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눈사람도 만들고 눈싸움도 하자
초저녁 겨울의 산사는 청량한 기운으로 충만하다. 옹기종기 모여 사는 온기는 없어도 맑음 그 자체이다. 높은 하늘에 별들이 초롱초롱하고 동양화의 묵선으로 그린 듯한 나뭇가지가 어둠보다 더 짙은 어둠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동안거를 지내는 선방의 불빛만이 부드럽고 따스하다.
“스님, 저는 앉아 있을 때보다 걸으면서 공부할 때가 잘 되는 것 같아요.”
“그렇지요. 누구나 고요히 앉아 있기가 쉽지 않지요. 걷거나 일할 때는 에너지를 유지하거나 쏟을 때이지 내적 힘은 잘 만들어지지 않아요. 마음의 근육을 키우려면 앉아야 합니다. 생각이 다 녹아 없어질 때까지 끈기가 필요해요. 맑은 앉음이 단단해지면 자유자재가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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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춥다고 이불 뒤집어쓸 일인가
기후·전쟁·양극화 등 복합위기
부처의 평등사상 더욱 절실해
」
마음을 리셋하고, 여럿이 모여 수행할 수 있도록 도량을 준비하는 일이 쉽지 않다. 편한 숙소를 만들고자 방마다 욕실을 넣고 보일러를 설치하고, 전등을 바꾸어 달았다. 너른 마당과 산길을 만들어 걷기수행을 할 수 있도록 포행(布行) 길을 만들었다. 조그맣게 연못을 파고, 나무 계단도 정비했다. 봄부터 시작한 일을 겨울이 되어서야 얼추 마무리하고, 선방에 평화롭게 앉았다.
참선마을에서 처음 맞는 동안거이다. 참선의 초조(初祖) 달마 대사의 가르침을 하루 한 시간씩 살펴보며 마음의 질서를 잡아보리라 결심했다. 수행에 큰 힘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도반들에게도 철석같이 다짐했지만 학기 말이라 지키기가 녹록지 않다.
달마 대사의 제자 중에 인도어 번역을 잘하는 담림이라는 스님이 있었다. 스승의 법문을 고스란히 기록으로 남겼는데 바로 『이입사행론』이다. 담림 스님은 스승에 대한 소회와 가르침도 요약하였는데 스승과 제자의 모습이 따뜻하다.
“법사(달마 대사)는 남인도 출신이다. 대바라문국 왕의 셋째로 태어났다. 명철한 지성과 무엇을 들으면 모두 깨달아 알아버리는 자질이 있었다. 여러 나라의 불법이 쇠퇴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바다와 산을 건너 동쪽으로 왔다. 솔직한 마음을 가진 이는 누구나 귀의하고, 형식에 사로잡힌 이들은 비방하였다.”
달마 대사는 네 가지 가르침을 자주 말씀하셨는데 첫 번째는 마음을 가라앉히는 법이다. 먼저 자신의 참 성품은 부처의 참 성품과 같다는 믿음으로 고요하게 앉아야 번뇌와 망상이 스스로 사라진다는 가르침이다. 두 번째는 행동을 잘하는 법이다. 억울한 행동을 하지 않고, 모든 환경과 인연을 받아들이며, 오직 좋은 가르침이 있는 곳을 찾으며, 배우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사람들과 사귀는 법이다. 상대를 보살피고 보호하며, 끊임없이 베풀고, 예의 바른말과 행동을 하며, 정신을 맑게 하는 음식과 차를 마시는 것이다. 네 번째는 사람을 돕는 법이다. 집착함이 없이 ‘오직 할 뿐’이라는 기대감이나 뒤끝이 없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가르침이다.
도구의 발달은 인간을 편리하게 만들어주었다. 불을 사용하면서 인간이 최상위층이 되었다. 철기를 사용하면서 농사를 지으며 정착하였고 전쟁을 일으켜 이웃을 정복하기 시작했다. 범선을 만들어 바다 무역을 하고, 기계를 발명해 대량생산을 이루어냈다. 오늘날은 인터넷과 컴퓨터로 더 많은 일을 한다. 미래에는 AI 개발 등으로 신인류가 탄생할 것이다.
축의 시대에 석가모니와 같은 성인이 출현해 위대한 가르침을 펼침으로써 평화를 지향하는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고, 지금에 이르렀다. 그런데 오늘날 인류는 또다시 위기의 시대에 직면해 있다. 전문가들은 복합적이고 다중적인 위기가 중첩되었다고 분석한다. 기후 위기, 잇따른 전쟁, G2 간의 신냉전, 강대국의 보호무역주의 회귀,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력, 양극화 고착 등이다.
이런 위기가 탈진실·탈생태·탈인간을 만들어 내고 있다. 탈진실은 정보과잉과 왜곡으로 진실과 가짜의 경계가 모호해졌고, 알고리즘으로 인한 정보의 편식과 가짜뉴스로 신뢰가 붕괴하는 현상이다. 탈생태는 환경파괴·기후변화·자원고갈 등의 심각한 진행이다. 탈인간은 인간이 소외되고 고립되며 인간다움이 사라지거나 훼손되는 현상이다. 이러한 현상은 생태 위기와 경제 위기, 사회·문화적 위기를 초래하고, 마침내 인류를 자멸하게 할 것이 분명하다.
이 전대미문의 위기를 벗어날 방도는 없는 것일까. 달마 대사가 주창한 차별 없는 참 성품에 중심을 두고, 서로서로 한 몸처럼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과 서로서로 다르지 않다는 불이중도(不二中道)의 평등의식 회복이 그 한 길이 아닐까. 연기적 인식과 불이중도 사상에 바탕한 공동체의 회복이 새로운 사상적 질서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매서운 폭설 한파에 이불 둘러쓰고 안주할 것이 아니라, 떨쳐 일어나 눈사람도 만들고 눈싸움도 하고 눈썰매도 타는 활발발한 실천에 나설 일이다.
금강 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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