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필 광고 액자... 시간이 멈춘 듯한 고도리 구멍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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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동환 기자]
▲ 대원슈퍼를 운영하는 이중현·유금열 부부. 3평 남짓 조그만 공간에 얼마나 많은 물건들이 있을까 싶어도, 동네 주민들은 대원슈퍼를 찾아 필요한 물건을 구매한다. |
ⓒ <무한정보> 황동환 |
"쌩쌩혀. 8자 넘으면 소용없이유."
나이를 묻자 돌아온 답이다. 홍성이 고향인 이중현(81)씨는 50년 전 서른한 살 때 예산 출신 아내 유금열(77)씨를 만나 백년가약을 맺고 봉산면 고도리에서 38년째 '대원슈퍼'라는 이름으로 구멍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 담배보루 포장지로 만든 현금 보관함의 모습이 ‘구멍가게’ 분위기를 더한다. 가수 조용필씨를 모델로 한 음료수 광고 액자. 부부는 시간이 더 지나면 가치가 높아질 것이라며 걸어놓고 있다. |
ⓒ <무한정보> 황동환 |
벽 한쪽엔 제작연도를 알 수 없는 맥콜 광고 액자가 눈에 띈다. 가수 조용필씨의 젊었을 때의 모습이 선명하다. 아내 유씨는 "버릴려고 했는데 '나중에 가치가 높아질 것'이라는 말을 듣고 그냥 걸어놓고 있다"라고 소개했다.
100년이 넘었다는 가게 건물은 그동안 용처가 몇 번 바뀌었다. 원래 아내 유씨의 부친이 운영하던 한약방이었는데, 장남이 가게를 물려받으면서 동네 슈퍼로 바뀌었다가, 부부가 인수해 '대원슈퍼'로 상호를 변경해 현재에 이른다.
가게와 붙어 있는 봉산면행정복지센터 주변은 40여 채의 주택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고, 술집도 네다섯 개, 구멍가게라는 이름이 더 잘 어울리는 동네 슈퍼도 네다섯 곳이나 있었다고 한다. 30~40년 전 일이다.
부부는 중매반 연애반으로 만났단다. 아내가 "저 이가 먼저 쫓아다녔다"며 폭로(?)해도 남편 이씨는 아내 곁에서 미소를 띠며 특별히 반박하지 않는다. 사실인 모양이다. 남편은 "집안을 보고 결혼했다"고 고백한다.
유씨는 시집을 가야한다는 부모의 강권에 못이겨 예산여중 졸업 뒤부터 다니던 예산역전 제사회사 경리직을 그만두고 봉산 고향집으로 왔다가 새마을교육 강사였던 남편을 만났다.
▲ 이중현씨의 고등학생 시절과 유금열씨의 젊은 시절 사진. |
ⓒ 이중현, 유금열 |
남편은 결혼 전부터 5톤 트럭 1대와 12인승 승합차로 유통업에 종사했고, 아내는 시댁 식구들을 뒷바라지 하며 남편을 도와 홍성 금마면에서 농약을 판매했다.
이씨는 "당시 지역에 차량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없다보니, 농산물을 실어다 서울 가락동 경매시장에 대신 팔아주는 일을 했다. 돌아올 땐 주류, 음료수, 과자, 생필품 등을 시중가보다 약간 저렴한 가격에 구매해 싣고 내려와 지역 가게에 납품하는 일을 했다"고 설명한다.
경기도 안양에 청과상회를 두고 홍성과 서울을 오가며 유통업에 종사했던 부부는 이씨의 처남이자 아내 유씨의 오빠가 운영하던 가게를 이어받고서는 '슈퍼' 운영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이씨는 "가게 운영에 소극적이었던 처남과 달리 본격적으로 운영한 장본인은 아내다"라고 말했다.
대원슈퍼 역시 남편이 공급하는 상품들을 취급했다. 다른 가게들보다 가격이 착하다보니 동네주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 결과 지금은 인근에서 유일한 구멍가게가 됐다. 유씨는 "2025년 8월 15일이면 정확히 40년이 된다. 한 10년 전까지 그럭저럭 영업이 잘 됐다. 그땐 손님이 많아 먹을 틈도 없었지만, 종일 굶어도 배가 안 고팠을 정도였다"고 전성기였던 시절을 회고했다.
그러면서 "생각해보니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집이 버스기사 숙소로 사용됐던 일이 기억난다"며 예전 가게 분위기를 알 수 있는 단서들을 하나씩 떠올렸다.
예전에 취급했지만 지금은 가게 진열대에서 사라진 대표적인 물건들로 크레용, 등사용지 등을 언급했다. 초등학생, 중학생들이 학용품을 사러 왔고, 학교 교사들도 등사용지를 사기 위해 가게 문턱이 닳도록 찾았다고 한다. 기저귀·생리대·돗자리 등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동네 만물상이었던 셈이다.
"예전엔 종류만 100여 종이 넘었는데 지금은 10여 종으로 줄어든 것 같다. 버스가 다녔으니까 버스 승차권도 팔았다"며 그리움을 전한다.
손만 대도 힘없이 스르르 흘러내릴 것 같은 흙벽 위로 허름한 기와지붕이 얹혀 있는 모양새가 위태해 보인다. 웬만한 농촌마을에도 마트와 편의점이 들어서는 시대에 이런 구멍가게가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가게가 너무 오래되고 낡아 정리할까 고민했다는 부부는 쉽게 건물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가게는 안쪽에 부부의 살림집과 연결돼 있다. 흙으로 지은 집과 가게는 유씨의 부모가 살던 집이다. 부모님 밑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추억이 서린 공간인데다, 30대에 만난 남편과 함께 생업을 꾸리며 3남매의 자녀를 키우던 사업장이다. 부부에게는 단순한 구멍가게 이상의 역사가 아로새겨져 있다.
부부는 가게 운영을 위해 아내의 고향집이기도 한 대원슈퍼로 거처를 옮기면서, 봉산면 최초로 상수도를 개설한 일을 자랑스러워했다.
▲ 1995~6년 대원슈퍼(위). 현재 대원슈퍼(아래). |
ⓒ <무한정보> 황동환 |
가장 많이 변한 것은 무엇일까? 그는 "날씨가 옛날 같지 않다. 가게들도 많이 없어졌다. 사람을 불러들여야 하는데, 살고 있는 집들을 다 철거하면서 사람들을 내쫓고 있다"며 한숨을 내쉰다.
남편은 고도리 이장이었던 시절, 예산군에서 추진했던 색깔있는 마을을 만들기 위해 전원주택 부지를 조성하는 등 공을 들였는데 흐지부지된 것을 가장 아쉬워하고 있다.
낯선 행인의 눈에는 마치 일부러 보존하기 위한 문화재 건물처럼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번듯한 관공서 건물과는 확연히 이질감을 주고 있지만, 가게 앞에 잠시 머물다 보면 시간이 30~40년 전에 멈춘 듯, 동네골목에서 해떨어지는 줄 모르고 놀던 어린 시절의 분위기에 젖어든다.
대원슈퍼는 우리 주위의 낯익은 것들,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는 마모되고 낡은 것들의 소박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 같아 정겹고 반갑다. 가까이 다가가니 세월 따라 여러 사람이 스쳐지나가고 세대도 바뀌면서 삶의 애환, 입꼬리가 절로 올라가게 하는 수많은 이야기가 가게 진열대 상품들 사이마다 걸려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남 예산군에서 발행되는 <무한정보>에서 취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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