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마늘 캐던 이탈리아 농부를 다시 만났습니다
[조계환 기자]
유기농사를 짓는 우리는 농한기를 맞아 특별한 여행을 계획했다. 작년 우리 농장을 방문했던 이탈리아 유기농 농부의 농장을 찾아간 것! 로마에서 기차를 타고 피렌체로 이동했다. 2시간 남짓 달려 도착한 피렌체 역에는 밥티스트와 일라리아 가족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지난 10일부터 일주일간 이탈리아 팜스테이가 시작됐다.
▲ 팜스테이로 한국에 찾아왔던 이탈리아 유기농부의 농장에 방문했다. 피렌체 근처의 아름다운 농장, 고객들이 직접 농장으로 찾아와 직거래를 하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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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티스트와의 인연은 작년 6월에 시작됐다.
"우리는 토스카나 지방에서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유기농사를 짓는 농부인데, 한국을 좋아해서 여행할 예정이다. 괜찮다면 당신의 유기농장에 방문해서 농사에 대해 공유하고 배우고 싶다."
▲ 밥티스트(왼쪽에서 두 번째)와 미국 농부, 싱가포르 친구와 마늘 수확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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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미국 농부 리즈도 와 있었는데, 자연스럽게 한국, 이탈리아, 미국 유기농부가 만나는 자리가 됐다. 재미있게도 모두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농사를 짓고 직거래로 채소를 판매하는 농부들이었다.
하루가 금세 지나갔다. 기후위기로 날씨가 극악하게 변하면서 농사짓기가 어려워지는 현실, 육체노동의 고단함, 하지만 환경을 보호하는 유기농부로 산다는 보람과 자부심, 직거래 하면서 생기는 소소한 일 등 국적은 달라도 모두가 비슷비슷한 경험과 고민을 가지고 있는 것이 재미있었다.
밥티스트는 특히 <육룡이나르샤>라는 한국 사극을 우연히 보게 된 후 한국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좋아하게 됐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더 나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 유럽과 다른 색다른 유교문화, 격렬한 권력 투쟁 속에서 벌어지는 역사 등이 재밌었다고 했다. 50부작이나 되는 이 드라마를 두 번이나 시청했다고. <뿌리 깊은 나무>도 재미있게 봤는데, 세종대왕에 관심을 갖게 되어 한글도 금세 배웠다고 했다.
▲ 농장으로 들어가는 작은 길에 손으로 직접 만든 간판이 서 있다. 농장 소개와 직거래로 농산물을 판매하는 시간 등이 적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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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티스트와 일라리아의 농장은 피렌체에서 차로 4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대도시랑 가까워서 고립감도 덜하고 사람들이 직접 농장에 방문해서 채소도 구입해갈 수 있었다. 병원도 학교도 가까웠다. 도시 한복판을 살짝 벗어나면 넓은 밭이 펼쳐져 있었다.
▲ 도착한 다음날엔 피렌체 관광을 시켜 줬다. 두오모 성당 등 유명 관광지를 방문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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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일만 함께 하려고 갔는데,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피렌체는 꼭 보고 가야 한다며 기꺼이 하루 시간을 내어 피렌체 관광을 시켜줬다. 관광객이 정말 많고 방문한 유적지들 모두 아름다웠다.
▲ 토스카나라는 지역 이름을 가진 블랙 케일, 주로 국을 끓여먹는 채소라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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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와 컬리플라워, 루꼴라, 포기 상추, 양배추, 치커리, 블랙 케일 등을 함께 수확했다. 수확하는 방법이 우리와 조금씩 달랐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채소도 달랐다. 토스카나라는 블랙 케일은 마치 선인장처럼 생겼는데, 이 지역 이름을 그대로 사용할 정도로 현지 사람들이 좋아하는 채소라고 했다.
▲ 함께 여러 가지 채소를 수확했다. 고양이와 강아지가 졸졸 따라다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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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제철꾸러미라는 방식으로 유기농 채소 회원을 모집해 매주 택배로 보내는 방식으로 직거래를 하는데 비해, 이탈리아는 택배 시스템이 좋지 않아서 모두 직거래 장터에서 팔거나, 고객들이 직접 농장에 방문해 농산물을 사간다고 했다.
▲ 갓 수확한 채소들이 참 예뻤다. 마침 직거래하는 날이었는데 오는 고객들에게 한국에서 온 유기농 농부라며 인사를 시켜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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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 시작한 지 5년 정도 된 농부들답게 열정이 넘쳤다. 이곳에 귀농하면서 100년도 더 된 집을 땅과 함께 구입해 아직까지 계속 보수중이라고 했다. 이제 3살이 되어 가는 아들은 스마트폰 대신 밭에서 뛰어놀고 있었다. 아이가 아는 채소 이름이 벌써 수십 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 밥티스트는 농부이자 요리사였다. 피자와 파스타를 정말 맛있게 요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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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농부들은 어떤 음식을 먹는지 궁금했는데, 정말 계속 파스타와 피자를 먹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먹는 파스타 형태부터, 이게 정말 파스타인가 싶을 만큼 색다른 모양의 파스타까지 매일같이 다양한 파스타를 먹었다, 아침에는 밥티스트가 직접 구운 잡곡빵에 이웃이 만들었다는 치즈를 함께 먹었다. 물론 농장에서 갓 수확한 신선한 채소 샐러드는 기본.
▲ 김치를 함께 만들었다. 신선한 배추와 마늘, 양파, 소금을 곁들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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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기 전날 오후엔 밥티스트가 김치와 호떡을 함께 만들자고 했다. 농장에서 자라고 있는 작지만 맛있는 배추를 수확해 단순하고 기본적인 김치를 만들었다. 양파와 마늘을 다지면서 눈물을 줄줄 흘리긴 했지만, 모두들 굉장히 즐거워했다.
갓 만든 김치와 갓 구운 피자로 저녁 식탁을 차리니 맛이 묘하게 조화로웠다. 식사 후엔 설탕과 땅콩을 넣은 호떡 만드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국 여행할 때 정말 맛있게 먹었다는데, 호떡을 이렇게 쉽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 이별 선물로 농장에서 수확한 꽃을 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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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금세 지나갔다. 아쉬운 이별의 선물로 일라리아가 직접 수확한 꽃을 선물로 주었다. 기차역에서 꼭 다시 만나자며 포옹을 하고 헤어졌다.
먼 곳에 떨어져 살지만 같은 생각을 하고 유기농사를 짓는 이탈리아 농부들과 따뜻한 연대감을 공유한 시간이었다. 예쁘고 건강하게 사는 젊은 농부들의 모습을 보니 기운도 나고 즐거웠다.
우리가 함께 나누는 유기농이라는 '씨앗'이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데 기여하기를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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