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친'끼리만 똘똘 뭉쳤다…요즘 예능판 장악한 '인맥 권력'
" “우리끼리 놀러가는 느낌이긴 하네요. 진짜 편하긴 하다. 잘 모르는 사람 있으면 불편할 수 있잖아.” "
지난 8일 종영한 tvN 예능프로그램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콩콩팥팥)’의 1화 속 한 장면이다. 연예계 절친들로 알려진 이광수·김우빈·도경수·김기방이 출연해 첫 방송부터 멤버 간 자연스러운 ‘케미’를 보여준다.
평소에 자기들끼리 하던 내기, 그들만의 개그 코드,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늘 하던 대로 티격태격하는 모습은 프로그램의 웃음 포인트로 작용했다. 서로 낯선 출연진이었다면 절대로 나올 수 없는 티키타카(서로 죽이 잘 맞는 대화)에 “기분 좋은 유쾌함이 느껴진다” “연예인의 인간적인 모습이 보기 좋다” 등 시청자 반응이 이어졌다. 프로그램은 당초 제작진이 목표했던 시청률 3~4%를 뛰어넘어 최고 시청률 5%(닐슨코리아)를 달성했다.
제작진은 친한 친구들끼리 즐거운 추억을 남겨보고 싶다는 배우 이광수의 제안에 그의 친한 연예인 친구들을 섭외한 뒤 프로그램 기획에 들어갔다. tvN 관계자는 "덕분에 첫 화부터 가까운 사이에서만 나오는 스타들의 진짜 모습이 연출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연예계의 소문난 절친 스타들의 사적 친분을 기반으로 한 예능 프로그램들이 쏟아지고 있다.
올해 지상파·케이블 채널과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등에서 방영됐거나 방영 중인 사적 친분 포맷의 예능 프로그램은 10편이 넘는다. 조인성·차태현이 사장으로 운영하는 가게에 그들과 친한 연예인들이 아르바이트생으로 등장하는 ‘어쩌다 사장 3’(tvN), 76년생 용띠 절친 김종국·장혁·차태현·홍경민·홍경인이 출연한 ‘택배는 몽골몽골’(JTBC), 92년생 아이돌 절친 도경수·지코·크러쉬·최정훈의 ‘수학 없는 수학여행’(SBS), 88년생 동갑내기 임시완과 정해인의 ‘배우는 여행중’(JTBC), KBS 공채 개그맨 선후배 사이인 김대희·김준호·장동민·유세윤·홍인규의 ‘니돈내산 독박투어’(채널S·MBN), 김준현·문세윤의 먹방 여행기를 담은 ‘먹고 보는 형제들’(SBS) 등이다.
이런 프로그램의 가장 큰 장점은 예능에서 필수적인 캐릭터 관계성이 곧바로 발휘된다는 것이다. 이미 두텁게 형성된 출연진 간 케미 덕분에 인물 간 사전 서사를 구축할 필요 없이 곧바로 본격적인 예능의 재미 요소를 만들어갈 수 있다.
시청자 입장에선 친한 친구 사이에서만 드러나는 스타의 진정성 있는 모습에 친근감을 느끼게 된다. 연출이 아닌 ‘리얼’ 그 자체를 원하는 시청자 니즈를 충족시켜주는 것이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자연스러운 케미 안에서 연예인의 사생활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켜줄 수 있다”며 "캐릭터 사이의 케미가 일정 수준 보장돼 있다는 점에서 친분을 활용한 예능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제작진 입장에선, 특정 연예인의 인맥을 중심으로 출연진을 섭외하는 게 쉽고, 출연진간 케미가 발휘되면 일정 수준 이상의 재미와 시청률을 기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지상파 방송의 한 예능PD는 "연예인 사적친분 포맷의 프로그램은 인맥의 중심에 있는 연예인을 섭외하면 출연진 구성이 쉽고, 시청자들에게 연예인 인맥 발견이란 재미를 주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포맷의 프로그램들이 모두 성공하는 건 아니다. 지난달 종영한 MBC ‘뮤직인더트립’은 돈독한 사이로 소문난 아이돌 스타들이 함께 여행하면서 음악을 창작하는 모습을 담았지만, 방영 내내 0%대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했다. 아이돌 스타들의 친목 외에 새로운 걸 보여주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출연진의 '찐친 케미'만을 앞세운 프로그램들은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
특정 인물의 ‘겹치기 출연’으로 비슷한 조합이 반복되는 점 또한 시청자들을 피로하게 한다는 지적도 있다. ‘어쩌다 사장 3’으로 tvN 목요일 저녁 예능에 출연하고 있는 차태현과 조인성이 절친이란 이유로 같은 방송사의 같은 시간대 금요일 예능에도 게스트로 출연하는 식이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익숙한 관계성이 반복되면 시청자들에게 ‘그 나물에 그 밥’이란 식상한 느낌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재근 평론가는 “방송국 간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연예인들의 친분 기반 예능은 어느 정도 안정적인 시청률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제작진이 안전한 선택을 하는 것”이라며 "식상함을 덜어내기 위해 제작자들이 연예인 친분 외의 새로운 재미 포인트, 대중의 니즈를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친분 기반 예능이 우후죽순 만들어지면서 친한 연예인 없이는 예능 진입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인지도 높은 연예인과 친하다는 이유 만으로 평소 예능에 출연하기 힘든 인물들이 쉽게 출연 기회를 얻는 건 특혜로 비쳐질 수 있고(김헌식 평론가), 특정 연예인 중심의 '라인' '사단'에 속한 누군가에겐 기회의 끈이겠지만, 그런 관계망에 진입하지 못한 사람에겐 장벽이 될 수도 있다(하재근 평론가)는 것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친한 사이끼리 똘똘 뭉쳐서 움직이는 모습이 너무 자주 연출되면 ‘끼리끼리’라는 시청자의 불만이 터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서원 기자 kim.seo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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