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도 상영된 영화 '서울의 봄'
[이순영 기자]
▲ 미국에서도 '서울의 봄' 영화 상영! 미국 미시간 AMC Forum 30 극장에서 '서울의 봄'을 상영하고 있다. |
ⓒ 이순영 |
지난주, 미국 미시간주에서도 '서울의 봄'을 개봉해 현지 교민들이 영화를 관람할 수 있었다. 이미 한국에서는 개봉 27일만에 누적관객수 900만명을 돌파해 천만 영화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는 2030세대들의 지지가 없었다면 이루기 힘든 성과라고들 한다. 지난 역사를 제대로 알고자 하는 젊은 세대들의 행보는 세상이 군부 독재 권력의 영향에서 벗어나 이를 직면하는 데까지 나아갔다는 점을 시사해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하겠다. 이런 고국에서의 서울의 봄 흥행 열풍 소식에 힘입어 미국에서도 서울의 봄을 기다리던 교민들의 발길로 영화관이 북새통을 이뤘다.
극중 이태신 역을 맡은 정우성 배우는 난민 유엔 난민 기구 친선대사로 활동을 하고 있으면서 난민의 수용을 거부하는 성난 군중의 집단 공격을 받는 이력이 있다. 우리나라 역시 식민지와 내전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그 시절 국민들은 난민의 입장으로 국제 사회의 도움을 받았던 시절이 있었던 것만큼 국가가 발전하고 경제적으로도 OECD 가입 국가 중 경제력 10위를 차지하고 있는 국가적 위상을 지닌 한국이 난민 수용에 있어서 이렇게 배타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한국의 경제는 고도성장을 이뤄냈지만 국격과 시민의식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반증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박정희,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 시절 해외로 정치적 망명을 했던 지식인들도 한 둘 이 아닌데 난민 수용에 대한 소신 발언을 했다고 국민 역적 취급을 받았던 정우성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픈 일이다.
그러나 UN 홍보 대사이자 할리우드 배우인 안젤리나 졸리가 한국을 방문해서 정우성을 만나 난민을 위해 나서줘서 고맙다는 전했다는 것은 위안이 된다. 김성수 감독은 서울의 봄 이태신역(장태완)으로 정우성을 캐스팅하면서 출연 요청을 거절한 정우성에게 이때 언론 인터뷰 보도 자료를 보내며 이태신 역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소신있는 모습에서 두 인물의 접점을 찾았기 때문이다.
전두환에 관련된 어두운 역사가 통째로 누락된 역사교과서를 배우고 자란 세대는 성인이 되어서야 개인적인 노력으로 교과서가 아닌 책과 다큐멘터리, 방송 등을 찾아가며 역사를 접할 수밖에 없었다. 독재정권의 파렴치한 만행들에 충격을 받으며 역사적 실체를 알아가는 정점에는 5. 18 광주민주항쟁이 있다.
▲ 서울의 봄의 한 장면 이태신(정우성 역) 작전 명령을 내리고 있다. |
ⓒ 영화배급사 |
영화는 자국민을 상대로 학생을 자행한 사건인 5. 18을 주도했던 전두환(극중 전두광)이 정권을 잡게 되는 과정을 그렸다. 그는 10. 26 박정희 시해 이후 합동수사본주장이 되어 김재규(극중 김동규)를 수사한다. 김재규는 79년 10월에 있었던 부마(부산, 마산) 민주 항쟁에서 대규모 대학생 시위에 시민이 합세해 유신 정권 타도를 외치는 것을 보고 더 이상 유신 체제를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쏜 것이다 .
사실 전두환은 박정희 시해 사실을 가장 먼저 안 사람 중 하나였다. 사건의 현장에 있었던 대통령 비서실장 김계원이 박정희의 시신을 보안사 관할 국군병원으로 옮기는데, 당시 보안사령관이 전두환이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전두환은 이때부터 권력의 야욕을 품은 듯 했다.
영화는 그가 12.12 육군참모총장 정승화(극중 정상호)를 김재규의 협력자로 몰아붙이면서 체포를 하는 과정에서 일으킨 군사반란의 9시간 기록을 담고 있다. 김재규는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면서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민주주의를 마음껏 만끽하라는 말을 남겼지만 끝내 서울의 봄은 오지 않았다. 전두환이 군대를 동원해 국회와 사법부를 무력화시키고 무고한 광주 시민들을 학살하면서 신군부 정권을 세웠기 때문이다.
