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학기 말 무대에 오른 선생님들
[김용만 기자]
▲ 경남교사연극모임정기공연 '아빠 어디가' |
ⓒ 연놂 |
지난 토요일(12월 16일) 저녁 6시, 경남 창원에 있는 소극장 도파니 아트홀에서 경남교사연극모임 '연놂'의 16회 공연인 '아빠 어디가'가 무대에 올랐습니다. 저는 일부러 시간 내어 관람했습니다. 사실 이번 작품의 총연출을 하신 분이 우리 학교 선생님이셨습니다. 작년에 보러 가지 못해 죄송한 마음도 있고 해서 의리상 관람했습니다.
그런데 직접 본 작품은 제 예상과 한참 달랐습니다. 공연 소식을 듣고 처음 든 생각은 '바쁘신 유, 초, 중등 선생님, 교육 전문직 분들이 준비하신 연극이니 응원하는 마음으로 봐야지'였습니다. 그러나 공연을 보며 눈물을 닦고 있는 저를 보았습니다.
연놂의 16번째 작품인 '아빠 어디가'는 '아빠들의 소꿉놀이(오세혁)'라는 원작을 연놂의 상황에 맞게 각색한 작품입니다. 2013년 초연했던 작품입니다. 당시 노동자들의 해고와 실직이 이어지던 사회 상황을 극으로 창작하여 아픔을 겪는 사람들과 가족들의 이야기를 표현했습니다.
그 후 10년이 2023년 현재도 당시 상황보다 더 어려워지고 아파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다시금 소소한 행복의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해 다시 무대에 올렸다고 합니다.
저는 연출하신 분이 우리 학교 동료 선생님이라는 것 외에 이 작품에 대해 아무런 정보가 없었습니다. 백지 상태로 작품을 만났다는 것이 정확합니다. 내용도 전혀 모르는 상태였기에 감동이 더 깊었는지도 모릅니다. 배우분들의 연기를 보며 이 분들이 선생님들이라는 것을 잊었습니다. 연기를 보며 참 많이 웃고 조용히 눈물을 훔쳤습니다.
▲ 경남교사연극모임 연놂 '아빠어디가' 공연 중 |
ⓒ 연놂 |
- 연놂에 대해 소개해 주시죠.
"경남교사연극모임 연놂은 중의적 의미가 있습니다. '연극으로 놀다'를 순 우리말로 표현했고, 회원 중 남녀가 같이 있기에 연극으로 노는 남녀라는 뜻도 있습니다.(웃음) 연놂은 2005년 교육연극에 관심이 있는 교사 서너 명이 모여 공부하면서 초기 모임이 시작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전국적으로 수도권과 부산 등을 중심으로 교사연극모임이 활성화되어 있었고 경남지역은 연극단체에 가입된 교사들은 다소 있었으나 교육연극을 연구하는 모임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서너 명이었던 교사 수가 점차 늘면서 예닐곱이 되었고 1년 남짓 학교 현장에 연극적 요소들을 어떻게 적용하면 좋을지 주 1회 모여 서로 이야기하고 실습하면서 지냈습니다. 그러다 연극에 대한 이해가 더욱 필요했고 고심 끝에 2006년, 첫 번째 창작 공연인 '국화 옆에서'를 초연했습니다. 이후, 2023년 현재까지 16회 정기공연 '아빠 어디가?'까지 작품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현재는 다양한 학교급의 교사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상반기에는 교육연극 공부와 교사 연수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하반기에는 정기공연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 올해로 18년째 인데 연놂을 계속하면서 느낀 점이 있으시다면요?
"사실 연놂을 제가 이 나이 먹을 때까지 계속할 줄을 몰랐습니다.(웃음) 저는 원년 멤버인데 처음 모임을 만들었을 때 마음은 교육연극 공부에 대한 것보다는 연극공연이나 한 편 올려야지 하는 지극히 짧은 생각이었습니다. 그렇게 첫 공연을 올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경남의 수많은 선생님들이 우리 모임을 거쳐 갔습니다. 연놂을 하면서 특별한 것들을 느끼진 않았습니다. 그저 시간이 지나 보니 여기까지 왔고 앞으로 시간이 지나면 거기까지 가 있겠죠. 모임을 계속하면서 열정을 가진 선생님들이 들어오셔서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가는 모습을 보면 참 흐믓합니다. 저는 그런 성격이 아니라 그저 얇고 길게 무리하지 않고 가는 성향이거든요. 저는 연놂에서 누군가 열정을 가지고 올라가려 한다면 그것을 받쳐주는 받침대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그게 선배 교사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2005년 첫 모임을 시작으로 우리 연놂이 몇 해만 있으면 20년이 됩니다. 처음 모임을 시작할 때 다른 지역 모임의 경력 있는 선생님들의 버팀이 정말 부러웠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18년이란 시간이 흘러 일선 학교에 근무하는 선생님들의 해마다 한편씩 창작 공연을 올리고 연수도 진행하는 우리 경남 연놂이 정말 뿌듯하고 자랑스럽습니다. 이제는 전국의 대표 교사연극모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어 어깨도 으쓱합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 연놂을 사랑하고 이끌어가는 모임 선생님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되며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앞으로도 이 모임이 계속 활성화되고 100회 정기 공연까지 갈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경남교사연극모임 연놂 '아빠어디가' 공연 중 |
ⓒ 연놂 |
연놂의 창단멤버이자 현 회장이신 한진석 선생님의 인터뷰 후 이번 공연에 처음으로 참가한 선생님들 말씀도 궁금했습니다. 해서 첫 무대를 마치신 분들과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신 정철선생님, 초등학교에 재직 중이신 이화영 선생님, 이은신 선생님께 여쭈었습니다.
