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도 레고처럼 조립한다…8~10시간이면 한 채 뚝딱
지난 14일 전남 구례군 산동면의 지리산 자락. 계단식으로 배치된 회색 지붕의 단독주택 단지가 눈에 들어왔다. DL이앤씨가 연면적 2347㎡ 부지에 조성한 국내 첫 ‘모듈러 단독주택 타운형 단지’다. 전용면적 74㎡짜리 단독주택 26채로 구성됐다. 정부의 귀농·귀촌형 공공임대주택 사업을 수주해 지난해 6월 착공한 지 16개월 만인 지난 10월 준공했다.
부지 조성 공사만 8개월이 걸렸고, 공장에서 건물 유닛(Unit)을 제작하고 현장에 설치하는 데는 3개월 정도 소요됐다. 특히 주택 한 채당 현장 설치 시간은 8~10시간에 그쳤다. 이 단지는 1개의 유닛으로 집을 짓는 기존의 모듈러 주택과 달리 유닛 11개를 조합해 거실·방 등 집 한 채를 만든 게 특징이다. 조립식 주택이지만 집 내·외부에서 조립이나 용접한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레고 블록’처럼 조립해 짓는 모듈러 주택이 건설업계의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국내 주요 건설사가 모듈러 주택 시장에 앞다퉈 뛰어들고 있고, 관련 기술 확보 경쟁도 치열하다. 초기엔 군 막사나 학교 부속 건물을 짓는 수준이었지만 단독주택 단지, 아파트로 사용처가 확대되는 추세다.
모듈러 주택은 기본 골조와 전기 배선 등 집의 70~80%를 공장에서 미리 만든 뒤, 실제 부지로 옮겨 조립하는 방식으로 짓는다. 국내엔 2003년 처음 등장했다. 공사 기간이 일반 건축의 절반도 되지 않고, 공사 과정에서 생기는 소음·분진이 적어 친환경적이다. 건설 인력의 숙련도에 상관없이 품질이 균일한 것도 장점이다. 반면 방음과 단열이 취약하고 집을 박스 형태의 원룸으로 짓는 게 한계였다. 하지만 이런 약점도 개선되고 있다.
현대엔지니어링이 지난 6월 지은 ‘용인 영덕경기행복주택’은 13층 높이, 106가구로 국내 모듈러 주택 중 최고층이다. 건축법에 따라 13층 이상 건물은 3시간 이상 내화 기준(화재 시 버틸 수 있는 시간)을 갖춰야 해 국내 모듈러 주택은 12층을 넘지 못했지만, 이 한계를 넘어섰다.
GS건설은 목조 모듈러 주택 자회사 ‘자이가이스트’를 통해 단독주택을 짓는다. 50여 개의 표준 모듈을 두고 내부 평면과 평형에 따라 집을 조립한다. 해외시장을 겨냥하는 곳도 있다. 삼성물산은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IF)와 손잡고 네옴시티에 모듈러 주택을 짓기로 했다.
정부도 모듈러 주택 공급에 발 벗고 나섰다. 국토교통부는 2030년까지 연간 3000가구의 모듈러 임대주택을 공공 발주할 계획이다.
조봉호 아주대 건축학과 교수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모듈러 주택 시장 규모는 364억원(수주액)으로 추산됐다. 모듈러 건축 시장 전체(1757억원)의 5분의 1 수준이다. 아직까진 모두 공공주택이고 민간 분양은 없다.
전문가들은 사회적 수요가 모듈러 주택 시장을 키워나갈 것으로 내다봤다. 임석호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장 기능인력 부족,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중대재해처벌법, 공사비 상승에 대응해 모듈러 시장은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해결 과제도 적지 않다. 우선 공사비가 비싸다. 업계에 따르면 모듈러 주택을 짓는 데 쓰이는 철강재 가격은 철근 콘크리트의 150% 수준이다. 내화 기준도 까다롭다. 특히 13층 이상 건축물에 적용되는 내화 기준은 국내에만 있다. 조봉호 교수는 “모듈러 주택 시장 활성화를 위해 내화 규제를 완화하고 현장 위주의 건축법, 감리 제도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의영 기자 apex@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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