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생명 스토브리그 비하인드
유상선 팀장 “기둥 2개를 박아놓고 집을 지었다”
한화생명e스포츠는 올해 스토브리그에서 화제성과 실리를 모두 챙겼다. 이들은 본격적인 이적 시장이 열리기 전 팀의 코어 선수인 ‘제카’ 김건우, ‘바이퍼’ 박도현과 재계약을 체결하고 개장 후에는 ‘피넛’ 한왕호, ‘도란’ 최현준, ‘딜라이트’ 유환중 등 올해 ‘LoL 챔피언스 코리아(LCK)’ 스프링·서머 시즌을 석권한 삼인방을 모조리 영입했다.
한화생명은 이번 스토브리그를 언제부터 대비하고, 어떤 영입 전략을 세웠을까? 이번 스토브리그에서 선수단의 영입과 계약을 진두지휘하고 최종 의사결정을 내렸던 쌍두마차 한화생명 스포츠마케팅 총괄 유상선 팀장, 한화생명e스포츠 사무국의 김성훈 단장과 18일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언제부터 팀이 로스터 리빌딩을 논의했는지,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을 고민했는지 궁금하다.
△유 팀장=지난 7월1일자로 팀에 부임했다. 리빌딩은 부임 직후인 7월 초부터 고민했다. 당시 팀이 예상치 못한 변수 때문에 흔들리기 시작한 상황이었다. 2023시즌은 고사하고 2024시즌까지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도 있겠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스토브리그 전략을 다소 빠르게 구상했다. e스포츠구단이 왜 필요한지, e스포츠구단 운영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효과는 무엇인지 등을 설명하는 청사진을 그려서 경영진을 설득하고, (스토브리그 대비를) 빠르게 시작했다.
-김건우, 박도현과 일찌감치 재계약을 체결했다. 두 선수를 먼저 잡은 이유와 설득 비결은.
△유 팀장=우리의 목표는 크게 3가지였다. 첫째, 스포츠단 운영에서 가장 중요한 ‘우승’을 해내는 팀을 만드는 것. 다만 예산은 전년도 수준을 유지할 것. 두 번째는 당연한 얘기지만 강점은 유지, 약점은 보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 세 번째는 전 포지션에서 경쟁력을 확보해 밸런스 좋은 팀을 만드는 것.
팀의 협상 전략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2개의 기둥을 박아놓고서 집을 지어나가자’였다. 2개 기둥은 당연히 리그 최상위 선수로 평가받는 김건우와 박도현이었다. 두 선수와 조기에 계약하고, 이를 바탕으로 스토브리그에서 협상력을 발휘해 3명의 선수를 영입하고자 했다.
선수들이 팀을 선택하는 기준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가 연봉, 두 번째가 비전. 우리는 김건우와 박도현이라는 2개의 기둥을 비전으로 제시했고, 거기에 동의한 선수들과 계약을 맺었다.
실제로 다른 선수들은 팀에 김건우, 박도현이 있다는 비전을 확인하고 한화생명에 들어왔다. 박도현도 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한화생명에 있으면 다른 선수들이 오지 않겠는가’라고 얘기했더라.
반면 김건우와 박도현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구단이 제시한 밑그림과 청사진만 보고 계약을 맺었다. 그들을 설득할 수 있었던 건 지난 1년 동안 구단과 선수가 쌓아놓은 신뢰 관계 덕분이라고 본다. 시즌 중 쌓은 신뢰가 있어서 선수들이 프런트를 믿고 계약했다고 생각한다.
-유환중을 잡는 걸 이번 스토브리그의 핵심으로 여겼다고.
△김 단장=이번 스토브리그에서 김건우, 박도현이 있는 포지션을 제외한 3개 포지션은 취약 포지션으로 분류했다. 그리고 서포터, 정글러, 탑라이너 모두 영입 1순위로 뒀던 선수들을 영입했다.
유환중은 교전 능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했다. 박도현과의 시너지 효과가 우수할 거란 예상도 했다. 박도현이 유환중을 굉장히 높게 평가했다. 사무국의 의지 못잖게 함께 플레이할 선수단의 의지도 중요하지 않나. 유환중을 1순위로 낙점하는 데엔 큰 어려움이 없었다.
