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인에게 계좌번호 알려달라고 한 전과 11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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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한 해가 저물고 있습니다. 저무는 한 해 앞에서 옷깃을 여밉니다. 올해도 세상 사는 일이 힘들고 괴로웠습니다. 고단한 삶을 이끌고 인생길을 걷다 지쳐 쓰러지기도 했고 아파서 눕기도 했습니다. 굶주림의 시절을 지나 풍요의 시대로 접어들었는데도 우리의 삶이 이토록 괴롭고 힘든 것은 왜일까요. 그 까닭은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돌보라는 하늘의 부탁보다 나만 살면 된다는 각자도생과 무한경쟁에 쫓겨 살기 때문이 아닐까요. 전과 11범의 청송 보호감호소 출신이었지만 속죄의 삶을 통해 선한 사마리아 사람으로 생을 마친 무연고자 노인을 통해 2023년을 되돌아봅니다. <기자말>
[조호진 기자]
▲ 신장기증인 고(故) 최영호(가명)님의 장례 예배가 2023년 11월 23일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주관으로 진행됐습니다. |
ⓒ 조호진 |
지난 12월 9일, 빈소도 없고, 영정도 없고, 조문객도 없는 무연고자의 쓸쓸한 마지막 길을 배웅하기 위해 인천 승화원에 다녀왔습니다. 고(故) 최영호(가명)씨는 지난 11월 20일 김포의 한 요양병원에서 향년 80세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고인이 생전에 아들이 있다는 말을 해서 알고 있었으나 딸이 있다는 것은 고인이 돌아가신 후에 처음 알았습니다. 무연고자인 고인이 사망하자 김포시청은 고인의 아들과 딸에게 사망 사실을 통보하면서 시신 인수에 대한 의향을 묻는 공문을 발송하려고 했으나 아들은 연락처가 없어서 보내지 못했고 딸에게는 등기로 보냈으나 회신이 없어서 무연고자 공영장례를 진행했습니다.
아버지의 시신 인수를 사실상 거부한 딸의 심정이 이해됩니다. 가정과 자식을 부양하지 않은 채 죄를 짓고 교도소를 드나드는 전과자 아버지, 서로 소식을 끊은 채 수십 년을 남남보다 못한 관계로 살아온 아버지의 시신을 인수하겠냐?라는 느닷없는 통보에 얼마나 당황했을까요. 아버지로 인해 겪었을 수많은 고통과 슬픔, 그로 인해 고단하고 서러웠을 삶이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무연고자 공영장례는 사실 장례랄 것도 없었습니다. 유가족의 시신 인도 거부에 따라 장례식장 냉동고에 있었던 고인의 시신은 유족도 없고, 빈소도 없고, 조문객도 없고, 입관식과 운구 행렬 등의 의식도 없이 앰뷸런스 장의차에 실려 인천가족공원 승화원에 도착했습니다.
고인의 관이 13번 화장로(盧)에 들어가는 마지막 모습을 유일하게 배웅하는 사람이 되어 지켜보는데 눈물 날 것 같았습니다. 주변 유가족 대기실에선 화장로로 들어가는 고인의 마지막 모습에 유가족들이 울부짖고 조문객들은 슬피 애도하는데 고인의 텅 빈 유족 대기실은 무거운 적막감만 감돌았습니다.
13로 화장(火葬)을 담당하는 직원이 최 노인의 관을 화로로 들여 보내면서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이며 예를 표하는 그 순간, 목젖이 울컥거렸습니다. 그래서 화로로 들어가는 고인에게 마지막 인사를 드린 후, 두 손을 모으고 기도했습니다.
'고인은 전과 11범의 중한 죄인이었습니다.
자식에겐 아비 노릇을 하지 못해 외면당했습니다.
고인은 그러나, 죽어가는 생명을 보고도 외면하는 이 세상에서
자신의 신장을 기증해 생명을 살린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고인은 슬프고 외로웠던 이 세상을 무연고자로 떠났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연고자가 되어 그의 영혼을 거두어주소서.'
▲ 11범의 전과자로 살다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떠난 무연고자 최 노인이 지난 12월 9일(토) 인천가족공원 승화원 13번 로(盧)에서 한줌 재가 됐습니다. |
ⓒ 조호진 |
전과 11범이었던 고인은 1990년 2월, 10년간의 수감 생활을 마치고 모범수로 가출소했습니다. 그는 출소 며칠 후, 쓰러진 취객을 목격했습니다. 행인들은 쓰러진 취객을 보고도 못 본 척하고 지나갔으나 그는 차마 외면하지 못했습니다. 그해 2월의 한밤중은 한겨울 못지않게 추웠습니다. 길에 쓰러진 취객을 그마저 외면하고 그대로 두었다면 얼어 죽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취객을 부축해서 여관에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나오는 천사, 헐벗은 채로 지상에 버려진 미하일처럼 그 취객은 천사였는지도 모릅니다. 취객은 그를 생명의 길로 인도했습니다. 취객을 여관방에 누인 그는 탁자에 놓인 신문을 펼쳐 들었습니다. 그 신문에는 어떤 목사가 신장을 기증해 생명을 살렸다는 미담 기사가 실려 있었습니다.
"한 여자 전도사가 저같이 못난 놈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고인이 속죄 인생을 결심한 것은 '청송 보호감호소'에서 만난 여자 전도사 덕분이라고 말했습니다. 1·4후퇴 때, 남한으로 피난 내려와 떠돌이로 살던 어린 그는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물건을 훔치기 시작하면서 소년원과 교도소를 드나드는 '법자'(법무부의 자식)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를 속죄 인생으로 바꾼 것은 법과 감옥이 아니라 심장판막증 환자였던 한 여자 전도사의 헌신적인 사랑이었습니다.
