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R&D 기관에 핵심기술 연구를 맡기겠다니? [넥스트브릿지]
정책네트워크 넥스트 브릿지(Next Bridge)는 지식경제, 기후, 디지털,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등 전환의 시대를 직면하여 비전과 정책과제를 연구하는 포스트 386 세대(9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에서 90년대생 청년) 중심의 연구자·정책 전문가의 네트워크다. 넥스트 브릿지는 주권자인 국민들이 사회 지향과 정책과제에 대한 이해가 높아야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와 사회발전이 가능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정책담론을 위한 대중적인 소통을 희망하며 다양한 분야의 정책 전문가들이 자기 분야의 정책과제를 가지고 매주 정책 칼럼을 연재한다. <기자말>
[송현석 기자]
▲ 방문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5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글로벌 기술협력 종합전략 기업 간담회를 주재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방문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5일 '글로벌기술협력종합전략 기업간담회'를 개최하고 '글로벌 기술협력 종합전략'을 발표했다. 산업부가 '국제협력으로 80개 급소기술, 100개 원천기술 확보!'라고 강조하는 내용을 얼핏 보면 초격차 기술과 미래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연구개발(R&D) 강화로 보이지만, 실상은 대학과 정부출연연구기관(이후 출연(연)) 등 우리나라 R&D 기관의 수준이 낮기 때문에 외국 R&D 기관에 핵심기술 R&D를 맡기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산업부가 발표한 글로벌 기술 협력 종합전략의 주요 내용은 "국내에서 단독 개발이 어려운 80개 초격차 급소기술과 100개 차세대 원천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내년부터 해외 연구기관과 공동연구"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산업부는 첨단·주력산업 분야 80개 핵심(급소)기술을 5년 내 개발·상용화하기 위해 초격차 프로젝트 예산 총 13조 원 중 1조2300억 원을 외국R&D기관에 개방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국내기업의 신성장동력 창출을 위한 100대 원천기술 확보를 위해 MIT(로봇·디스플레이), 존스홉킨스(바이오·엔지니어링), 스탠퍼드(인공지능·바이오) 등 세계 최고 연구기관에 12개의 협력 거점을 구축하고 국내 기업과 해외 석학의 매치메이킹, 과제기획, 공동 기술개발 등에 2028년까지 약 6870억 원 투입하겠다고 한다. 또한 10대 '게임 체인저(Game Changer) 기술' 확보를 위한 연구에도 해외 '개방'에 초점을 맞춰 산업R&D 방향을 맞췄다. 특히 10대 게임 체인저는 예비타당성 조사제도('예타')가 필요한 규모의 신규 사업이기 때문에 상당히 막대한 예산이 투여될 것이 분명하다.
산업부가 미래성장동력을 위해 R&D를 강화하겠다는 것은 매우 환영할 일이다. 그리고 MIT와 스탠퍼드 등 해외 최우수 연구기관에 '산업기술 협력센터'를 설치하고 2024년에 약 50개의 공동연구과제에 착수하며 2028년까지 총 6870억 원을 투자해 5~10년 이후 상용화할 수 있는 원천기술을 확보하겠다는 계획도 그렇다. 기술 수출과 사업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기업 R&D 국제협력과 해외진출 지원 전용 펀드를 2027년 1조 원 규모 조성계획이나 과제 기간을 최대 5년 이상으로 늘린다는 계획 역시 환영이다.
윤석열 정부의 산업R&D정책, 한국 R&D체계의 토대를 약화시킬 우려가 크다
그러나 과연 산업부의 계획이 우리나라 국가R&D체계 강화에 어떤 영향이나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면 아쉬움이 크다. 특히 현재 세계는 기술력을 중심으로 세계산업대전을 벌이고 있다.
