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병우 칼럼] 더 ‘독해진’ 트럼프의 귀환

배병우 2023. 12. 19. 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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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세계의 최대 위험
트럼프 집권 2기 키워드는
'보복'과 '척결' 될 것

공직 수만개 충성파로 교체
구체적, 철저한 집권 준비 중
'제2 건국' 수준 급변 계획

우리가 알던 미국 사라지고
세계가 무질서로 빠져들 수 있는
암울한 경고음이 울렸다

2024년 새해를 앞두고 전 세계가 떨고 있다. ‘트럼프 시즌 2’ 가능성 때문이다. 국제통상법 권위자인 이재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최근 각종 국제회의에서 주제와 상관없이 참석자들의 질문은 하나로 모아진다. 도널드 트럼프가 다시 미국 대통령이 되면 어떻게 되느냐는 것이다.”

1년 뒤 선거 결과를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보수적으로 평가해도 트럼프가 다시 백악관에 입성할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 예상이 아니라 다가온 현실로 봐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트럼프는 지난 2020년 대선 결과에 불복했고 폭도들의 미 의사당 침입을 부추겨 기소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을 다수의 국민이 다시 선택한다는 게 믿기지 않지만, 미국은 이미 그런 나라가 됐다.

트럼프가 승리한다면 트럼프 자신의 경쟁력보다 조 바이든 현 대통령의 허약함 덕분일 수 있다. 바이든의 최대 약점은 ‘고령 리스크’다. 말실수와 이상한 행동이 잇따라 포착됐다. 대통령직을 정상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가시지 않는다.

고금리·고물가 장기화로 경제에 대한 불만도 높다. 이는 저소득층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민주당의 전통적 기반인 흑인과 히스패닉(중남미계)의 지지 철회로 나타나고 있다.

‘트럼프 시즌 2’가 어떤 모습일지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린다. 하지만 1기보다 ‘독성’이 훨씬 강할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미 주류 언론과 정치전문가들은 트럼프 2기의 국정 기조를 보복(retribution)과 척결(termination)이라는 키워드로 요약한다. 트럼프의 발언과 트럼프 국정 어젠다 작성을 맡은 헤리티지재단 등을 취재한 결과다. 핵심 수단은 연방정부 작동 원리와 인사시스템을 송두리째 바꾸는 것이다. 연방 관료제의 가치 기준을 헌법에 토대를 둔 합리적 이성이 아니라 트럼프 개인에 대한 충성에 두려고 한다.

트럼프에 대한 수사와 기소를 맡은 법무부, 연방수사국(FBI) 등이 1차 타깃이 되겠지만 이는 계획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미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는 정무직 4000명, 각종 정책 입안과 실행에 영향을 주는 그 이하 직급 공무원 등 모두 5만명의 자리를 트럼프 개인이나 그의 국정철학에 대한 지지자로 채운다는 것이다. 이미 트럼프는 2020년 대선 직전 이런 내용을 담은 ‘스케줄 F’라는 행정명령에 서명했지만, 낙선으로 실행하지 못했다. 대통령에 당선되면 곧바로 이 행정명령을 실행할 가능성이 크다. 행정명령은 의회의 승인이 필요 없다.

트럼프 1기에는 ‘백악관의 어른들(adults in the room)’이라고 불린 양식 있는 참모들이 주위에 있었다. 충동적이고 예측불허인 트럼프에게 균형추 구실을 한 제임스 매티스 전 국방장관, 렉스 틸러슨 전 국무장관 등이다. 트럼프는 이 온건한 전통적 공화당원들을 자신의 국정 기조를 막기 위해 조직적 저항을 한 배신자로 여긴다. 원한과 분노를 감추지 않는다. 이를 보면 트럼프 2기 백악관이 어떤 모습일지 그림이 그려진다.

트럼프와 그 지지자들의 의도는 미국의 국정 시스템을 ‘제2의 건국’ 수준으로 완전히 바꾸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 영향은 심대할 것이다. 미국을 지탱해 온 견제와 균형의 민주주의 시스템이 껍데기만 남을 수 있다. ‘대통령 독재’, 시저리즘(Caesarism·통치자가 법이나 반대파의 제한을 받지 않고 절대권력을 행사하는 정치체제) 등의 용어가 극우 필자들의 글에 자주 등장한다.

대외 정책에서도 자국의 이익을 앞세우는 ‘미국 우선주의’를 더 강화할 것이란 게 합리적 추론이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철회 가능성은 매우 높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탈퇴를 수시로 거론하며 유럽을 위협할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올인한 한·미·일 안보동맹은 헐거워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매회 압박하는 풍경이 재현될 것이다. 모든 수입품에 10%의 ‘보편적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공약도 흐지부지될 것으로 볼 게 아니다.

한마디로 트럼프 2기 미국은 우리가 알던 그 미국이 사라지는 분기점이 될 것이다. 모하메드 엘-에리언 알리안츠 수석경제고문은 최근 기고문에서 미국이 고립주의로 퇴행하면 파편화된 경제와 안보 불안이 일상화되는 ‘무질서의 세계(global disorder)’가 열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누가 이 말을 부정할 수 있을 것인가.

배병우 수석논설위원 bwb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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