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카카오 ‘지배적 사업자’ 지정…플랫폼 사전규제 도입
공정거래위원회가 거대 온라인 플랫폼을 규제 대상으로 사전 지정하는 내용의 ‘플랫폼 공정경쟁 촉진법’을 도입한다. 독과점 플랫폼의 시장질서 교란 행위를 차단하고 소상공인과 소비자를 보호하는 취지에서다.
네이버·카카오·구글 등 10개 미만으로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19일 국무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플랫폼 경쟁촉진법 도입과 관련한 내용을 보고했다. 일부 대형 플랫폼을 ‘지배적 플랫폼 사업자’로 사전에 지정하고, 이들에 대해선 자사우대 등 불공정 행위를 원천 금지하는 내용이다. 정부가 구체적으로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네이버ㆍ구글(포털), 카카오톡(메신저), 유튜브(동영상), 안드로이드ㆍiOS(운영체제) 등이 지배적 사업자로 지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공정위는 세부적인 지정 기준 등은 관계부처 협의 등을 거쳐 확정할 예정이다. 영향력이 절대적인 초거대 플랫폼에 대해서만 지정해 관리하겠다는 방침은 확실히 했다. 공정위 내부적으로 계산한 결과 지정 플랫폼이 국‧내외 사업자를 합쳐 10개를 넘어가진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매출액·이용자 수 등 기준으로 삼아
지정 기준은 정량‧정성적 요소를 고려해 정한다. 검색엔진‧오픈마켓‧메신저‧클라우드‧온라인 광고 등 각각의 적용 영역에서의 국내 매출액과 이용자 수를 정량적 기준으로 삼는다. 소비자에게 독점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정성적 요소도 고려한다. 이는 유럽연합(EU)이 도입한 디지털시장법과 유사한 방식이다. 디지털시장법은 EU 내 연간매출액 75억 유로(약 10조원) 이상의 플랫폼을 게이트키퍼로 지정해 법적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이다.
지배적 사업자로 지정되면 4가지 독과점 남용 행위가 금지된다. 자사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최혜 대우 요구 등이 금지 행위다. 예컨대 카카오모빌리티가 배차 알고리즘을 이용해 카카오 가맹택시를 우대하거나(자사우대) 구글이 플레이스토어에만 게임을 출시하고 원스토어에서는 앱을 판매하지 못 하도록 하는 행위(멀티호밍 제한) 등이다.
‘반칙 행위’에 입증책임 전환
현재는 이 같은 플랫폼 독과점 남용이 의심될 경우 경제분석을 통해 시장을 획정하고, 지배적 사업자임을 공정위가 입증해야 한다. 플랫폼 경쟁촉진법은 사전 지정한 지배적 사업자에 대해선 이 같은 과정을 생략한다. 또 해당 행위가 경쟁을 제한했는지도 입증할 필요가 없다. 경쟁제한성이 없다는 걸 플랫폼 사업자가 입증하지 못 하면 제재한다. 입증 책임 전환이다. 위반으로 판단하면 기존 공정거래법보다 더 높은 수준의 과징금을 부과할 예정이다.
조홍선 공정위 부위원장은 “법 집행에 걸리는 시간이 기존에 2~5년 걸리던 게 절반 이상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며 “위반행위가 발생했을 때 장시간 지나게 되면 고착화할 수 있기 때문에 신속한 처리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업계 반발 “국내 플랫폼 성장 위축”
정보기술(IT) 업계에선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사전 지정이 플랫폼 기업에게 옥쇄처럼 작용하면서 혁신을 저해할 수 있다면서다. 네이버‧카카오‧구글 등이 회원사인 한국인터넷기업협회는 입장문을 통해 “기존 공정거래법은 시장지배적 사업자를 규제하는데 온라인 플랫폼법까지 더해지면 이중규제로 시장을 위축할 것”이라며 “자국 플랫폼 기업들이 국내 산업과 시장을 지켜내고 있는 상황에서 과도한 규제가 국내 디지털 경제의 성장 동력을 위축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 역시 사전규제 도입에 대해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가 지배력을 남용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님에도 별도의 사전규제를 도입하는 것은 현 정부의 당초 공약과 반대된다”며 “섣부른 사전규제가 불필요한 물가 상승을 초래하고 소비자 후생의 후퇴를 유발할 것”이라고 반발했다.
윤 대통령 도입 의지…국회 넘어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산업기술자원부 등 관계부처 협의 과정에서도 사전규제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나왔다. 그러나 법안 도입엔 윤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28일엔 공정위에 “독과점 대형 플랫폼의 폐해를 줄일 수 있는 개선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하는 등 힘을 실어줬다. 이날도 국무회의에서 “플랫폼 산업의 독점력 남용행위를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공정위는 당정 협의를 추가로 거쳐 입법안을 확정할 계획이다. 여당 의원이 법안을 발의하면 공정위가 이를 지원하는 형태다. 법안 발의까지 시간이 걸리는 데다 온라인 플랫폼 규제 범위나 수준을 놓고도 야당의 이견이 있을 수 있어 실제 통과까진 시일이 걸릴 예정이다. 한기정 공정위원장은 “제정안이 발의될 수 있도록 관계부처, 국회와 긴밀히 협의하고 플랫폼 시장에서 모든 기업이 편법과 반칙 없이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세종=정진호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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