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은 트럼프에 베팅했다…북 도발 캘린더에 남긴 흔적
북한이 약 10시간 간격으로 탄도미사일 두 발을 발사하는 연쇄 도발에 나섰다. 지난 17일 심야에는 부산에 입항한 미국의 핵 추진 잠수함 미주리함(SSN-780)을 위협하는 듯한 단거리 탄도미사일(SRBM)을, 18일 오전엔 미 본토 타격을 암시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각각 발사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선언한 대로 당분간은 ‘강대강’ 대미 기조를 이어가며, 2024년 11월 치러질 미 대선 전까지 핵능력을 최대한 완성해 몸값을 높이려는 의도로 보인다.
북한의 이번 탄도미사일 발사는 사실상 예고된 도발이었다. “12월에 북한의 ICBM 발사 가능성이 있다”(지난 14일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는 선제적 정보 공개에도 북한은 개의치 않는 듯 그대로 도발을 감행했다. 한·미가 지난 15일(현지시간) 한·미핵협의그룹(NCG) 회의를 통해 ‘일체형 확장억제’를 공언하는 등 전례 없는 강도의 억제 체제 구축에 합의한 가운데 어떻게든 팃포탯(tit for tat·맞받아치기 전략)에 나서기 위한 선택지였다.
잦은 미사일 발사, 줄어드는 '도발 효용'
다만 올해에만 다섯 차례나 되는 북한의 잦은 ICBM 발사는 오히려 점차 미사일 도발의 한계 효용이 줄어드는 결과로 귀결되는 모양새다. 미국의 관심을 북핵 문제에 붙잡아두기는 커녕 국제사회에 존재감을 각인시키는 것조차 쉽지 않아 보인다.
‘미사일 도발→한반도 긴장 고조→대미 레버리지 상승→대화·협상 복귀를 위한 인센티브 요구’로 이어지는 기존 북한의 도발 방정식 자체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오히려 한·미는 조건 없이 대화의 문을 열어두되 북한의 비핵화 관련 입장 변화 없이는 제재 완화 등 유인책 제공은 일절 상정하지 않고 있다.
김정은, 트럼프와의 '빅 딜' 노리나
남성욱 고려대 통일융합원장은 “북한이 ‘도발 캘린더’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가장 신경을 쓰는 요소 중 하나가 한국과 미국의 국내 정치 일정이고, 내년 한국의 총선과 미국의 대선을 활용해 도발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여러 전략을 고민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다종·다량의 핵탄두를 양산할 수 있는 기술 수준을 어느 정도 확보한 상황에서 이제껏 개발한 핵은 용인받고 제재 완화를 맞바꾸는 ‘스몰 딜’은 북한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카드에 가깝다. ‘미래핵’만 포기한 채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 동시에 수년째 이어지는 경제난을 극복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기 때문이다.
실제 트럼프 전 대통령은 폴리티코 보도를 “가짜뉴스”로 규정하면서도 “단 하나 정확한 것은 김정은과 (나는) 잘 지낸다는 것”이라고 여지를 남겼다. 사실상 탑다운(Top-down, 하향식) 방식의 대북 대화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김정은의 ‘희망적 사고’를 부추기는 대목이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조 바이든 대통령을 지속적으로 앞서고 있다.
북핵에 무관심한 美…7차 핵실험 꺼내나
다만 7차 핵실험의 경우 파장을 쉽게 예측하기 어려운 양날의 검에 가깝다. 미사일 도발을 ‘북한의 합리적 우려’로 규정하는 중국마저도 핵실험에 대해선 선을 그을 가능성이 크다. 핵실험은 중국을 비롯한 합법적 핵보유국을 중심으로 구축된 비확산체제에 대한 정면 도전이기 때문이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국제질서의 진영화가 가속화하는 상황에서 북한은 자유주의 민주질서의 반대편에서 소위 ‘앞잡이’ 역할을 자처하는 전략적 선택을 내렸고, 그 연장선에서 도발을 이어가며 안보 혼란을 유도하고 있다”며 “다만 중국은 비핵화라는 담론 자체를 포기하지는 않은 만큼 북한이 7차 핵실험 등 레드라인(임계선)을 넘어서는 행동을 할 경우 이를 무조건 옹호하거나 두둔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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