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새로운 1년" 에픽하이가 자축한 성대한 20주년

이현파 2023. 12. 19.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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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에픽하이의 20주년 콘서트

[이현파 기자]

 그룹 에픽하이(왼쪽부터 미쓰라 진, 타블로, 투컷)의 20주년 콘서트가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 아워즈
 
나는 '에픽하이 키즈'다. 학창 시절에는 에픽하이로부터 힙합을 배웠다. 사춘기의 셀 수 없는 밤을 그들의 노래로 위로받았다. 에픽하이의 문학적인 가사를 달달 외우며 중학생 시절의 문화적 허영심도 충전했다.

나이가 조금 들고 나서는 그들이 부르는 사랑 노래에 아파할 수 있게 되었다. 에픽하이는 자신들의 커리어를 주가의 등락에 비유했다. 타블로의 멘트를 빌리자면, 나는 그들의 '가장 O 같은 순간'과 다시 화려하게 일어서는 모습을 모두 지켜보았다. 그렇게 20여 년의 시간 동안 에픽하이와 동시대를 함께 했다.

지난 12월 15일부터 17일에 걸쳐, 서울 올림픽공원 SK 핸드볼경기장에서 에픽하이의 20주년 콘서트가 열렸다. 20주년이라는 상징성에 맞게, 전광판에는 에픽하이가 지금까지 발표한 열 장의 정규 앨범을 상징하는 이미지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그리고 명반 4집 < Remapping The Human Soul > (2007)의 오프닝을 장식하는 '백야'의 비트가 둥둥거렸다.

"알기도 전에 느낀 고독이란 단어의 뜻, 세상은 쉽게 변해 매 순간이 과거의 끝..."
- '백야' 중

공중에 떠 있는 무대에서 타블로가 랩을 하면서 등장했다. 이윽고 관중석 앞 무대에서 배턴을 이어받은 미쓰라는 2005년 발표곡인 'Lesson 3'를 부르며 등장했다. 관객들은 잊고 지냈던 옛 명곡 앞에 열광했다. 그리고 이어진 'Fan'을 비롯해 'Fly', '비 오는 날 듣기 좋은 노래', '연애소설', 'One' 등 모두를 아우르는 히트곡도 빠지지 않았다.

팬들은 추억을 자극하는 옛 명곡들에 열광했다. 'Map The Soul', '연필깎이' 같은 곡이 울려 퍼질 때는 그들의 앨범을 CDP로 듣던 10대의 어느 밤으로 돌아간 듯했다. 에픽하이의 출사표였던 'Go'(2003), 그리고 에픽하이의 20년 역사를 노래하는 'Prequel'(2022)를 섞은 구성도 인상적이었다. 찬란한 현재와 미숙한 과거가 절묘하게 조우했다.

화려한 게스트 군단 역시 눈을 모았다. 15일에는 다이나믹 듀오와 하동균, 16일에는 넬과 싸이가 등장했다. 17일에는 성시경, 그리고 '에픽하이 제 4의 멤버'로 불리는 윤하가 가세했다. '비 오는 날 듣기 좋은 노래'를 부르며 등장한 윤하는 공연 후반부에 '우산'을 부르러 다시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윤하와 에픽하이의 오랜 우정처럼, 에픽하이의 팬덤 '하이 스쿨'도 윤하를 따뜻하게 맞이했다.

세 시간의 공연에서 빛난 것은 베테랑의 노련함이다. 개그맨처럼 익살스러운 멘트도 붕 뜨지 않고 셋 리스트(선곡표)에 녹아 들었다. 본 무대부터 플로어, 2층까지 공연장을 최대한 넓게 활용하는 연출도 훌륭했다. 물론 세 남자가 빚어내는 호흡과 라이브 실력 역시 흠이 없었다. 여러 곡을 소화한 상태에서도 'New Beautiful'을 부르면서 전력 질주하기도 했다. 국내외를 가리지 않는 공연 경험이 쌓은 공력이다.

진지한 음악 색깔과는 별개로, 에픽하이는 공연 내내 특유의 유쾌한 태도를 고수했다. 무대 여러 곳을 오가며 관객과 소통했다. 투컷이 영화 <바비>의 켄(라이언 고슬링 분)이 되어 노래를 부르는 영상, 공익 광고를 연상하게 하는 영상으로 관객의 폭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이윽고 이어진 노래는 슬픈 랩 발라드 '1분 1초'였다.)

공연에 앞서 화제가 된 에픽하이의 첫 응원봉 '박규봉' 역시 공연을 더 풍성하게 만들었다. 중앙 통제에 따라 수천 개의 박규봉이 곡에 맞춰 반짝거렸다. 팬들이 아티스트를 향해 단체로 욕설을 내뱉는 듯한, 독특한 풍경이 연출되었다. 이 장면이 하이 스쿨과 에픽하이의 독특한 유대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20년 동안 바뀐 것, 바뀌지 않은 것
 
 그룹 에픽하이의 20주년 콘서트가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 아워즈
 
공연 말미, 타블로는 20년이라는 숫자가 주는 무게감을 고백하면서도, 팬들이 에픽하이를 지켜주었다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20년은 많은 것을 바꾸었다. 에픽하이 키즈였던 1990년대생은 30대가 되었다. 20대 청년이었던 세 남자는 나란히 40대 유부남이 되었다.

데뷔 초 힙합 악동으로 불리던 이들은 이제 공연 포스터에 적힌 문구처럼 'K 힙합의 애비'를 자처할 수 있는 위치에 올랐다. '지금의 추억은 그때의 꿈(Prequel 중)'이라 말할 수 있는 여유도 있다. 습한 홍대 지하에서 살던 그들은 이제 세계 최대의 뮤직 페스티벌인 '코첼라'에 초대받는다. 방탄소년단부터 래퍼 릴보이까지, 수많은 아티스트가 에픽하이가 자신에게 미친 영향을 고백한다.

그러나 에픽하이는 거대한 유산을 축적한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계속 새로운 음악을 내놓고, 현재의 존재가 되고자 씨름한다. 공연에도 그 답이 있다. 이번 공연은 끝내 꺾이지 않고 달려온 20년에 대한 자축이자, 앞으로 펼쳐질 20년에 대한 헌사였다. 타블로는 "데뷔 21주년이 되는 내년을 새로운 1주년으로 삼겠다"고 외쳤다. 함께 나이 들어가는 가수의 태도가 남긴 여운이 컸다. 10집 앨범의 제목처럼 '에픽하이가 여기에 있다(Epik High Is Here)'.

"어지럽고 미친 세상인데 (삶이 나를 괴롭히는데)
오 지겹고 지치는 게 삶인데 (그게 우리네 삶인데)
나 오늘도 (내일도) 미소 짓고 사는 게 (나 그렇게 살아가는데) 너가 있기에"
- '사진첩(에픽하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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