역사에는 만약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지만 그래도 만약 김재규가 박정희를 죽이지 않았다는 것을 가정해 본다면 광주 대신 부산이 피바다가 되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부마항쟁 이후 당시 경호실장 차지철은 캄보디아가 정권 유지를 위해 300만명을 쓸어버렸는데 우리가 100만 200만 죽인다고 정권이 까닥이나 하겠느냐는 말을 했기 때문이다. 이 말은 박정희가 앞으로 부마사태와 같은 일이 생기면 대통령인 본인이 직접 발포 명령을 내린다는 발언 끝에 나온 것이다. 그렇다면 김재규의 결단은 옳은 일이 된다. 그러나 만약 4. 19 혁명처럼 박정희 정권 중에 민중에 의한 민주화 운동이 성공을 했다면 박정희 정권은 자연스럽게 끌어 내릴 수 있었을 텐데 그 전에 섣부른 판단을 해버린 김재규는 전두환이라는 괴물을 역사의 중앙으로 끄집어낸 과오를 저지른 사람이 된다. 동기는 민주주의를 위한 대의였다 하더라도 결과는 전두환을 위한 좋은 일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김재규의 결단은 옳은 일이 된다. 그러나 4.19 혁명처럼 민중에 의한 민주화 운동이 성공을 해 박정희 정권을 끌어 내릴 수 있었는데 그 전에 섣부른 판단을 해버린 김재규는 전두환이라는 괴물을 역사의 중앙으로 끄집어낸 과오를 저지른 사람이 된다. 동기는 민주주의를 위한 대의였지만 결과는 전두환을 위한 좋은 일이 되었으니 말이다.
두 시간이 넘는 영화는 반란군과 이를 저지하려는 세력 간 전세의 판도가 왔다 갔다 하는 상황을 긴박하게 그려 놓아 긴장감을 놓을 수 없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나라를 통째로 먹어버리겠다는 전두광의 능글능글한 탐욕과 배포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또한 전두광과 대척점에 서 있는 이태신의 국가에 대한 투철한 충성심과 진정한 용기와 신념을 보이는 장면 역시 일말의 희망을 가늘게 쥐고 갈 수 있게 된다. 영화의 결말은 역사의 기정사실과 다르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다른 결말이 있으리라는 기대가 드는 것은 이 때문이다.
선과 악의 대결에서는 선과 악이 어떤 전투력을 가지고 싸우느냐도 중요하지만 그 사이에 배치된 사람들을 어떻게 포섭하느냐가 승부의 관건이 된다는 것을 여실하게 보여준 점도 흥미로웠다. 세계2차대전 중 독일 나치 선동 장관이었던 괴벨스는 한 나라를 침략하면 사람들은 세 가지 부류로 나뉘는데 그 중 하나가 침략국에 저항하는 레지스탕스, 다른 하나는 그에 빌붙는 콜라보레이터 그리고 나머지는 뭣도 모르는 대중(메스)이다.
관건은 레지스탕스, 콜라보에게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대중에게 달려 있다. 이 대중을 어떻게 내 편으로 만드느냐에 따라 쉬운 침략이 되는가, 그렇지 않은가가 정해진다고 괴벨스는 말했다. 바로 대중의 세를 나에게 기울이는 게 판세가 유리해지는 열쇠가 되는 셈이다.
이는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전두광과 이태신 그리고 그 사이에서 어떤 권력에 줄을 서야할지 갈팡질팡하는 군인들이 판세를 오락가락하게 만든다. 결국 그렇게 군사 반란에 성공한 전두광과 일당인 하나회 회원들은 트로피처럼 단체 사진을 찍으며 영화는 끝이 난다. '군인으로서도 인간으로서도 자격이 없는' 전두광을 대통령으로 맞으며 말이다.
▲ 미국 개봉판 포스터. 미국에서는 <12.12 The Day>란 제목으로 상영 중이다. |
ⓒ 서울의 봄 |
극중에서 전두광은 이태신에게 공부 잘 하는 아들을 생각해야할 것 아니냐는 말을 넌지시 던진다. 그런데 현실 속에서 전두환에게 공조하지 않은 장태완의 아들은 실제로 의문사를 당한다. 그의 아들은 이듬해 서울대 자연대학에 수석 입학해 학교를 다녔지만 겨울 방학이 되자 도서관에 나간다고 길을 나선 뒤 실종이 된다. 그렇게 한 달간 연락 두절된 상태로 있다가 경북 칠곡군 낙동강변에서 변사체로 발견이 된다. 전두환 신군부 독재의 공포정치가 서늘하게 다가오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정의가 이런 식으로 끝나버리면 누가 정의롭게 살겠냐는 회의적인 생각마저 들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서사가 꼭 해피 엔딩일 이유는 없다. 우리가 사는 현실 자체의 인생들도 모두 해피 엔딩만은 아닌 것처럼. 이야기 자체가 중요하면 그것은 후대의 어느 시점에서 반드시 유의미해진다. 이것이 국가가 의도적으로 숨겨 놓거나 왜곡된 역사가 있다면 이를 소환해 내 해결해야하는 이유다.
국가가 저지른 과거의 잘못을 바로 잡고 국가를 정의로운 방향으로 끌고 가는 것은 중요하다. 차세대 아이들이 정의로울 때 좋은 것이 온다는 것을 배우며 자라게 된다. 반면 국가가 불의한 상태 속에 자라나는 아이들은 정의로우면 피해를 본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학습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 정의로운 국가를 만들 필요가 있다. 그렇게 역사를 바로 세워놓아야 비로소 우리는 역사에 대한 올바른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이 지점에서 <1987>, <택시운전사>, <화려한 휴가>, <26년> 그리고 <서울의 봄>과 같은 영화가 가지는 사회적 역할과 영향은 실로 크다 하겠다. 이것이 바로 문화가 가지는 힘이 아닌가 싶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서울의 봄'과 같은 영화를 극장에서 더 많이 볼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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