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이 좋아 유원지 만든 창업가 “내 꿈은 감자 테마파크” [쿠킹]

김호빈 2023. 12. 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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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강하다. F&B 산업에 새로운 방향을 만들어 가는 스타트업 이야기다. 로컬에서 먹거리 혁명을 일으키고, 소비자가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가치 소비를 유도하고, 소외된 이웃과의 동행을 이끈다. 이들이 만들어낸 작은 틈이 세상을 바꾸는 큰 흐름으로 이어진다. 쿠킹은 F&B 흐름을 바꾸는 창업가를 소개하는 [뉴노멀을 만드는 F&B 리더들]을 연재한다.

“그냥 강릉에서 살고 싶었어요, 살고 싶어지니 뭔가를 해야겠더라고요.”

더루트컴퍼니의 김지우(32) 대표가 창업을 결심한 순간을 떠올리며 말했다. 강릉이 고향인 그는 울산에서 학교를 나온 후, 서울에서 여러 번의 창업을 했다. 그리고 강릉으로 돌아왔다. 강릉 토박이는 아닌 셈이다. 살고 싶어서 돌아온 강릉, 그곳에서 김지우 대표의 눈에 들어온 것이 ‘감자’였다.

강릉역에서 차로 5분, 강릉역과 강릉중앙시장을 잇는 길목에 더루트컴퍼니의 F&B 브랜드 ‘감자유원지’가 있다. 1층에서는 커피와 빵을, 2층에서는 로컬 식재료를 활용한 음식을 파는 '그로서리 스토어(grocery store)'이다. 인터뷰를 위해 택시 기사님에게 감자유원지로 가 달라고 하니 “식사하러 가세요?”라는 물음이 돌아왔다. ‘유원지’라는 이름에 걸맞게 이미 강릉에서 나름의 인지도를 쌓은 듯했다. 실제로 이곳은 창업 1년 만에 매출 6억원을 기록했다. 김지우 대표에게 창업 스토리와 로컬 창업의 성공 비결에 대해 물었다.

감자유원지 매장 앞에 선 김지우 대표. 그에게 감자유원지는 단순한 창업이 아닌 지역과의 공생을 고민한 결과다. 사진 아는동네


Q 강릉으로 돌아와 창업한 이유가 궁금하다.
태어난 곳에서 나의 정체성을 살린 비즈니스를 하고 싶었다. 대부분의 로컬 창업은 지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하는 경우가 많지만, 더루트컴퍼니의 시작은 강릉에 살기 위해 일을 찾은 개인적 동기도 있었다. 특히 강릉은 과거 25년간의 변화보다 최근 5년간의 변화가 훨씬 클 만큼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늘어난 수요에 비해 소비되는 콘텐트들은 여전히 낡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살고 싶은 강릉에서 재미있는 로컬 콘텐트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

Q 왜 하필 ‘감자’였나.
감자는 수익성이 높지 않은 작물이다. 땅도 많이 필요하고 주로 여름에 수확하기 때문에 육체적으로도 힘들다. 그러다 보니 기술 농업 분야에서도 감자 같은 구황작물은 다른 채소나 과일보다 인기가 없다. 우스갯소리로 20년 후에도 스마트팜이 안 생길 만큼 경제성이 없다고도 한다. 하지만 감자는 지금도 어딘가에서 소비되고 있을 만큼 수요가 확실하다. 누군가는 감자 농가의 수익성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Q 흔히 강원도 하면 감자라고 생각하는데 수익이 불안정한 이유는.
첫 번째는 감자 품종의 한계다. 쌀·사과·포도처럼 다양한 품종이 있고 품질에 따라 가격이 매겨지는 작물과 달리 감자는 사람들이 품종을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아무리 좋은 감자를 재배한다고 해도 시장에서 좋은 가격을 받는다는 확신이 없다. 두 번째는 출하 시기다. 강원도 감자는 봄에 파종 후 6월 말부터 수확을 시작하는 ‘하지 감자’인데 봄에 수확하는 전라도 지방의 ‘봄 감자’에 비해 출하량이 많아 자연스럽게 가격이 낮게 형성된다. 세 번째는 기술력 부족이다. 대부분의 농가가 오랜 기간 감자를 재배해 왔지만 정확한 재배 기술 없이 늘 해오던 경험치로 농사를 지어 수확량이 일정하지 않다.

씨감자를 파종하는 모습. 강원도 감자는 3월 말에서 4월 중순이 파종 시기이다. 사진 감자유원지


Q 전문성이 중요한 영역같다.
공동창업자인 권태연 이사의 아버지이자 국내 최초 씨감자 명인인 권혁기 대표가 큰 도움이 되었다. 권혁기 대표는 씨감자 전문 농업회사법인 ‘왕산종묘’를 세우고 국내 토양에 맞는 씨감자인 ‘단오’ ‘왕산’ ‘백작’ 등을 육성·보급하고 있었다. 초기에는 ‘왕산종묘’와 파트너십을 맺고 씨감자 보급과 함께 지역별, 품종별 재배 기술을 컨설팅해줬다. 기술을 지원하고 생산된 감자를 받는 계약 재배 형식으로 농가 수익을 안정시키려고 한 것이다.

