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로나와 레버쿠젠이 만든 '낯선 순위표'와 은연한 과르디올라의 향기

김희준 기자 2023. 12. 19.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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펩 과르디올라 맨체스터시티 감독. 게티이미지코리아

[풋볼리스트] 김희준 기자= 스페인 라리가와 독일 분데스리가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2000년대 후반 축구계를 뒤흔든 펩 과르디올라 감독의 향기가 이제는 세계 곳곳에서 짙게 나고 있다.


2023-2024시즌이 절반 가까이 지난 현재 라리가와 분데스리가 선두에는 낯선 이름들이 있다. 라리가에서는 지로나가, 분데스리가에서는 바이어04레버쿠젠이 정상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시즌 초반 돌풍을 일으키는 팀들이 1위에 오르는 건 왕왕 있는 일이지만, 이것이 반환점을 돌 시점까지 이어지는 건 흔치 않다.


미첼 지로나 감독. 게티이미지코리아

지로나는 올 시즌 스페인에서 선풍을 일으키고 있다. 비록 레알마드리드에 패하긴 했지만 바르셀로나와 아틀레틱클루브를 꺾고 레알소시에다드와 비기는 등 상위권 팀에도 경쟁력을 보이며 리그 1위를 달리고 있다. 19일(한국시간) 데포르티보알라베스를 3-0으로 완파하며 레알을 끌어내리고 다시금 정상을 차지했다.


이는 지난 시즌에도 예견된 일이었는데, 미첼 감독과 함께 승격한 시즌에 곧바로 10위에 안착하며 가능성을 보였다.


지로나는 짧은 패스를 바탕으로 공격을 전개하는 팀이다. 라리가에서 짧은 패스 시도가 5위인 데 반해 긴 패스는 13위에 머무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점유율도 평균 57.5%로 결코 공을 만지는 횟수가 적지 않다.


짧은 패스 위주로 경기를 운영하지만 공격력은 라리가에서 가장 출중하다. 지로나는 현재까지 41골을 넣어 라리가에서 가장 많은 득점을 기록했다. 전진패스와 전진 횟수도 각각 739회와 371회로 레알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바로 다음이다. 비교적 전력이 강하지 않은 팀이 소위 강팀들의 축구를 구사하면서 성과를 내고 있다.


얀 쿠토(왼쪽). 지로나 X(구 트위터) 캡처

지로나의 돌풍에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맨체스터시티와 같은 시티 풋볼 그룹 소유라는 점도 작용했다. 현재 지로나에는 알레시 가르시아와 얀 코투, 앙헬 에레라, 에릭 가르시아 등 맨시티에서 임대됐거나 맨시티 출신인 선수들이 다수 있다. 멀티 그룹 프로젝트의 일원이기 때문에 유망한 자원들을 비교적 경쟁 없이 수급할 수 있었다.


시티 풋볼 그룹은 선수뿐 아니라 구단 경영이나 전술 철학 등도 공유한다. 그 중심은 단연 맨시티다. 맨시티는 과르디올라 감독을 영입하기 전부터 바르셀로나 중진들을 여럿 영입했고, 과르디올라 감독의 철학을 아카데미 전반에 심었다. 과르디올라 감독과 유사한 철학을 가진 감독들은 시티 풋볼 그룹의 각 구단에 퍼져 맨시티와 비슷한 축구를 구사한다.


실제로 지로나 경기를 보다 보면 후방 빌드업에 능한 센터백과 이를 돕는 수비형 미드필더, 측면에 넓게 벌려서 수비를 파괴하는 윙어 등 맨시티 축구와 유사한 지점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맨시티만큼 최상급 자원들이 많지 않기에 보다 측면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등 일부 변화는 있어도 큰 틀에서는 과르디올라 감독의 철학을 그대로 구현했다. 여기에 맨시티 출신으로 이 철학을 이해하는 선수들까지 합류하며 미첼 감독 축구의 완성도가 높아졌다.