신장 기증 후, 고인은 경찰에 불려가지 않았습니다. 신장 기증을 하면서 새 사람이 되었지만 삶은 여전히 고달팠습니다. 50대 나이에 신문 배달을 하고, 공공근로 등으로 살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나이가 들었다고 신문 배달에서 잘리는 등 생계 위협이 고인의 삶을 위협했습니다. '왕년의 실력을 발휘하면 이깟 궁핍한 생활에서 금방 벗어날 수 있잖아!'라는 유혹이 끊이지 않았을 것인데도 그는 옛날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제 아내가 고인과 인연을 맺은 것은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사무국장으로 재직할 때였습니다. 혈혈단신 무연고자였던 고인은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준 아내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사흘을 굶었다면서 도움을 청했고, 말소된 주민등록증을 살리려면 과태료를 내야 한다고 도움을 청했고, 신문 배달 일을 하려면 중고오토바이를 사야 한다면서 도움을 청했고, 틀니 비용을 요청했고, 생활비가 다 떨어졌다고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때마다 아내는 성심성의껏 도와드렸습니다. 고인이 무척 좋아하던 돼지갈비와 탕수육을 사드렸고, 고인이 좋아하는 영화를 관람하도록 해드렸습니다. 그는 장기기증 10년째 되던 날, 아내에게 이런 소회를 밝혔습니다.
▲ 고인이 생전에 살던 1.5평 남짓한 고시원 방. |
ⓒ 조호진 |
고인은 고시원에서 살았습니다. 한 평 가량의 고시원에 살던 고인은 옷과 이불을 아내에게 맡겼습니다. 여름이 되면 겨울옷과 이불을, 겨울이 되면 여름 이불을 맡기면 아내는 깨끗이 세탁해서 보관했다가 계절이 바뀌면 옷과 이불을 내어주었습니다.
고인이 파킨스병에 걸려 힘들어하던 어느 해 여름이었습니다. 수박이 먹고 싶다고 했습니다. 파킨슨 환자에게 수박 한 통 사드려서 될 일이 아니었습니다. 드시게 좋게 깍두기처럼 썰어서 드렸더니 생일 케이크가 먹고 싶다고 했습니다.
칠순이 넘도록 생일 케이크를 한 번도 받아본 적도 없고, 먹어보지도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생일 케이크와 함께 새 여름옷을 생일 선물로 드렸습니다. 고인은 제 아내에겐 도움을 청했지만 아무에게나 손 벌리는 염치 없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30여 년간 받은 도움, 후원으로 갚은 노인
지난 3월, 고인이 투박한 목소리로 전화했습니다. 아내에게 계좌번호를 알려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유를 물었더니 기초생활수급비로 돈을 좀 모았다면서, 30여 년간 받은 도움의 얼마라도 갚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내는 피 같은 돈을 받을 수 없다고 했고, 그는 계좌번호를 계속 요청하면서 실랑이를 벌이다가 아내가 고인에게 "그럼, 최 선생님처럼 불우한 아이들을 위해 후원하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하자 고인이 "좋다"고 하면서 아내가 책임자로 활동하는 '위기청소년의 좋은친구 어게인'에 피 같은 돈 100만 원을 후원했습니다.
생전에 고인은 제 아내에게 자신이 죽으면 시신을 기증한 뒤에 장례를 치러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하지만 고인의 부탁을 끝내 이행하지 못했습니다. 고인은 제 아내를 30여 년간 보호자처럼 의지했으나 세상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유언은 법적 효력을 갖추지 못했기에 가족도 아니고 법적 관계도 아닌 아내는 고인의 장례를 해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슬프고 외롭게 떠난 선한 사마리아 사람 최영호님, 슬프고 외롭게 떠난 고인을 위해 드릴 수 있는 것은 기도밖에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의 기도가 하늘에 닿을 것을 믿기에 기도로 청원하오니 부디, 들어주소서!
통성 기도로 외친 적 없고
교회를 다닌 적 또한 없었으며
고아와 전과자로 이 풍진 세상을 떠돌았으나
차디차게 얼어 죽어가던 생명을 외면하지 않은 사람!
신장 기증으로 한 청년의 생명을 살린 *선한 사마리아 사람!
최영호님의 영혼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안아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외로움과 파킨스병이 없는 나라에서 안식하게 해주시기를 청원합니다.
▲ 강도 만난 이웃을 구해준 선한 사마리아 사람. |
ⓒ 무료사진 픽사 |
* '선한 사마리아 사람'은 위기에 처한 사람을 돕는 사람을 이르는 말로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한 유대인이 강도를 만났습니다. 강도는 유대인을 죽을 만큼 폭행하면서 가진 것을 빼앗고 달아났습니다. 그 유대인이 길에 쓰러져 신음하고 있었는데도 유대인 제사장(목사)은 쓰러진 유대인을 보고도 못 본 척하고 지나갔고, 또 다른 유대인 종교 지도자들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도 아니고 종교인도 아닌 사마리아 사람은 쓰러진 유대인을 여관에 데려가 밤새도록 돌봐 주었습니다. 다음 날, 자신의 일정 때문에 부득이하게 떠나야만 했던 사마리아 사람은 여관 주인에게 돈을 주면서 그를 돌봐 달라고 부탁했고 비용이 더 들면 돌아오는 길에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생전의 고인을 후원해주신 박소원님(헬렌스타인 CEO), 박종선님(한약사, 약초당한약국), 홍석경님(민족문제연구소 과천의왕 지부장)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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