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다니엘 패러독스
젊은 그리스도인들과 대화하다 보면 놀라는 부분이 있다. 그들의 직장 동료 중 그리스도인이 단 한 명도 없는 경우가 꽤 많다는 것. 심지어 부정적 인식 때문에 자신의 신자 됨을 드러내는 것조차 어렵다는 것. 이런 처참한 현실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유배지’라는 말이 적당해 보인다. 만약 공감하는 이라면 개인적으로 다니엘서를 묵상해볼 것을 추천한다.
북이스라엘은 이미 망했고 연명하던 남유다마저 느부갓네살 왕의 바벨론군에 의해 무너지게 된다. 왕은 폐위되고 예루살렘은 무너졌으며 성전 기물이 바벨론의 마르둑 신전 창고에 유폐되고 심지어 성전마저 무너진다. 국가는 둘째치고 하나님 통치의 상징인 성전 기물과 성전마저 그리되니 오히려 신앙이 굳건한 자일수록 충격이 더 컸을 터다. ‘망했다’는 말 외에 뭐가 더 필요할까.
그러나 어떤 이들은 다르게 해석한다. 도리어 하나님께서 적극적으로 일하셨기에 유다가 멸망한 것이며, 이는 인간 왕좌를 폐하신 하나님께서 직접 통치하시겠다는 메시지라고 말이다. 나아가 바벨론에 유배된 자신들은 끌려온 게 아닌, 과거 바벨탑을 무너뜨리신 뒤 아브라함을 부르셨던 하나님께서 이 바벨의 땅에 다시 아브라함을 세우시려한다는 의지의 일환으로 봤다.
이런 맥락에서 무너지지 않고 하나님의 통치를 확신하며 끝까지 정체성을 지키며 살아냈던 소수가 있었다. 그게 바로 다니엘과 세 친구다. 이러한 다니엘의 시각과 관련된 일화들은 당시 유배지라는 비참한 현실에 처한 유대인들에게 엄청난 위로를 선사했고, 동시에 정체성을 지키게 하는 도전의 계기가 됐다. 때문에 다니엘서는 동일하게 유배지적 환경에 노출된 이 시대 한국 교인들이 묵상하기에 적실하다.
그런데 난감한 사실이 있다. 다름 아닌 다니엘서가 한국교회를 유배지로 만든 장본인 중 하나라는 점이다. 다니엘은 요셉, 다윗과 더불어 한국교회가 가장 좋아하는 성경 인물 중 하나다. 그런데 우연인지 셋 모두 비슷한 서사를 가졌다. 최악의 상황이 즐비했으나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모든 고난을 극복하고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는 점이다. 그런데 한국교회 성도들이 그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뭘까. 그들의 신앙적 ‘서사’일까, 아니면 성공이라는 ‘결과’ 때문일까. 아마 후자 때문이지 않을까. 억측이라고 하기엔, 한국교회에 다니엘이 기도 응답과 성공의 아이콘으로 소비됐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실제의 다니엘에게 성공의 상징인 총리직은 의미 없었다. 아니,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 어떤 콩고물도 목적된 적이 없었다. 그저 하나님 자체만 목적이었다. 정말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상관없었다. 그런데도 왜 이런 식으로 소비돼 왔을까. 이를 ‘느부갓네살적 독법’ 때문이라고 부르고 싶다.
역설적이지만 유다와 성전을 무너뜨린 느부갓네살은 풍성한 계시의 담지자였다. 그는 계시가 담긴 꿈을 두 차례 꿨고, 업화(業火)에서 세 친구가 살아나는 기적을 마주했다. 셋 다 계시의 통로였고 방식은 달랐지만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바는 동일했다. 그가 아무리 지배 욕망으로 충일하다 한들, 결국 인간 왕의 통치는 불완전하고 무의미할 수밖에 없음을 알리려 하셨다. 때문에 자신의 왕국을 세우려는 짓을 그만두고, 그의 영원한 나라를 세우시는 진정한 통치자 하나님께 순종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반복되는 계시들은 그의 삶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다. 도리어 그는 계시가 담긴 꿈에서 본 신상의 이미지를 그대로 본떠 금신상을 건립한 뒤 만인에게 복종의 절을 강제한다. 즉 계시를 마주했지만 그 계시가 자신을 변화시킨 게 아니라 그간 자기 삶의 방식을 강화하는 데 동원됐다. 이게 바로 느부갓네살적 독법의 정체이다. 그리고 이런 독법으로 다니엘서를 읽어온 결과가 현재의 유배지다. 가히 ‘다니엘 패러독스’라 할 만하다.
이제라도 느부갓네살의 독법이 아닌 다니엘의 독법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 가운데 우리의 현실을 읽어낼 수 있다면, 아무리 유배지 같은 상황에서라도 위로를 얻고 감히 도전하게 될 것이다.
손성찬 이음숲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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