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생 조수아, 삼성생명의 '게임 체인저'
[양형석 기자]
삼성생명이 안방에서 공동선두 KB를 상대로 짜릿한 재역전승을 거뒀다.
임근배 감독이 이끄는 삼성생명 블루밍스는 18일 용인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우리은행 우리WON 여자프로농구 3라운드 KB스타즈와의 홈경기에서 67-59로 재역전승을 따냈다. 2쿼터까지 35-23으로 앞서던 삼성생명은 후반 KB의 반격에 밀려 4쿼터에서 49-54로 역전을 허용했지만 박지수의 5반칙 퇴장 이후 다시 경기를 뒤집었고 8점 차이로 KB를 제압하며 5할 승률 회복과 함께 4위 하나원큐와의 승차를 1.5경기로 벌렸다(6승 6패).
삼성생명은 포인트가드 신이슬이 15득점 3리바운드 4어시스트 2스틸로 좋은 활약을 선보였고 슈터 강유림도 3점슛 3방을 포함해 13득점 3리바운드 2어시스트 1블록슛을 기록했다. 하지만 삼성생명이 선보인 짜릿한 재역전승의 중심에는 역시 이 선수가 있었다. 승부처였던 4쿼터에만 3점슛 2방을 포함해 10득점을 퍼부으며 12득점 6리바운드 3스틸 1블록슛으로 공수에서 알토란 같은 활약을 선보인 삼성생명의 '게임 체인저' 조수아가 그 주인공이다.
▲ 조수아는 신한은행의 이다연, KB의 양지수와 함께 2003년생 선수들 중 가장 돋보이는 활약을 하고 있다. |
ⓒ 한국여자농구연맹 |
모든 단체 구기스포츠가 비슷하지만 농구에서도 포지션 중복은 팀 전력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농구에서는 포지션마다 그 자리에서 해줘야 할 역할이 있기 마련인데 같은 포지션에 비슷한 플레이스타일을 가진 선수 여러 명이 동시에 코트에 들어가면 동선이 겹칠 수밖에 없고 결국엔 팀 성적에 마이너스가 된다. WKBL에서 포지션 중복으로 인해 큰 손해를 봤던 대표적인 팀이 바로 2000년대 중반의 KB였다.
농구대잔치 시절 조문주, 이강희, 박현숙 등을 앞세워 세 번의 우승을 차지했던 KB는 프로 출범 후 한 번도 챔프전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다. 김지윤과 외국인 선수 셔튼 브라운이 원투펀치로 활약하던 2002년 겨울리그 준우승이 프로 출범 후 KB의 최고성적이었다. 이에 KB는 2004년 WNBA 도전을 마치고 국내로 돌아온 '바스켓퀸' 정선민을, 2005년에는 2004년 겨울리그 금호생명 레드윙스 우승의 주역 곽주영을 차례로 영입했다.
정선민과 곽주영이 가세하면서 KB는 기존의 신정자와 함께 '토종 빅3'를 구성하는데 성공했다. 문제는 세 선수 모두 외곽보다는 골밑 플레이에 익숙한 파워포워드 또는 센터 포지션의 선수들이라는 점이었다. 그렇다고 힘들게 구성한 빅3 중 한 명을 벤치로 돌리는 것도 전력낭비였다. 이에 KB는 금호생명 시절 종종 외곽슛을 터트리기도 했던 183cm의 곽주영을 슈팅가드로 변신시키는 독특한 선수구성을 들고 나왔다.
하지만 결과는 그리 좋지 못했다. 2006년 여름리그에서 외국인 선수로 203cm의 장신 센터 마리아 스테파노바까지 가세한 KB는 주전 라인업 5명 중 4명이 신장 180cm가 넘는 장신으로 구성된 '빅라인업'을 구축했지만 안타깝게도 포지션의 균형이 맞지 않았다. 무엇보다 스테파노바가 24.3득점 18.3리바운드 4.1블록슛을 기록하면서 골밑을 지배했기 때문에 나머지 선수들은 외곽을 겉돌 수밖에 없었다.