- 연놂에 가입하시게 된 계기가 있으시다면?
정철 선생님 = "제가 근무하는 학교에서는 학기 말 수업량 유연화 주간을 실시합니다. 이 때 진로 과목 선생님과 융합 수업을 진행하게 되었는데, 대부분의 수업에서 진행하는 PPT 기반 발표 수업의 한계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이론을 적용하는 상황이 명확히 떠오르지 못하고, 생동감이 부족한 발표에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찾던 중, 연극 연수 메일을 받았습니다. 연극 수업을 단순히 대본을 제작하고, 배역을 정해 대사를 외우고 정해진 장면에 맞게 이동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던지라,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가려는 심경으로 연수를 신청했습니다. 1박 2일로 이뤄진 연수의 내용이 너무도 인상 깊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서너 개의 정지 상황을 제작하고, 이를 연결하며 하나의 장면을 만드는 과정은 '장면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를 생각하지 못했던 저에게 큰 일깨움을 줬습니다. 일요일 오후 5시에 연수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피곤하다기보다는 머릿속과 마음속이 살아나는 느낌이 너무도 맘에 들어 연놂에 가입하게 됐습니다."
이화영 선생님 = "저는 2022년 5년간의 육아휴직을 마치고 6학년 담임으로 복직했습니다. 오랜만에 다시 시작하는 학교생활을 아이들과 즐겁게 하고 싶었고, 국어 교과에 연극 단원이 있는 것을 보며 아이들과 진정성 있는 연극 수업을 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진 시점에 때마침 학교로 교사 연수 강의를 오신 연놂선생님들을 만나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이은신 선생님 = "대학교 때 연극 동아리를 했는데 그때 배운 것들을 학생들과 교육활동을 통해 함께 해보고 싶었습니다. 혼자서 한계를 느꼈고 더 자세히 배우고 싶어 가입했습니다."
- 첫 공연하셨는 데 느낀 점이 있으시다면요?
정철 = "이번 공연에서 맡은 유치원생은 딱 대사가 딱 여섯 마디였습니다. 연습 초기에는 비중이 낮은 배역이어서 '뭐 딱히 연습할 것이 있을까?'라는 생각하다, 현재 2학년 내 전 학급에서 실시하는 매일 1인 1역을 떠올리게 됐습니다. 각자가 맡은 사소한 역할을 매일 꾸준히 실행해 학급을 운영하는 방식인데 '사소한 역할을 꾸준히 연습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라는, 현재 제가 운영하는 체계에서 학생들이 던질 수 있는 질문의 답을 만들 기회라는 영감을 받게 됐습니다. 적은 분량의 대사는 대사 이외에 대사의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요소를 찾을 수 있는 시간을 줬고, 다른 역할을 맡은 배우의 연기와 무대를 꾸리는 회장님의 안목과 그 근거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는 여지를 주었으며, 전체 극의 흐름을 이해하며 암기하는 방법을 익힐 기회를 주었습니다. 사소한 역할을 지속해서 연습하는 과정은, 전체와 흐름을 보는 눈을 반드시 길러준다고 확신합니다."
이화영 = "나만의 색깔을 입힌 역할을 만들어 간다는 것에 성취감을 느꼈고, 관객 앞에서는 떨림과 그것을 즐기는 대범함이 연극을 하는 매력이라 생각되었고 내년에도 다시 하고 싶습니다."
▲ '아빠 어디가' 출연 선생님들 |
ⓒ 연놂 |
- 작품을 하고 나신 후 소감이 있으시다면?
정철 = "연극은 '역할의 예술'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연극에서의 역할은 내 생각과 다른 사람의 생각으로 소화해, 다른 사람이 맡은 역할과 상호작용하는 과정, 협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아가 요즘 학생들이 '협력'이라는,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능력을 키우는 데 필요한 것이 바로 이 무형의 도구인 '역할'이라 확신했습니다. 이런 영감을 제공한 연놂에게 저는, 재차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화영 = "함께 식사하고 연습하며 이야기 나누는 동안 진짜 연놂식구가 되었다는 소속감이 들었습니다. 좋은 사람 따뜻한 사람들과 연결되었다는 것이 큰 행복입니다. 이번 경험을 바탕으로 제가 느낀 소속감과 연결됨을 아이들이 학급에서 학교에서 느낄 수 있도록 배경이 되어주는 역할을 하고자 합니다. 연놂 사랑합니다♡"
▲ 공연이 끝난 뒤 단체사진 |
ⓒ 연놂 |
연출부터 시나리오 각색, 조명, 음향, 진행, 홍보 등 이 모든 것을 아마추어인 현직 교사들이 해내었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작품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어느 덧 18년째를 맞이했습니다. 공연 현장에 많은 학생들이 와서 선생님들을 응원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습니다.
학생들은 교사의 뒷 모습을 보고 배운다는 말이 있습니다. 연기를 통해 또 다른 자아를 만나가는 선생님들을 보며 학생들도 배움이 있으리라는 확신이 듭니다. 앞으로 20주년, 30주년, 계속 이어 나갈 연놂을 기대합니다. 경남에는 '연놂'이라는 경남교사연극모임이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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