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하고 가학적” 동물 성학대 판례 5건 분석해보니
동물 대상 성범죄, 대인 범죄의 주요 징후
서구권처럼 법적 기준 마련해 적극 처벌해야
국내에서 일어난 동물 대상의 성 학대 사건을 상세하게 분석한 보고서가 처음으로 발표됐다. 해외에서는 동물 대상의 성 학대를 인간 성범죄로 이어지는 중간 단계로 판단해 엄격한 처벌이 이뤄지는 반면 국내에는 동물 성범죄를 판단할 법적 기준조차 없는 상황이어서 관련 논의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는 국내에서 발생한 동물 대상 성 학대 사건 중 처벌된 5건의 판례를 분석한 ‘동물 성학대 입법례와 정책과제’ 보고서를 최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5건 모두 타인 소유의 동물을 대상으로 범행이 이뤄졌고, 피학대 동물들이 신체적 상해를 입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현행법상 소유주가 돌보는 동물을 직접 범행 대상으로 삼거나 물리적으로 드러나는 상해가 없는 경우에는 처벌이 어려운 구조인 셈이다.
어웨어 이형주 대표는 “동물 성 학대는 특성상 신고나 적발도 이뤄지기 쉽지 않아 아동 성범죄와 유사한 특성이 있다”며 “동물 소유주의 학대 행위 등 수면에 드러나지 않은 범죄가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되는 만큼 지금이라도 법적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고서는 또 국내 사례와 함께 미국·독일·영국·캐나다 등 동물학대 관련 해외 법안을 수집해 동물 대상 성 학대에 대한 법적 기준과 양형규정을 분석하고, 범죄 인지 후 피학대 동물에 대한 사후 조치 등 대처 매뉴얼도 상세하게 소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에는 동물 성 학대 관련 법 규정이 없어서 사법 당국에서는 관련 사건을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판단하거나 혹은 대인 범죄와 병합해 처벌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2019년 경기도 이천의 진돗개 학대 사건. 20대 남성이 수족관에 묶여 있던 3개월령 수컷 진돗개에 올라타 자신의 성기로 학대를 한 사건이다. 진돗개는 생식기 부분에 상해를 입었다. 재판부는 해당 남성이 범행 1개월 전 외국인 여성을 강제추행한 사건과 병합해 피고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하고 보호관찰과 40시간의 성폭력 치료강의 수강 등을 선고했다. 진돗개를 대상으로 한 범죄에 대해서는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가 적용됐다.
2017년 부천시에서는 범인이 개집에 묶인 타인 소유의 풍산개 생식기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찢어지게 하는 사건이 있었다. 재판부는 “범행 내용이 잔혹하고 가학적”이라며 징역 4개월 및 치료감호를 선고했다. 이 사건에서는 살아있는 상태에서 동물의 신체를 손상한 행위(동물보호법 위반)가 인정됐다.
2015년 광주에서는 범인이 타인 소유의 골든 리트리버를 주택가로 유인한 뒤 성기에 상처를 냈다. 범인은 앞서 4개월 전에는 인근 편의점에서 일하는 뇌병변 장애인 여직원을 성추행한 사실도 드러났다. 피고인에게는 동물보호법 위반과 함께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이 적용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범행 대상은 개뿐만이 아니었다. 타인 소유의 축사에 침입해 암소를 수간해 해당 동물의 생식기에 상처를 입힌 2건의 사건은 동물보호법 위반 외에 건조물침입죄 및 재물손괴죄가 함께 적용됐다.
해당 사건들은 피학대 동물이 타인 소유의 동물이며 신체적 상해를 입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뒤집어 보자면 이런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을 때는 처벌이 어렵다는 뜻이다. 보고서는 “개인 사유지에서 자신이 소유한 동물을 대상으로 학대 행위가 이루어졌을 경우 발견과 신고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며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신체적 상해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법원이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판결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해외 통계에 따르면 동물 성범죄자는 높은 비율로 대인 성범죄를 저른다. 미국에서 1973년부터 2015년 사이에 동물 성 학대 사건으로 검거된 범인 456건을 조사한 결과, 범죄자의 33.2%가 아동 및 성인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른 전과가 있었다. 폭행, 약물 등을 포함하면 전과가 있는 비율은 52.9%로 늘어났다. 동물 성범죄는 재범률도 매우 높다는 특징을 가졌다. 이전에 동물 성 학대로 기소되거나 유죄 판결받은 범인 중 27.6%는 두 마리 이상의 동물을 학대하거나 같은 동물을 여러 번 성 학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구권에서는 동물 성범죄와 이를 묘사한 음란물을 제작하는 행위도 법으로 규제한다. 국내법과는 달리 피해 동물이 상해를 입었는지와 무관하게 동물 성범죄를 시도한 자체만으로도 처벌하며 향후 범죄자의 동물 양육을 금지한다.
미국은 2019년 ‘동물학대 및 고문 방지법(PACT)’을 제정해 동물을 의도적으로 성 학대하거나 죽이는 행위 및 관련 영상을 만들고 배포하는 행위를 전부 금지하고 있다. 이를 위반하면 7년 이상의 징역 혹은 벌금형에 처하고, 21개 주의 경우 동물 성범죄자에게 정신 감정과 심리 치료 등을 명령할 수 있다. 또 미 연방수사국(FBI)은 2016년부터 동물 성학대를 방치, 고문, 투견‧투계와 함께 동물학대 4대 중범죄에 포함시켜 관련 통계를 국가사건보고시스템에서 별도로 관리하고 있다.
독일은 2012년 개정 동물복지법을 통해 동물을 이용한 성행위 및 음란물 제작을 금지하는 조항을 신설했다. 피해 동물의 상해 여부와 무관하게 행위 자체로 처벌하며, 3년 이하의 징역에 더해 무기한 동물 소유를 금지할 수 있다. 영국, 스위스, 캐나다, 호주 또한 동물 성범죄를 법으로 금지한다. 영국을 제외한 국가들은 해당 범죄자의 동물을 압수하고 일정 기간 동물 소유권을 박탈한다.
보고서는 동물 성범죄가 주로 동물을 소유‧관리하는 사람에 의해 벌어지고, 약물을 사용하는 경우가 흔한데다, 동물 학대의 판단기준인 신체적 상해가 거의 발생하지 않아 현행 동물보호법으로는 적발하거나 처벌하기가 어렵다고 지적한다. 보호자에 의해 범행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고 적발이 어렵다는 점에서는 아동 성학대와 비슷한 셈이다. 동물 성학대는 아동 성학대보다 더 드러나기 어렵다는 점에서 현재 알려진 것보다 피해 사례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어웨어가 설문조사업체 마크로밀 엠브레인을 통해 전국 성인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2 동물복지 국민인식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9%는 동물을 성적으로 접촉하거나 이용하는 행위를 법적으로 금지하는데 동의한다고 답했다. 응답자 98%는 동물학대자의 피학대동물 소유권을 박탈하는 데 동의했고, 99%는 동물학대자의 동물 사육을 제한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어웨어는 동물 성범죄를 심각한 사회 범죄로 인식하고 관련 법 조항을 신설할 것을 제안했다. 이 대표는 “상해 발생 여부를 불문하고 성적 욕구를 충족할 목적으로 동물과의 성행위를 하거나 이를 사진‧영상물로 제작 유포하는 행위를 금지해야 한다”며 “재범률이 높고 대인 범죄로 이어지기 쉬운 범죄 특성상 동물 성학대자에 대한 치료 프로그램 이수 의무화, 동물 몰수 및 동물사육금지명령을 함께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성훈 기자 tell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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