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아들, 발톱 드러냈다
9번 홀 그린 부근의 러프.
핀까지 20m가 남은 상황이었다. 앳된 얼굴의 아들이 어프로치 샷 한 공이 그린 위를 구르더니 보기 좋게 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짜릿한 칩인 버디였다. 아들은 오른손 주먹을 불끈 쥔 채 포효했다. 전성기 시절 ‘골프 황제’의 세리머니를 보는 듯했다. 군데군데 흰 턱수염이 난 아버지는 이를 흐뭇하게 지켜봤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48)가 아들 찰리(14)와 함께 필드 나들이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부상에서 회복한 우즈는 이틀 동안 36홀을 걸어 다니면서 인상 한 번 찡그리지 않았다. 타이거 우즈의 아들 찰리는 호쾌한 스윙으로 골프 황제를 미소 짓게 했다.
우즈 부자는 18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의 리츠칼튼 골프장에서 끝난 이벤트 대회인 PNC 챔피언십 2라운드에서 이글 1개와 버디 9개를 잡아내면서 합계 19언더파 125타로 공동 5위를 차지했다. 베른하르트 랑거(66) 부자가 합계 25언더파로 우승했다.
PGA 챔피언스 투어(시니어 투어)의 이벤트 대회인 PNC 챔피언십은 역대 메이저 대회 우승자 20명이 각각 가족과 조를 이뤄 플레이하는 방식이다. 두 명이 각각 티샷 한 뒤 원하는 공을 골라 그 자리에서 두 명 모두 다음 샷을 하는 스크램블 방식으로 열렸다.
올해 대회의 주인공은 역시 우즈 부자였다. 우즈는 2년 전 교통사고 후유증에 이어 최근엔 발목 통증까지 심해져 한동안 필드에 나서지 못했다. 지난 4월 마스터스에서 부상이 악화했고, 결국 3라운드 만에 경기를 포기해야 했다. 우즈는 이달 초 PGA투어 히어로 월드 챌린지를 통해 7개월 만에 복귀전을 치렀다.
우즈는 몸 상태가 100%가 아닌데도 일찌감치 PNC 챔피언십 출전을 약속했다. 이유는 하나, 아들과 함께 필드를 밟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우즈 부자는 2020년부터 올해까지 4년 연속 이 대회에 출전했다.
2009년생 아들 찰리는 2020년 PNC 챔피언십 때부터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았다. 당시 11세의 어린 나이였지만, 힘찬 스윙과 과감한 퍼포먼스로 인기 스타가 됐다. 키가 한 뼘 이상 자란 이번 대회에선 웬만한 어른 못지않은 비거리를 자랑했다. 우즈의 키는 1m86㎝, 곁에 선 아들 찰리의 키는 언뜻 보아도 1m80㎝를 넘는 듯했다. PGA 투어 공식 홈페이지는 “1년 동안 4인치(10㎝)가 큰 찰리는 드라이브샷을 300야드 이상 날리는 무서운 실력을 과시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찰리는 전날 350야드짜리 14번 홀에서 티샷으로 그린을 넘겨버렸다. 2라운드에선 9번 홀(파4) 칩인 버디 등 정교한 쇼트게임 실력까지 뽐내면서 자신이 골프 ‘황태자’임을 입증했다.
이달 초 히어로 월드 챌린지 개막에 앞서 “앞으로 한 달에 한 번씩 대회에 출전하겠다”고 약속했던 우즈의 컨디션도 좋아 보였다. 특히 이틀 연속 캐디를 맡은 딸 샘 우즈(16)의 응원이 큰 힘이 된듯했다.
우즈는 필드에선 최고의 카리스마를 발산했지만, 아들 찰리에겐 여느 아버지나 다름없었다. 미국의 골프위크는 “우즈는 평소 아들에게 ‘내 스윙 폼을 닮지 말고 로리 매킬로이를 닮으라’고 조언했다. 그런데 올해 PNC 챔피언십 개막을 앞두고는 ‘스마트폰 좀 그만 보라’며 잔소리를 했다”는 에피소드를 전했다.
한편 ‘골프 여제’ 안니카 소렌스탐(53·스웨덴)의 아들인 윌 맥기(12)도 이번 대회에서 뛰어난 골프 DNA를 선보였다. 아버지가 캐디로 나선 가운데 어머니와 동반 라운드한 맥기는 정교한 샷으로 주목을 받았다. 맥기는 경기를 마친 뒤 “18번 홀 페어웨이를 걸어가며 엄마에게 ‘천천히 걸어가자’고 했다. 이 순간이 끝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울먹였다. 아들의 이야기를 곁에서 듣고 있던 소렌스탐의 눈가에도 촉촉한 이슬이 맺혔다.
고봉준 기자 ko.bong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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