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마음을 치료하기 위한 진료 스킬은…

김동석 춘천예치과 대표원장·작가 2023. 12. 19.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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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석의 의료인문학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병원에 있는 내 책상 서랍에는 위점막 보호제가 늘 있다. 이런저런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일이 많이 생기기 때문에 위산이 많이 분비될 때 먹기 위해서다. 최근 몇 년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신경 써야 할 일들이 많아져서인지 속이 쓰릴 때가 많았다. 위암에 대한 가족력이 있어서 속이 불편할 때마다 마음도 불안해진다.

나와 비슷한 나이인데 심한 치과 질환을 앓고 내 앞에 눕는 사람이 요즘 부단히 늘었다. 가장으로 사는 삶의 무게가 더욱 무거워지고 요즘은 경제가 어려워 생활이 무너지고 있다는 사람들이 늘었다. 이 와중에 치아마저 무너져 내리고 있다며 이만저만 우울한 게 아니라고 하소연한다. 내 속이 조금 쓰리고 더부룩해도 받는 그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은데, 하물며 많은 이를 뽑고, 이를 해 넣고, 목돈을 들여야 하는 급박한 현실을 마주한 사람들은 오죽 스트레스에 시달릴까.

많은 사람이 치과 치료를 받으면서 공포에 떨고 치료를 무서워하지만, 그보다 더한 마음의 병이 있다. 바로 우울증(憂鬱症)이다. ‘근심할 우(憂)’에 ‘막혀서 답답할 울(鬱)’이다. 치과에 오는 환자 중 근심이 없고 답답함이 없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치료하다 보면 이런 우울증에 걸린 듯 무기력하게 늘 체어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된다. 조금은 심할 정도의 정신적인 문제를 보이는 사람도 있다. 우린 그런 사람들을 간혹 ‘진상’으로 치부해버리고 깊은 얘기하기를 꺼리고 오히려 조심하게 된다. 마음을 헤아리고 감싸줘야 할 사람을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골든타임에 놓인 의사의 책임감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라고 불릴 정도로 흔한 질환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 많은 선입견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우울증이 있는 사람은 생각에 문제가 많아 대화가 안 통하고 취업도 잘 안 되고, 또 이 병은 제대로 완치도 힘들뿐더러 치료비도 비싸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우울증은 우리나라 성인의 25% 이상이 살면서 한 번 이상은 경험할 정도로 많이 사람이 겪게 되는 질환이다. 타인 또는 타 기관으로의 진료 기록 제공은 본인의 동의나 법에 명시된 예외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경우도 금지되어 있다. 회사에서 임의로 정신질환에 대한 의무기록을 조회할 수도 없다. 정신과 치료는 약물치료 외에도 상담 비용이 비싼 편이기는 하지만 우울증과 불안장애는 건강보험이 적용된다. 최근 실손의료보험도 적용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하지만 우울증에 관한 잘못된 선입견 때문에 적절한 시기에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국 치료의 골든타임을 놓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생기고 있는 것이 안타까운 우리의 현실이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을 진료하는 의사로서 책임감을 치과의사인 내가 굳이 가져야 할 필요가 있을까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치과 치료와 함께 우울증 치료를 함께 받는 사람이 거의 없는 현실을 생각해 보면 치과 치료를 받는 환자의 마음의 병을 헤아려야 할 의무는 오롯이 치과의사의 몫으로 남게 된다.

신경정신과 지인에게 상담의 스킬에 관해서 물어본 적이 있다.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그냥 잘 들어주세요”. 내가 전문적으로 상담을 할 위치는 아니라고 그렇게 말한 것일 수도 있지만, 난 그 말이 바르다고 느꼈다. 그리고 순간 진료실에서 얼마나 환자의 말에 귀 기울이고 또 마음의 생각을 물어봤는지 돌아봤다. 치과 치료는 잘했을지 몰라도 좋은 상담자의 역할은 하지 못했다. 마침 그날 우울증약을 먹고 있는, 치료에 불만을 표현하는 환자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듣다 보니 내가 한 치료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상한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전 같으면 말을 끊고 내 말만 전달하고 방을 나왔을 텐데 시간을 들여서 맞장구치며 끝까지 들어주었다. 환자는 속이 시원하고 마음의 짐이 없어진 거 같다면서 좋아하면서 병원을 나갔다. 난 그냥 듣기만 했다.

◇치유를 위한 말의 무게감
피에로처럼 빨간 코를 붙인 의사 패치 아담스. 그는 환자들을 웃게 만들고 싶어 한다. 환자의 즐거움을 위해 자신이 망가지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이런 모습은 남녀노소 모두 그에게 마음을 열게 해 준다. 영화 <패치 아담스>의 실제 주인공은 의사이자 코미디언인 헌터 도허티 아담스(Hunter Doherty Adams)다. 그는 의료계의 전통을 개의치 않고 환자와의 인간적인 관계를 중요시하면서, 환자의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자신만의 진료를 했다. 다른 동료 의사들은 그가 의사의 품위를 지키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물론 의사의 전문성을 의심할 정도의 친숙함을 넘어선 경박함은 오히려 치료에 부정적일 수 있다. 하지만 헌터 아담스가 늘 얘기하던 “의사는 환자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 존재”라는 큰 틀에서 본다면 그 경계는 일부 허물어지는 것이 좋을 때가 있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어서인지 오늘은 나도 역정을 내시는 어르신에게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재롱을 부렸다. 그 어르신의 웃는 모습을 처음으로 보았다. 때론 망가지는 모습이 더 전문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법이다. 마음의 감기는 의사의 ‘말’로 어느 정도 치료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학창 시절 진료를 하시던 교수님이 생각났다. 한 분은 늘 진지하게 연구하며 말없이 치료에 집중하고 환자들에게 엄하게 설명을 했다. 환자들은 늘 공손하고 머리를 숙였다. 또 다른 한 분은 진료실에서 얼마나 환자들과 수다를 떠는지 시끄러울 정도였다. 환자들도 말이 많고 교수님을 격 없이 대했다. 학생 때는 말 없이 진지하고 환자가 어려워하는 교수님이 왠지 멋있어 보이고 의사는 그런 모습이 맞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권위적으로 보이기가 오히려 쉽다는 것, 환자와 격 없이 얘기하면서 그 이야기들을 들어주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말에는 무게감에 있다. 그 무게감을 잃고 의사가 권위를 잃어서도 안 된다. 하지만 말의 무게는 서로 말을 주고받을 때 가벼워지는 법이다. 일방적으로 상대방만 무게감을 느낀다면 그 말은 다시 스트레스가 된다. 내 말이 환자에게 또 다른 무게의 짐이 되는 것은 아닌지, 환자의 말을 듣고 그 무게를 내가 잘 덜어주고 있는지 고민해 봐야 한다. 단순한 치료(Treatment)가 아닌 환자의 진정한 치유(Healing)를 원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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