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없는 클린스만호, 황의조 대체자보다 더 걱정되는 것
[이준목 기자]
▲ 인터뷰하는 클린스만 감독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중국과의 경기에서 3-0으로 승리를 거둔 축구대표팀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11월 22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입국장에서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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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년 만에 아시아 정상을 노리는 한국축구가 본격적인 '아시안컵 모드'로 접어든 가운데, 클린스만호의 국내 훈련 소집 명단이 발표됐다. 대한축구협회(KFA)는 지난 18일, 1월 카타르에서 개최되는 2024 AFC 아시안컵을 대비한 국내파 K리거들과 일부 해외파 중 소집이 가능한 선수들을 모아 훈련명단 16인을 발표했다.
명단은 K리거 11명, J리거 1명, 유럽파 4명으로 구성됐다. 이재성(마인츠), 황인범(FK 츠르베나 즈베즈다), 정우영(VfB 슈투트가르트), 조규성(미트윌란) 등 유럽파지만 소속리그가 휴식기를 맞이하여 귀국 가능한 선수들 위주로 명단에 포함됐다. 훈련은 오는 26일부터 31일까지 실내 훈련으로만 진행된다. 유럽파를 포함한 클린스만호의 아시안컵 최종명단은 28일 정도에 발표될 예정이다.
클린스만호의 이번 국내 훈련명단은 소속팀 일정으로 포함되지 않은 손흥민(토트넘), 이강인(PSG), 김민재(바이에른 뮌헨) 등 일부 주전 유럽파를 제외하고 사실상의 아시안컵 확정 엔트리로 평가받고 있다. 이미 클린스만호 출범 이후 꾸준히 발탁되어온 기존 선수들이 변함없이 이름을 올렸고. 새로운 얼굴이나 깜짝 발탁은 전무했다.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공격수 자리다. 최근 대표팀은 핵심 공격수였던 황의조(노리치)가 사생활 문제를 둘러싼 불법촬영과 성추문 의혹으로 축협으로부터 국가대표 자격을 잠정박탈당하며 사실상 아시안컵 출전이 어려워졌다. 이로 인하여 황의조의 대안을 준비해야 한다는 우려가 커졌다.
하지만 클린스만 감독은 이번 명단에서 공격수 포지션에는 유일하게 유럽파인 조규성 한 명만을 발탁했다. 올시즌 K리그 득점왕에 올랐던 주민규(울산)나 새 얼굴들은 이번에도 끝내 대표팀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다행히 현 대표팀 주전 스트라이커인 조규성이 소속팀에서도 쾌조의 활약을 이어가고 있는 상태다. 이번 명단에 포함되지 않는 유럽파 중 오현규(셀틱)라는 또다른 공격수도 있다. EPL 득점왕을 다투고 있는 손흥민과 황희찬 역시 유사시 스트라이커까지 소화할 수 있는 만큼 클린스만 감독으로서는 기존 멤버들로도 충분히 대안이 가능하다는 것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통 9번 스트라이커 역할을 해줄 옵션을 오직 조규성 한 명만 데리고 아시안컵까지 가겠다는 것은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오현규는 셀틱에서 주전 경쟁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A매치에서는 아직 득점이 없다. 또한 앞으로 부상 변수 등으로 공격진에 언제든 추가 이탈자가 나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클린스만 감독은 세대교체 준비하고 있나
한국축구에게는 내년 아시안컵 우승이 중요한 목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뒤에도 축구는 계속 이어진다. 대표팀 감독의 임무는 당장의 성적만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팀을 발전시키고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이다.
히딩크나 허정무, 벤투 감독처럼 역대 성공했다고 평가받는 대표팀 감독들은 비판을 받던 시절에도 '경쟁과 실험'을 결코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는 시간이 걸려도 결국 좋은 선수들을 발굴-성장시키는 성과로 이어졌다. 황인범이나 이강인처럼 처음에는 대표팀에서 자리를 잡지 못했던 선수들도, 몇 년에 걸쳐 시행착오를 딛고 경험을 쌓으며 결국 뒤늦게 포텐이 터지기도 한다. 대표팀 역시 계속해서 육성과 실험을 병행해야 하는 이유다.
반면 클린스만 감독은 최근 A매치 연승 행진으로 비판 여론이 잠시 잠잠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워크에식과 대표팀 운영 방식을 둘러싼 의구심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는 한국 사령탑 부임 이후 주로 해외에서 체류하여 K리그 점검을 코치들에게 일임하고 국내파를 등한시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을 받아왔다.
클린스만 감독은 '대표팀 감독은 특성상 국제적으로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논리로 자신의 행보를 정당화했지만, 정작 자신이 지도하고 만들어나가야 할 팀의 구성원 대다수가 한국에 있는 상황에서 해외로만 나도는 행보는 '주객전도'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이번 훈련명단만 봐도 문제는 단지 황의조의 대체자를 뽑지 않았다는 것만이 아니었다. 일례로 풀백 이기제는 정작 소속팀 수원 삼성에서는 10월 이후 출전명단에서 제외되고 팀이 강등까지 당할 만큼 부진했는데도 대표팀에는 또다시 이름을 올렸다. 이기제의 대표팀에서의 활약 역시 좋았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클린스만 감독은 아랑곳없이 또다시 그를 선발했다. 이기제 외에도 수비진에는 올시즌 폼이 저하되었다고 평가받던 김태환(울산)이나 김진수(전북) 등 30대 베테랑들이 중용되고 있다.
이번 아시안컵은 대회에 등록하는 최종 엔트리가 23명에서 26명으로 늘어난 상황이었다. 명단 구성에 여유가 생긴 만큼 설사 아시안컵까지 데려가지 않는다고 해도, 최소한 다양한 선수들을 불러서 실험이라도 할 수 있는 기회였지만 클린스만 감독은 사실상 익숙한 선수들 위주로 최소 인원만을 선발했다. 과연 클린스만 감독이 K리그 선수들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 아시안컵 이후의 세대교체는 얼마나 진지하게 대비하고 있는지 우려되는 대목이다.
클린스만 감독은 항상 '아시안컵 우승'을 목표로 강조하며 대회 성적으로 평가를 받겠다고 비판을 회피해왔다. 그런데 과정은 생략하고 그저 결과만 놓고 평가해달라는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전임 대표팀 감독들도 저마다 비판과 논란은 있었지만, 적어도 그들은 먼저 확고한 축구철학을 바탕으로 장기적으로 한국축구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과 팀이 만들어져가는 과정을 일관성있게 제시했다. 클린스만 감독처럼 절차와 과정에서 온갖 잡음을 일으키면서도 무턱대고 성적을 내겠다고 호언장담만 내세웠던 것은 아니었다.
한국축구는 역대 최고 수준의 유럽파들을 보유하며 이번 아시안컵이 64년 만의 우승을 위한 적기라고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클린스만 감독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운좋게 부임과 동시에 이미 만들어진 전력을 물려받은 것에 불과하다. 아무리 좋은 전력을 갖추고 있어도 정작 장수가 그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여 전쟁에서 패한 경우는 숱하게 많다.
황의조의 갑작스러운 이탈처럼 생각지 못한 변수들은 아시안컵 무대에서도 언제든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그러한 위기가 눈앞에 닥쳐왔을 때 클린스만 감독의 머릿속에는 과연 '대안'이라는 게 준비되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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