감자유원지에서 수확한 감자의 모습. 씨감자 보급 후 생산량과 품질 모두 좋아졌다. 사진 감자유원지


Q 그 결과는.
수확한 감자의 품질은 좋았다. 하지만 납품된 감자의 물량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한때는 감자 400톤을 받을 정도로 농가 수가 늘었는데 도저히 유통과정에서 승산이 없어 보였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매년 버려지던 ‘못난이 감자’였다. 우리가 마트에서 보는 감자들은 대부분 120~200g 사이다. 그 외 상품성이 없거나 중량 미달인 감자들은 전부 버려지게 된다. 글로벌 통계에 따르면 한 해 감자 생산량의 33% 정도에 이른다. 500톤이 생산된다면 약 150톤이 버려지는 것이다. 남거나 버려지는 감자들을 차라리 직접 가공해 판매하면 어떨까 싶었다. 그렇게 ‘왕산’ 품종을 업사이클링해 감자 칩으로 만든 것이 ‘포파칩’이다.

Q 대기업과의 경쟁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사실 제품만으로는 대기업과 경쟁할 수 없다. 유통망이나 원가 경쟁력이 떨어진다. 하지만 감자가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자랐는지를 알면 그에 맞는 가공 조건을 설정하는 데 유리하다. 우리는 강릉의 농가에서 직접 감자를 받아 오기 때문에 다른 기업들보다는 조금 더 섬세한 가공 조건에서 감자 칩을 생산해 품질을 높일 수 있다고 자신했다. 실제로 포파칩은 2022년 7월 출시 이후 온·오프라인 누적 매출 4억원을 기록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현재 ‘소금’ ‘갈릭&버터’ ‘치즈’ 3가지 맛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점차 맛을 다양화하고 판매 채널도 넓혀갈 계획이다.

감자유원지 내부에 진열된 포파칩의 모습. 버려지는 못난이 감자를 업사이클링해 만든 포파칩은 출시 후 4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사진 감자유원지


Q 유통의 어려움에서 제품 생산이라는 새로운 해답을 찾은 느낌이다.
감자 농산업의 문제를 먼저 들여다봤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감자 농가 지원에서 시작했는데 지금은 감자를 이용한 제품까지 판매하고 있다. 여건에 맞게 여러 번의 변화를 거치다 보니 자연스럽게 종자부터 제품까지 감자 농업 전체를 아우르는 밸류 체인(Value Chain)이 형성됐다.
매우 다른 영역들을 동시에 하다 보니 영역별로 전문성을 가진 파트너를 찾는 법도 배웠다. 예를 들어 감자유원지 오픈 초기에는 메뉴 개발부터 주방 동선까지 생소한 부분들이 많았는데 대구에 있는 F&B 크리에이티브 그룹 ‘피키차일드컴퍼니’의 도움을 받아 해결할 수 있었다. 이런 파트너십을 통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핵심 기능에 집중하고자 했다.

Q 지금 집중하고 있는 핵심 기능은 무엇인가.
지금은 오프라인 공간인 감자유원지를 운영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감자유원지는 강릉에서의 새로운 음식 경험 제공을 모토로 한다. 개인적으로 여행지에서의 먹는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강릉은 음식 경험이 매력적이지 않다고 느꼈다. 감자를 포함한 대표적인 강릉의 식재료들을 새로운 관점으로 보여주고자 메뉴 개발에도 많은 공을 들였고 가격대도 1인당 1만 원대 정도로 부담스럽지 않게 설정했다. 감사하게도 지속해서 방문객이 늘고 있다. 2022년 3월에 오픈해서 지난해에만 3만명, 올해는 그 두배인 6만 명정도 다녀갔다.

감자유원지 외부 전경. 작년 3월 문을 연 뒤 올해만 6만 명이 다녀갔다. 사진 아는동네


Q 로컬 창업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미션을 입으로 떠들고 다니지 않아도 비즈니스 모델 안에서 자연스럽게 미션이 실현되게 해야 한다. 대부분의 창업가 교육을 보면 사회적 문제를 포착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아이템을 찾게 한다. 문제를 이해하기보다 ‘문제화’시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생각한 비즈니스 모델이 시장에 먹히지 않는 순간 유연한 변화를 하지 못하고 사라지는 스타트업들이 많다. 지역의 문제를 이용하기보다 지역의 문제를 이해하고 지역과 함께 살기 위한 방법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강원도 감자를 새로운 관점으로 재해석하고 있는 더루트컴퍼니 팀원들과 지역 농가 파트너들. 사진 오른쪽이 김지우 대표. 사진 감자유원지


Q 앞으로의 목표는.
지속가능한 감자 농업 생태계를 만들고 싶다. 감자를 제조해서 상품을 더 만들거나 더 많이 팔기보다는 경험적으로 감자라는 콘텐트를 잘 풀어낼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하는 중이다. 실제로 몇 년 뒤 감자 테마파크를 만들 계획을 세우고 있다. 감자밭부터 감자 칩, 감자 음식점까지 감자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 공간에 담아가고 싶다. 그러다 보면 강릉에 너무 오래 살게 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웃음). 하지만 강릉에 사는 재미가 남아있을 때까지는 쭉 감자유원지를 가꿔 나가고 싶다.

김호빈 쿠킹 에디터 kim.hob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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