-한왕호와 최현준을 각 포지션에서 영입 1순위로 삼은 이유도 궁금하다.
△김 단장=뛰어난 경기 운영 능력의 소유자이면서 선수단을 하나로 모을 리더십이 있는 선수를 찾았다. 한왕호가 적임자라고 생각했다. 그의 운영 능력, 오더, 인-플레이 역량은 당연히 믿고 있다. 그 밖에 리더십, 프로로서의 자세 등까지 종합적으로 판단했을 때 그가 최선이라고 봤다.
탑라이너 역시 첫 번째 타깃이 최현준이었다. 워낙 라인전이 뛰어나고, 한타와 교전 능력이 우수해서다. 특히 중요 상황에서 플레이메이킹을 해줄 수 있는 선수라고 생각했다. 한왕호와 최현준 모두 이런 능력이 바탕이 돼서 지금의 LCK 커리어가 따라왔다고 생각한다. 그걸 앞으로 한화생명에서 계속 이어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단년 계약이 주류인 시장에서 한왕호, 유환중, 김건우와 2년 계약을 맺었다.
△김 단장=한화생명은 사실 항상 다년 계약을 추구해왔다. 이번 다년 계약은 선수와 구단 간 목표에 대한 공감대가 잘 형성된 결과물이다. 우리는 항상 중장기 계획을 그리면서 팀을 운영한다. 단년보다는 다년 계약을 맺어야 팀과 선수의 공감대가 일치하고, 공동의 목표 의식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코칭스태프 최인규 감독, 이재하 코치를 재신임한 이유는.
△김 단장=올해 팀의 성적이 아쉬운 건 분명하다. 그러나 사실 감독으로서는 컨트롤할 수 없는 영역에서 이슈가 발생했고, 이 때문에 본인들의 역량과 실력을 발휘할 기회가 부족했다고 판단했다. 두 지도자가 새로운 선수단과 함께 더 높이 비상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내년에 팀이 어느 정도 성적을 거둘 것으로 기대하는지. 성적 외에도 기대하는 바가 있다면.
△유 팀장=사실 한화생명은 올해뿐만 아니라 매년 e스포츠 팀에 전폭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2024년에는 팀이 e스포츠 신에 큰 족적을 남겼으면 한다. 우리는 선수단이 오롯이 연습과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게끔 아낌없이 지원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우수한 성적을 거둬 선수도, 팬도, 게임단도, 모기업도 보상받는 2024년이 됐으면 좋겠다.
우리는 한화생명에서 운영하는 e스포츠구단이다. 내년에는 모기업과 더 긴밀하게 연계해 프로젝트를 진행했으면 한다. 지난 15일 한화생명이 e스포츠와 연계한 저축보험 상품을 출시했다. 업계 최초의 시도다. 내년에는 더 많은 기회가 있으면 한다.
-한화생명이 2023년으로부터 배운 바가 있다면.
△유 팀장=2023년은 한화생명e스포츠에 정말 다사다난했던 한 해다. 좋은 경험이든, 그렇지 못한 경험이든 결국 한화생명e스포츠의 모든 구성원이 한 단계 스텝업하는 데 필요한 자양분이 됐으리라 생각한다. 고난을 함께해준 감독, 코치, 선수에게 감사하다. 내년에 우승이라는 결과로 보상받았으면 한다.
-끝으로 인터뷰를 통해 팬들에게 전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유 팀장=우리 팀은 운영 목표가 마케팅과 홍보에 방점이 찍혀 있단 점에서 다른 구단들과 태생적으로 차이가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스포츠구단이다. 그런 만큼 우리 팀도 프런트의 전문성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단순히 스토브리그 전략을 잘 짜고, 협상을 잘하는 것 외에도 시즌 중 전력 분석, 육성, 스카우팅, 마케팅, 수익 창출까지 모든 분야에서 프런트의 역량을 강화할 방침이다. 자생력을 키우기 위해 다양한 사업을 전개해 나가겠다. 이를 통해 발생하는 수익을 다시 선수 영입에 투자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지속적으로 강팀 수준의 경쟁력을 유지할 계획이다.
윤민섭 기자 fla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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