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욱의 슬기로운 금융] 변동성 숨어있는 금융시장, 확증편향은 위험하다

2023. 12. 19.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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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박람회(엑스포) 부산 유치가 무산됐다. 사람들은 실패의 원인보다도 어떻게 그 큰 격차를 몰랐는지를 더 궁금해한다. 보고 싶은 데이터만 보고 희망적인 기대를 사실인 양 받아들이는 확증편향적 태도가 주된 이유로 지목된다고 한다. 어이없는 일이지만, 우리만 이런 건 아닌 것 같아 조금은 위안이 된다. 지난주 큰 관심을 모았던 미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금리 결정 회의만 해도 그렇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물가가 안정궤도에 들어갔는지를 확신하지 못한다며 기준금리를 동결했는데, 시장은 금리 인하가 멀지 않았다고 환호했다. 금리가 떨어지기를 학수고대하는 투자자들이 듣고 싶은 것만 듣는 확증편향적 심리가 작용한 것이다. 덕분에 미국 금리는 폭락했는데, 이런 흐름은 우리에게도 그대로 전해졌다(우리 금리가 미국 금리와 비슷하게 움직이는 것은 이제 거의 상식이다). 하지만 드디어 때가 왔다며 본격적으로 투자에 뛰어들려는 사람이 있다면 말리고 싶다. 확증편향은 실패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시장은 기준금리 큰 폭 하락 기대

시장이 기준금리 인하가 멀지 않았다고 확신하는 데에는 연준 의장의 발언 이외에도 여러 증거가 있다. 그중에서도 미국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이 계속 하락하더니 지난달에 3.1%까지 떨어진 것이 대표적이다. 투자자들은 이런 추세라면 연준의 목표인 2%에 곧 도달할 것이고, 그렇다면 기준금리가 인하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이런 믿음은 금융시장에서도 쉽게 발견되는데, 현재 하루짜리인 기준금리가 5.5%인 데 비해 2년 만기 미국채 금리는 이보다 훨씬 낮은 4.4%에 형성돼 있는 것도 그중 하나다. 단기금리가 장기금리보다 높으면 재정거래(arbitrage)를 통해 무위험 수익이 가능하므로 보통은 발생하지 않지만, 기준금리가 하락할 것이 확실한 경우에는 가능하다. 이 원리를 이용하여 시장이 기대하는 향후 기준금리 하락 폭을 간단히 유추해보면(2년물과 1일물 금리 차이의 두 배) 2년 내 2.2% 포인트 정도가 될 것임을 알 수 있다.


물론 연준도 이번에 점도표(연준위원들의 금리 전망치)를 통해 내년에 금리 인하가 시작될 것임을 시사했다. 그러나 시장의 기대와는 차이가 컸다. 점도표상 내년도 금리 전망치의 중간값은 현 수준에 비해 0.7% 포인트 낮은 4.6%이므로 대략 3회 정도의 금리 인하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2년 후까지로 넓혀보면 7회(1.7% 포인트)로 시장(2.2% 포인트)보다 훨씬 느리다.

미 연준은 금리 하락에 좌고우면

연준이 이렇게 금리 인하에 소극적으로 보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미 연준은 2021년에 급등하는 물가를 단기적인 현상으로 간주하며 늑장을 부리다가 뒤늦게 금리를 허겁지겁 올린 바 있다. 이로 인해 신뢰도에 큰 상처를 입었다. 그런데 만일 물가가 안정됐다며 금리를 내렸다가 행여 물가가 다시 불안해지기라도 한다면 신뢰도의 추락은 걷잡을 수 없게 된다. 그러니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심정으로 금리 조정에 임하는 것이다.

미 연준이 요지부동인데 다른 나라 중앙은행이 금리 인하에 나서기는 쉽지 않다. 자칫하다가는 환율이 급등하고 자본이 이탈하는 등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그렇기에 대부분 중앙은행은 미 연준보다도 더 보수적으로 처신한다. 사람들은 이런 중앙은행을 답답하다고 느끼고 심지어 세상 물정 모르는 백면서생으로 여긴다. 그러면서 눈에 뻔히 보이는 금리 하락을 최대한 이용하는 방식으로 투자에 임하려고 한다. 즉, 돈을 가능한 한 많이 빌려서 투자에 나서는 것이다. 그것도 차입 의존도가 큰, 그래서 금리 하락으로 인한 차익을 많이 볼 수 있는 부동산이나 신생기업, 혹은 채권에 몰빵(집중 투자)하고 목표수익률이 달성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투자 행태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이유는 간단하다.

확증편향은 투자자에게 불리

게티이미지뱅크

먼저 지금보다 금리가 더 크게 하락한다면 이는 심각한 경기침체가 도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상황하에서는 어떤 투자도 제대로 된 수익을 거둘 수가 없다. 2년물 미국채 금리가 추가로 1.5% 포인트 정도만 더 하락한다고 가정하자. 이에 합당한 기준금리 인하 폭은 2년 내 5.2% 포인트가 되는데, 이는 2000년 말에서 2년간 지속된 미국의 IT버블 붕괴 시기에 연준이 취했던 기준금리 인하 폭(5.5% 포인트)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당시 나스닥지수가 80% 가까이 폭락하는 등 미국 경제가 공황에 가까운 침체를 겪었던 것을 상기해 본다면 수익은 고사하고 살아남는 것도 버거운 일이 될 것이다.

또한 현실적으로 아직도 서비스물가수준(11월 5.5% 상승)이 높은 데다 노동시장 역시 공급이 빠듯한 상황이므로 시장의 낙관적인 기대로 인해 금융 여건이 느슨해진다면 물가는 얼마든지 반등할 수 있다. 따라서 시장변동성은 열려 있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만일 미 연준이 물가가 안정궤도에 접어들었다며 기준금리를 인하할 경우 시장금리는 하락 추세를 멈출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예상한 대로 상황이 진행되면 시장의 반응은 오히려 잠잠해지는 법이다.

결국 금리 하락을 맹신하여 영끌해서(영혼까지 끌어모아서) 투자를 감행한다면 시장변동성 확대에 마음고생만 하고 기대한 수익은 올리지도 못할 것이다.

내년은 정치의 해라고 한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70여 개국에서 전 국민이 참여하는 선거가 있다고 한다. 당연히 각국의 정책 방향이 바뀔 여지가 있다. 경제 흐름도 달라져 시장변동성이 높아지는 것은 불가피할지 모른다. 더군다나 미국의 차기 대통령으로 확증편향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유력하다. 내년에는 투자와 자산운용에 훨씬 더 조심성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LUX경제그룹대표·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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