결국 KB는 2006년 여름리그 챔프전에서 삼성생명에게 2승 3패로 패하면서 우승이 좌절됐고 2006년 정선민이 신한은행 에스버드로, 신정자가 금호생명으로 이적하면서 KB의 빅라인업은 얼마 가지 못하고 해산됐다. KB의 빅라인업 실패는 '아무리 개인기량이 뛰어나더라도 특정 포지션에 많은 선수가 몰리면 좋은 성적을 낼 수 없다'는 교훈을 남겼다. 하지만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후 삼성생명에 포지션 중복 현상이 다시 생겨나기 시작했다.
▲ 조수아는 18일 KB전에서 결정적인 3점슛 2방을 포함해 4쿼터에서만 10득점을 폭발했다. |
ⓒ 한국여자농구연맹 |
2015-2016 시즌이 끝나고 어시스트상 3회, 챔프전 우승 5회에 빛나는 이미선(삼성생명 코치)이라는 걸출한 가드가 은퇴한 삼성생명은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가드수집에 열을 올렸다. 2015-2016 시즌 신인 드래프트에서는 전체 1순위로 온양여고의 장신가드 윤예빈을 지명했고 최대어 박지수를 놓친 2016-2017 시즌 신인 드래프트에서는 인성여고의 이주연을 지명하면서 미래를 대비했다. 하지만 이는 삼성생명 '가드수집'의 시작에 불과했다.
삼성생명은 2017-2018 시즌 신인 드래프트에서도 재일교포 가드 황미우(신한은행 매니저), 2018-2019 시즌에는 온양여고의 포인트가드 신이슬을 지명했다. 그렇게 가드 포지션의 유망주군이 포화상태가 된 삼성생명은 2020-2021 시즌 신인 드래프트에서도 온양여고의 가드 조수아를 전체 2순위로 선택했다. 이미 윤예빈과 이주연이 주전급 선수로 자리잡은 상황에서 조수아까지 지명한 것은 '포지션 중복'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조수아는 지난 시즌 WNBA 출신의 혼혈선수 키아나 스미스까지 가세하면서 더욱 포화상태가 된 삼성생명 가드진에서 매 시즌 조금씩 자신의 입지를 넓히고 있다. 물론 지난 시즌에는 윤예빈과 스미스, 이주연의 부상이라는 커다란 변수도 있었다. 하지만 조수아는 부상 선수들이 차례로 복귀한 이번 시즌에도 삼성생명이 치른 12경기에 모두 출전해 데뷔 후 가장 많은 6.2득점을 올리며 벤치에서 활력소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다.
18일 KB전은 어리지만 그 어떤 베테랑 선수보다 대담한 심장을 가진 조수아의 과감한 플레이가 삼성생명을 승리로 이끈 경기였다. 이날 이주연, 스미스보다 많은 24분34초를 소화한 조수아는 3점슛 2방을 포함해 12득점 6리바운드 2어시스트 3스틸 1블록슛을 기록하며 삼성생명의 재역전승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특히 49-54에서 터진 추격의 3점슛과 58-58에서 폭발한 결승 3점슛은 이날 경기 조수아 활약의 하이라이트였다.
이번 시즌 신이슬이 주전가드로 자리잡은 삼성생명은 이주연과 스미스가 복귀한 가운데 장신가드 윤예빈까지 정상적으로 출전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지금보다 더 강한 가드진을 구축할 수 있다. 여기에 2003년생 조수아가 삼성생명의 식스우먼으로 경기 분위기를 바꾸는 '게임 체인저'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다. '가드 부자' 삼성생명에서 미래가 창창한 만 20세의 어린 선수가 벌써부터 이 정도 활약을 해주는 것은 충분히 놀라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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