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반중 매체’ 사주 국가보안법 재판 시작, 최고 종신형 가능성

권지혜 2023. 12. 18.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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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세와의 결탁 혐의 등으로 기소
서방 우려…“즉각 석방해야”
홍콩의 대표적인 반중 인사인 알렉산드라 웡이 18일 반중 매체 빈과일보 사주 지미 라이의 국가보안법 재판이 열리는 웨스트 카오룽 법원 앞에서 구호를 외치다 경찰 제지를 받고 있다. AFP연합뉴스

홍콩의 반중 미디어 재벌 지미 라이(76)에 대한 국가보안법 재판이 18일 시작됐다. 그는 중국이 직접 제정한 홍콩 국가보안법상 외국 세력과의 결탁 혐의로 2020년 8월 체포돼 그해 12월 구속기소됐다. 3년 만에 열리는 이번 재판에서 유죄가 확정되면 최고 종신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CNN,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푸른색 셔츠와 회색 정장 차림의 라이는 이날 오전 8시쯤 눈에 띄게 수척해진 모습으로 웨스트 카오룽 법원에 도착했다. 그는 경찰의 호송을 받으며 법정으로 들어서면서 지지자들을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천주교 홍콩교구장을 지낸 조지프 쩐 추기경을 비롯해 홍콩 주재 각국 총영사관 대표들이 재판을 방청하러 왔다.

홍콩 검찰은 라이가 사주로 있던 ‘빈과일보’를 이용해 홍콩과 중국 정부에 대한 비방을 일삼고 국제사회의 제재를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당초 라이의 보안법 재판은 지난해 12월 열릴 예정이었지만 외국인 변호사 선임 문제로 1년가량 연기됐다. 홍콩에서는 그간 외국인 변호사 선임이 허용됐고 중대 범죄에 대해선 배심원 재판이 진행됐지만 보안법 시행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이번 사건은 배심원 없이, 친중 성향의 홍콩 행정장관이 지명한 판사 3명이 맡았다. 홍콩 경찰은 대테러 부대와 폭탄 처리반 등 경찰 1000명을 법원 주변에 배치하고 순찰을 강화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전했다.

CNN은 “최소 80일 이상 진행될 이번 재판은 1997년 홍콩 주권이 영국에서 중국으로 넘어간 이후 홍콩 언론계 인사에 대한 가장 주목을 끄는 사건”이라며 “급변하는 홍콩 법 지형에 새로운 선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2020년 6월 말 시행된 보안법은 국가 분열, 국가정권 전복, 테러 활동, 외세와의 결탁 등 4가지 범죄를 최고 무기징역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보안법 시행 후 홍콩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고 중국에 비판적인 기사를 써온 라이는 당국의 타깃이 됐다. 그는 보안법 위반 혐의와 별개로 2019년 불법 집회를 주도한 혐의로 징역 20개월, 빈과일보 사무실을 허가 용도 외 목적으로 사용한 사기 혐의로 징역 69개월을 각각 선고받고 복역 중이었다. 이달 초 교도소에서 네 번째 생일을 맞았다.

라이는 1960년 대기근이 중국을 덮쳤던 때 홍콩으로 밀항해 잡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이후 파산한 의류 공장을 인수해 사업을 일궜고 뉴욕 여행 때 들른 피자가게 냅킨에 적혀 있던 이름을 딴 의류 브랜드 ‘지오다노’를 설립해 큰 돈을 벌었다.

기업인이었던 그는 89년 중국 정부의 천안문 민주화 시위 유혈 진압에 충격을 받아 언론계에 뛰어들었고 95년 빈과일보를 창간했다. 2014년 홍콩 우산혁명, 2019년 범죄인 송환법 반대 시위에 참여하며 반중 언론인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빈과일보는 당국의 압박 속에 보안법 시행 1년 만인 2021년 6월 24일자 신문 발행을 끝으로 폐간했다.

미국과 영국 등 서방은 이번 재판에 일제히 우려를 나타냈다. 매슈 밀러 미 국무부 대변인은 성명을 내 “미국은 중국의 보안법에 따라 홍콩 민주화 운동가이자 언론 소유주인 라이가 기소된 것을 규탄한다”며 “라이를 비롯해 스스로의 권리를 지키려다 수감된 모든 이들을 즉시 석방하라”고 촉구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외무장관도 홍콩 당국에 기소를 중지하고 라이를 석방할 것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라이의 아들 세바스티앙은 지난 12일 캐머런 장관을 만나 영국 시민권자이기도 한 아버지의 석방을 지원해줄 것을 촉구했다. 세바스티앙은 CNN인터뷰에서 “아버지가 심리적으로 매우 강하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누구도 나이의 무게에서 벗어날 수 없다. 아버지가 구금 상태에서 사망하는 것을 보고싶지 않다”고 말했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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