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 불안이 삼킨 ‘키우는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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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어른 여럿이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참석자들의 시선이 줄곧 한곳으로 향했다.
불쑥불쑥 찾아오는 장래에 대한 불안이 지금 아이와 함께 누릴 수 있는 기쁨의 순간들을 여지없이 삼켜버리는 거다.
올해 합계출산율 0.72명, 2025년엔 0.65명으로 바닥을 찍을 것이란 전망에 온 나라가 저출산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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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어른 여럿이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참석자들의 시선이 줄곧 한곳으로 향했다. 시선강탈의 주인공은 한 부부가 데리고 온 돌 지난 아기였다. 주변 시선이 느껴져 돌아보니 식당 종업원들도, 옆 테이블 손님들도 연신 아기를 쳐다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이렇게 어린 아기, 정말 오래간만에 봐요. 너무 예뻐요.” 갈수록 아기를 보기 어려운 저출산·고령화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풍경 같았다.
작고 어린 생명이 주는 기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오죽하면 ‘인간은 어릴 적에 평생 효도를 다 한다’는 말이 있을까. 힘들어 죽겠다 싶을 때, 무방비 상태에서 훅 들어오는 아이의 방긋 웃음 하나, 작은 손길 하나가 모든 고통을 잊게 한다. 아무리 고된 육아라 해도 그렇게 마법 같은 순간들이 있다. 요즘 SNS와 미디어를 보면 대단한 경제력이 있어야만 잘 키울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찐’으로 행복한 순간은 아이와 함께 보내는 평범한 일상에서 수시로 일어난다. 문제는 그 키우는 기쁨을 누리고 주변에 나눌 여유가 너무 빨리 사라진다는 데 있다.
도와줄 사람이 있든 없든, 아이 키우는 일은 본질적으로 ‘독박육아’의 모습을 띤다. 도대체 내가 뭐라고, 나 자신도 제대로 못 챙기는 나란 사람이 다른 존재를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단 말인가. 내가 그걸 잘할 수 있을까란 물음에서 시작된 불안감이 수시로 부모들을 찾아와 덮친다. 불쑥불쑥 찾아오는 장래에 대한 불안이 지금 아이와 함께 누릴 수 있는 기쁨의 순간들을 여지없이 삼켜버리는 거다.
경쟁은 어린이집, 유치원에서부터 슬금슬금 시작된다. 어떤 집에서 사는지, 무슨 차를 타는지부터 시작해 아이가 초등학교 문턱을 넘는 순간 사교육 전쟁이 펼쳐진다. 중고교 시절을 거쳐 아이의 대학 입시 결과가 아이 인생은 물론 부모 인생의 ‘성패’로 평가받는 현실 앞에서 늘 불안하지 않을 부모는 없다. 부모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이가 그럴듯한 직업을 갖도록 해 놔야 아이가 잘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어버린 한국 사회에서 육아는 어쩌면 극한 경쟁의 한 장르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올해 합계출산율 0.72명, 2025년엔 0.65명으로 바닥을 찍을 것이란 전망에 온 나라가 저출산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 부처나 기관이 저출산 정책을 고민하든 말든, 개개인이 출산 여부를 선택하는 시대다. 이런 때에 육아가 이런 것이라면 출산과 육아라는 선택지는 결코 매력적일 수 없다. 인구복지협회가 지난해 실시한 ‘저출산 인식조사’ 등에 분명히 나와 있다. 만 19~34세 청년들이 출산을 원치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양육비와 교육비 등 경제적 부담이 57%였다.
우리 사회가 부모 또는 예비 부모들에게 아이를 혼자 키우지 않아도 된다고, 사교육비를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고, 의대나 명문대를 가지 않아도 아이는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다고 보장해주지 않는 한 저출산 문제의 해결은 요원하다.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선 진짜 부모들이 체감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지원책을 내놓는 게 우선이다.
아울러 새해에는 ‘아이 키우는 기쁨’에 대해 우리 사회가 좀 더 많이 이야기하길 바란다. 일상의 대화는 물론 영화나 드라마, 소설에서조차 아이 키우는 기쁨에 대한 언급을 찾아보기 힘든 시대 아닌가. 너무 당연해서 다들 말하지 않지만 아이가 주는 기쁨과 그로 인한 행복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출산과 양육이 그저 고통스럽기만 한 일이 아니라 부모인 나라는 인간을 더욱 성숙하게 해 주고, 삶의 정수를 맛보게 해 주며, 다시 태어나도 포기하지 않을 일이란 걸 자꾸 나눌 때 비로소 ‘출산과 육아’라는 선택지 또한 매력적일 수 있지 않을까.
김나래 사회부장 nar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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