즉 과거 세계 제국들이 지정학적인 대결 속에 패권경쟁을 했다면, 오늘날은 기술을 놓고 패권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기정학적(技政學·기술 중심 정치학) 경쟁이 지정학이나 지경학만큼이나 중요한 시대이며, 기술 주권에서 우위를 서지 못한다면 오늘은 물론 미래 우리의 먹거리는 위험에 빠지게 된다. 따라서 그 무엇보다 중요한 국가산업과 경제의 뼈대가 R&D에 있으며, 그 어느 때보다 국가전략적 관점에서 국가R&D체계에 투자하고 강화해야 한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의 정책은 이런 시대적 인식은 찾아보기 어렵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3년 6월에 국가 R&D에 대해 '나눠먹기식, 갈라먹기식'이라고 비판한 바 있고, 이에 따라 2024년 R&D 예산을 축소한 예산안을 수립했다. 그리고 나눠먹기식이란 비판은 어느 정도 타당한 지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비판이 R&D 예산을 줄이고 심지어 국내 R&D 체계를 팽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서는 국가의 미래는 암담하다.
당장 한국의 기술력이 부족해서 미국 등 외국기관에 힘을 얻어야 한다 하더라도, 일부 연구자가 파견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대학과 공공(연)과 함께 컨소시엄을 구축하는 정책을 수립했어야 한다. 우리나라 대학을 중심으로 국가R&D체계를 혁신하기 위한 전략적 접근과 투자는 외면한 채 외국기관에만 투자한다면 그 성과가 국내 R&D의 암묵지로 축적되기 어렵게 된다. 나아가 세계기술대전과 산업대전에서 한국의 위치를 어렵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 연구·개발(R&D) |
ⓒ pixabay |
우리나라 대학과 출연(연)의 역량이 정부가 기대하는 수준이 아니라면 그 원인이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대학과 출연(연)의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지를 검토하고 대안을 수립·추진해야 한다. 이런 방향 속에 우리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서 외국기관과 협력을 하면서 우리의 부족한 부분을 빠르게 채우고, 그 성과가 우리나라 대학과 출연(연)에 암묵지로 축적될 수 있도록 국가R&D정책을 펼쳐야 한다.
실제로 2023년 우리나라 국가 R&D 예산은 약 31조 원에 달했으며, 이중 기초 분야를 중심으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약 9조7000억 원, 산업 활용도가 높은 프로젝트들을 중심으로 산업부가 5조7000억원을 관리했다.
교육부나 중소벤처기업부 등 R&D 관련 예산을 움직이는 부처는 많다. 과연 이런 예산을 얼마나 전략적이고 통합적이며 효율적으로 운용했는지, 그리고 국내 R&D체계의 발전과 암묵지 강화에 기여할 수 있게 체계를 구축하고 정책을 시행했는지 돌아보고 국가R&D체계의 혁신을 고려해야 할 시점에 윤석열 정부의 방침은 전략도 없고 미래도 없는 임시처방에 불과하다. 세계가 기술대전과 산업대전에 돌입한 시점에서 선진국가의 전략과 정책이라고 보기엔 너무 부족하다.
산업부는 과기부와 교육부 등과 더불어 국가R&D체계 혁신과 함께 이를 위한 전략적 정책수립과 효율적인 예산 집행계획을 세워야 한다. 정부 칸막이로 쪼개져 있는 부처이기주의를 극복하고 통합적이고 전략적으로 예산을 사용한다면 산업부가 발표한 1조9천억원보다 훨씬 큰 규모의 R&D 계획을 수립하고 효율성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미 발표한 '글로벌 기술협력 종합전략'의 중심으로 외국기관만이 아닌 우리나라 대학과 출연(연)으로 둬야 한다.
특히 서울대와 거점국립대, 카이스트를 포함한 4개 과기원과 한국에너지공과대학 등 국립대학의 대학원을 중심으로 국내 출연(연)과 외국기관의 컨소시엄을 구축함으로써 우리나라 대학과 출연(연)의 수준을 높이고 관련 인적 역량을 육성하는 정책으로 시급히 수정해야 한다.
* 필자 소개 : 송현석은 한양대에서 철학과 정치외교학을 공부하고 교원대에서 교육정책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교육감 정책비서와 국회 보좌관, 교육부 장관 보좌관으로 근무했다. 지금은 민생경제연구소 공동소장과 ㈔돌바내 이사이며, 2021년에 포스트86세대 연구자들과 함께 공공정책에 초점을 맞춘 정책연구네트워크 넥스트브릿지를 만들어 운영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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