샤비 알론소 바이어04레버쿠젠 감독. 게티이미지코리아

레버쿠젠의 샤비 알론소 감독도 과르디올라 감독의 제자라 볼 수 있다. 알론소는 2014년부터 2016년까지 바이에른뮌헨에서 과르디올라 감독의 지도를 받았다. 훗날 인터뷰에서 레알을 떠나 바이에른으로 갔던 이유를 과르디올라 감독 때문이라고 설명할 정도로 알론소는 과르디올라 감독 축구를 체득하기를 원했다.


현재 레버쿠젠에서 보여주는 축구도 많은 부분 과르디올라 감독을 연상케 한다. 60%를 넘는 압도적인 점유율과 끊임없는 삼각 대형 생성, 5695회에 달하는 짧은 패스와 분데스리가 최하위일 정도로 롱패스를 배격하는 등 짧은 패스를 위시한 빌드업을 중시한다.


일정 부분에서는 과르디올라 감독과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과르디올라 감독 축구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측면 플레이다. 특히 과르디올라 감독이 농구에서 빌려온 '오버로드 투 아이솔레이션'은 현대 축구의 핵심 요소로 자리잡았다. 과르디올라 감독은 한 측면에 많은 선수를 몰아넣는 과부하를 일으키고 반대 측면에 넓게 벌려선 파괴적인 자원을 고립시킨 다음 순간적인 반대 전환을 통해 공격 기회를 창출하는 플레이를 애용했다.


그런데 알론소 감독은 집요할 정도로 공을 중앙에 보낸다. 단순한 백패스뿐 아니라 전진 패스 대부분도 중앙에서 이뤄진다. 분데스리가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레버쿠젠의 공격 진영 진입 비율은 왼쪽 29%, 중앙 38%, 오른쪽 33%로 거의 비슷함을 알 수 있다. 심지어 득점 기점이 된 곳은 중앙이 64%로 왼쪽 18%, 오른쪽 18%를 크게 상회한다.


알론소 감독이 3-4-2-1 전형을 사용하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3-4-2-1은 3-3-3-1을 눕힌 형태로 많은 삼각 대형이 형성되며, 양쪽 윙백을 제외한 8명의 필드플레이어를 중앙에 놓을 수 있다. 즉 수비, 미드필더, 공격에 걸쳐 최소 2명의 선수가 중앙에 위치시키는 전형이다.


중앙에 놓인 선수들은 자신의 파트너와 높이를 달리 하며 기본 전형에 균열을 일으킨다. 이는 상대 수비 전형에서 빈 곳을 유동적으로 찾을 수 있다는 의미도 된다. 끝없는 위치 변화를 통해 좁은 지역에서도 삼각 대형을 창출해 마치 사다리처럼 차근차근 올라가는 게 가능해진다.


알레한드로 그리말도(바이어04레버쿠젠). 바이어04레버쿠젠 X(구 트위터) 캡처

이러한 알론소 감독의 전술은 역설적으로 양쪽 윙백인 알렉스 그리말도와 제레미 프림퐁의 공격력 극대화로 이어졌다. 현재 그리말도는 리그에서만 7골 4도움, 프림퐁은 4골 5도움을 기록하고 있다. 이것이 가능한 전술적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중앙의 과밀화가 양 윙백의 고립을 유발시키기 때문이며, 윙백의 순간적인 하프스페이스 및 중앙 침투가 상대 수비에 결정적인 균열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지로나의 미첼 감독은 과르디올라 축구를 최대한 구현시키는 방향으로, 레버쿠젠의 알론소 감독은 과르디올라 축구에 중앙지향적 축구를 배합시키는 방향으로 팀을 발전시켰다. 미첼 감독이 완성도에 초점을 맞췄다면 알론소 감독은 차별화에 초점을 맞춘 셈이다.


결과적으로 두 감독 모두 과르디올라 감독의 축구에서 시작해 지도하는 팀의 돌풍을 불러일으켰다. 십수 년 전 혜성같이 나타났던 과르디올라 감독의 향기는 아직도 전 세계에 은연하게 퍼지고 있다.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지로나, 바이어04레버쿠젠 X(구 트위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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