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어가 황룡으로 승천한 용소 설화가 있는 지질 명소
[이완우 기자]
▲ 진안 운교리 삼각주 퇴적층과 만취정 |
ⓒ 이완우 |
진안고원의 팔공산(1,151m), 선각산(1,142m)과 덕태산(1,118m)이 이어지는 산줄기인 데미샘과 백운동 계곡에서 섬진강의 물길이 열린다. 12월 중순에 제법 많은 눈이 내렸다. 높은 산등성이가 순백인 설경을 감상하며, 진안 백운면 운교리 삼각주 퇴적층의 지질 명소를 찾아갔다.
진안군 백운면 중심지에서 운계로를 따라 임실군 관촌면 방향으로 진행하면 섬진강 상류 강물을 건너는 백마교(白馬橋)에 이른다. 이 다리에서 왼쪽 제방은 '진안고원길'의 한 구간으로 '삼계석문천변길'이다. 강변 너른 모래톱에는 무성한 갈대의 누렇게 바랜 잎새와 갈꽃이 바람에 출렁인다.
▲ 진안 운교리 삼각주 퇴적층 |
ⓒ 이완우 |
이곳 운교리 삼각주 퇴적층은 약 1억 년 전 자갈, 모래, 진흙 등의 쌓여 만들어진 마이산과 같은 진안층 퇴적암이다. 절벽에서 보이는 줄무늬(층리)를 관찰하면, 한쪽으로 경사진 모습이 선상지 삼각주의 형상이 뚜렷하다. 1억 년 전의 하천 환경과 물의 흐르는 방향을 짐작할 수 있어서, 진안 분지에 퇴적물 공급했던 지질 시대의 환경과 역사를 알려주는 지질 자원이다.
강물을 건너다보는데 중심 소재인 삼각주 퇴적암 층리가 보이고, 오른쪽 절벽에 소나무 몇 그루 사이로 정자 한 채가 보인다. 넓은 갈대밭의 모래톱과 습지 너머로 섬진강의 급한 여울이 절벽 단애 앞을 가로막고 있어서 곧바로 접근할 수는 없다.
건너편 절벽의 정자로 가기 위하여 백마교로 돌아가서, 오른쪽 강변의 농로를 따라 300m쯤 걸었다. 진창길 농로는 오래 방치된 듯하고 물이 넘쳐 습지 같다. 농로도 끊기고 100m쯤은 강물을 가늠하며 경사 급한 비탈길을 미끄러운 낙엽에 유의하며 조심스레 절벽과 정자에 접근하였다.
▲ 진안 운교리 만취정 앞 강물과 퇴적층 |
ⓒ 이완우 |
정자에 편액처럼 민화가 한 폭 걸려 있는데, 예사롭지 않은 품새에 다가가 보았다. 거센 강물과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큰 황룡이 역동하는 기세가 대단하다. 그림 다섯 곳에 잉어가 용으로 변신한 듯 승천하고 있다. 황룡오리출상원도(黃龍五鯉出象源圖)라고 제목이 보인다.
가야산 해인사에서 1609년에 발간한 <신옹부유책(神翁遺符冊)>에 이 민화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전라도 관찰사 하연이 1422년에 전라도 지방을 순시하는데, 구례 산동 지역에서 그의 꿈에 황룡이 나타났다.
황룡은 아들 다섯을 살려달라고 관찰사에게 청을 한다. 하인이 5마리의 잉어를 찬거리로 잡아 왔다. 관찰사는 구례 산동의 용소에 잉어를 놓아주게 하였다. 꿈에 다시 황룡이 나타나 관찰사에게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하였고, 하연은 용을 보고 싶다고 하였다. 3일 후에 하연은 용소에서 큰 용과 함께 5마리의 잉어가 용으로 변신하여 승천하는 장면(황룡오리출상원도)을 목격하였다.
▲ 진안 운교리 만취정 |
ⓒ 이완우 |
하연(河演, 1376~1453)은 조선 초기에 영의정을 지낸 문신이며 시인이었다. 그는 정몽주의 제자였고, 단종의 왕위 계승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단종의 폐위 이후 하연의 자손들에게 조정에서 여러 차례 관직을 제수하였으나, 하연의 자손들은 절의를 지키며 정치를 멀리하였다.
만취정에 새겨진 다섯 형제의 이름 중에서 담락당(湛樂堂) 하립이 눈에 띄었다. 하립은 하연의 12대 후손으로, 여류시인 김삼의당(金三宜堂, 1769~1823)의 남편이다. 하립과 김삼의당은 부부 시인으로서 남원에서 태어나고 생활하다가 이곳 진안 마령에서 오래 살았다. 구례 산동의 용소를 배경으로 한 설화가 이곳 진안 백운에 만취정의 주제가 될 만했던 실마리가 풀린다.
▲ 진안 운교리 만취정 민화 |
ⓒ 이완우 |
다시 삼각주 퇴적층이 잘 보이는 전망대로 돌아가서 다시 거대한 삼각주 퇴적층 바위와 만취정을 바라보았다. 운교리 퇴적층 바위의 경사진 층리가 강물에서 승천하는 거대한 황룡으로 보였다.
아하! 만취정의 '송객정'이라는 다른 정자 이름이 수수께끼였는데, 이 궁금증도 풀릴 듯했다. 구례 산동의 용소에서 다섯 마리 잉어를 강물에 풀어준 것을 '나그네를 환송한다'는 의미로 송객(送客)이라고 표현했고, 하연의 후손들은 이곳 정자의 이름에 송객정이라는 별칭을 지어서 이 설화를 되살린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보았다.
큰 산에 오르면 큰 강물이 멀리 보이고, 작은 산에 오르면 작은 개울이 가까이 보인다. 산 따라 강 따라 길을 걷다 보면 뜻밖에 우리의 소중한 역사와 설화를 만나기도 한다.
▲ 진안 운교리 만취정 앞 용소 ⓒ 이완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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