.

두 회사는 사업 측면에서도 다양하게 교류해왔다. 한국앤컴퍼니그룹 계열사 한국네트웍스는 올 2월 hy의 충남 논산 물류센터 구축 사업을 120억원에 수주해 사업을 진행 중이다. 구체적으로는 한국네트웍스가 자율주행로봇 기반 주문 분류 자동화 설비, 물류 설비 통합 관제 시스템 등을 hy에 공급하는 식이다.

조 회장 측 우군으로는 hy 외에도 범효성가가 손꼽힌다. 조양래 명예회장은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 동생이다. 조 회장이 장홍선 극동유화 회장 차남인 장선우 대표뿐 아니라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과도 친분이 있어 두 회사를 조 회장 측 우군으로 보는 게 일반적인 시선이다.

실제 과거 극동유화가 경영권 분쟁을 겪을 당시 조 회장이 총수 일가를 돕기도 했다. 한국타이어는 2018년 사모펀드 운용사인 LK투자파트너스가 조성한 프로젝트펀드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극동유화 오너가의 우군이 됐다. 한국타이어는 극동유화 주식 8.75%를 보유한 상태다. 고려아연도 잠재적인 우군으로 불린다.

조현식 고문은 MBK파트너스에서 이번 투자를 주도하는 부재훈 부회장과 친분이 두텁다는 후문이다. 두 사람은 1970년생 동갑내기로 미국 유학파 출신이라는 것이 공통점이다. 조 고문은 미국 시라큐스대, 부 부회장은 펜실베이니아대를 졸업했다.

변수는 또 있다. 금융당국은 공개매수 발표 전 10거래일간 한국앤컴퍼니 주가가 31% 급등한 것을 두고 선행매매를 통한 자본 시장 교란 의혹이 있는지 들여다보기로 했다. 지난 11월 20일 1만2840원이었던 한국앤컴퍼니 주가는 공개매수 발표 전날인 12월 4일 1만6820원으로 30.1% 뛰었다.

이를 두고 금융권에서는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선행매매 의혹이 제기됐다. 상승한 가격에 거래가 체결될 때마다 거래량이 함께 늘어났다는 점에서, 공시 전 공개매수 가격 정보가 새어나갔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것. 실제로 지난 11월 23일 10만주를 밑돌던 한국앤컴퍼니 거래량은 11월 27일 20만주, 12월 1일과 4일에는 각각 50만주 이상으로 급증했다. 같은 기간 한국타이어 주가는 4만3450원에서 4만5550원으로 4.8% 오르는 데 그쳤다. 급기야 한국거래소는 한국앤컴퍼니를 단기과열종목으로 지정했다.

금감원은 hy가 한국앤컴퍼니 지분을 추가 매입한 건에 대해서도 문제 소지가 있는지 살펴볼 예정이다. 매매 방식, 매수 동기 등을 분석해 주가 상승 의도가 있었는지 파악할 방침이다. 재계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최근 SM엔터테인먼트 경영권 분쟁과 관련해 카카오 측을 시세 조종 혐의로 무겁게 처분한 상황이라 자칫 한국앤컴퍼니 경영권 분쟁에도 칼날을 들이댈 수 있다”고 전했다. 양측 우군에 금감원까지 개입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자칫 ‘진흙탕 싸움’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논란이 커지자 hy 측은 “고배당주라는 판단 아래 장기적 투자 관점에서 매입을 진행한 것이다. 이미 2020년 무렵부터 한국앤컴퍼니 주식을 사오고 있었다”고 해명했다.

경영권 분쟁 어디로

반격 만만찮지만 성년후견심판 변수

2라운드에 접어든 한국앤컴퍼니그룹 경영권 분쟁은 어떻게 마무리될까. 재계에서는 조현범 회장이 보유한 한국앤컴퍼니 지분이 42.03%에 달하는 만큼 조 고문 측이 공개매수에 성공하기는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조 회장 측이 공개매수 가격을 올려 지분을 8%가량만 더 확보해도 지분율이 50%를 넘어간다. 다만 조 회장 측은 “필요시 일부 추가 매수를 할 수 있지만, 현재 시점에서 (대항 공개매수는)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경영권 분쟁이 불거지면서 한국앤컴퍼니 주가가 이미 2만원을 넘어선 만큼 기관이나 개인 투자가가 공개매수에 응할지도 의문이다. 금감원이 대대적인 선행매매 조사에 나섰는데, 혹여 공개매수 발표 전 정보가 새나갔다면 조 고문 측이 조사 타깃이 될 수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조 고문이 탄탄한 자금력을 갖춘 MBK파트너스를 등에 업었지만 조현범 회장 지분이 워낙 많은 데다 hy를 비롯한 우군도 있어 반격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조 고문 측이 소액주주, 외국인 등 일반 주주들의 마음을 얼마나 얻을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재계 관계자 귀띔이다.

상황이 심상찮게 흘러가자 조양래 명예회장이 차남인 조현범 회장을 도와 경영권 방어에 나서기로 한 점도 주목할 만한 변수다. 한국앤컴퍼니 관계자는 “조양래 회장이 자신이 일군 회사가 사모펀드에 넘어가는 걸 보고 있을 수 없다는 뜻을 주변에 밝힌 것으로 안다. 상황이 나빠질 경우 개인 재산을 털어서라도 경영권 방어에 나서겠다는 생각”이라고 전했다. 조 명예회장은 최근 한국앤컴퍼니 지분 2.72%를 취득했다.

다만 한편에서는 조양래 명예회장에 대한 성년후견심판이 복병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성년후견심판 결과에 따라 판세가 얼마든지 뒤집힐 수 있다는 의미다. 이번 경영권 분쟁의 발단은 조 명예회장의 주식 블록딜인 만큼 조 명예회장 정신이 온전치 못했다면 조 고문 측이 블록딜 자체가 무효라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4월 성년후견심판 1심은 조 명예회장의 과거 진료 기록과 전문가 의견을 토대로 조희경 이사장의 청구를 기각했다. 조 이사장은 “정신감정 없는 결정은 객관적 판단이 아니다”라며 반발해 항고를 제기했다.

조 명예회장 정신감정을 담당한 서울 보라매병원은 최근 법원에 감정 결과를 송부했다. 조 회장 측은 병원 검사 결과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조 이사장 측은 조 명예회장 병세와 치료 필요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요구하는 질의서를 제출한 것으로 전해진다. 서울가정법원은 내년 1월 11일 조 명예회장 감정 결과를 토대로 심문을 진행할 예정이다. 결과에 따라 조 명예회장의 블록딜 결정이 무효가 되면, 조 고문 측은 경영권 분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혹여 조 명예회장이 주도한 블록딜이 무효가 될 경우 한국앤컴퍼니그룹 경영권 분쟁은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갈지 모른다”는 것이 재계 안팎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39호 (2023.12.20~2023.12.2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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