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위기종 지정해놓고 서식지 없애려는 환경부, 왜 이러나
[글쓴이 : 이경호 대전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 금강에서 흑두루미가 월동하는 모습. 담수가 진행되면 이런 모습은 볼 수 없게 된다. |
ⓒ 이겨호 |
장남이와 세종이는 이제 단순히 겨울철에 오는 진객 흑두루미가 아니다. 2015년부터 매년 겨울 장남평야를 지켜온 주인이자 세종을 상징하는 동물이 됐다. 정기적으로 찾아오면서, 매년 11월이 되면 이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희망하며 기다리는 사람들이 생겼다. 혹시 번식지에서 문제가 생겨서 못 오면 어쩌나 걱정하게 된다. 이런 걱정을 표현하고자 두 마리의 흑두루미에게 장남이와 세종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어찌됐든 2015년부터 매년 장남평야를 찾아오고 있는 장남이와 세종이는 올해도 장남평야를 찾았다. 둘은 2018년, 2021년 새끼를 데리고 찾아와 기쁨을 두 배로 만들기도 했다. 매년 번식에 성공하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새끼들도 매년 같이 월동하면 좋을 텐데 대체로 둘만 세종을 찾는다.
필자가 장남이와 세종이라고 해도 자식을 계속 데려오기는 힘든 곳이 바로 장남평야이다. 어김없이 장남평야를 찾는 둘에게 매년 미안한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세종시에 들이닥친 개발의 광풍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개발이 계속되면서 서식환경은 지속적으로 악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실제로 장남평야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현장에 남은 평야는 세종시 개발 이전에 비해 약 1/10 이상 줄어든 것이 현실이다. 중앙호수공원, 국립수목원 등의 개발부지로 지정되면서 대규모 건설이 있었고, 이제 남겨진 면적은 얼마 되지 않는다.
이렇게 남겨진 평야지대라도 존치하자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농경지 일부를 제외한 모든 지역을 공원으로 개발하는 계획이 발표됐다. 장남들보전시민모임이 계획 수정과 철회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현재는 대규모 개발로 공원이 조성되고 있다. 트럭이 성토 작업을 시작하면서, 갈대밭이 었던 곳은 현재 붉은색 흙이 드러나 흉측하게 보일 뿐이다. 남겨진 농경지를 제외한 모든 곳이 공사중이다. 장남이와 세종이는 불안한 겨울을 보낼 수밖에 없다.
장남들보전시민모임은 장남이와 세종이를 위해 매년 1t의 먹이를 공급하고 있다. 장남평야를 찾는 큰고니들을 위해 활주할 수 있는 작은 소류지 유지에도 힘쓴다. 이런 시민들의 노력에 비해 개발공사는 너무나 거대하고 크다.
세종보 복구, 멸종위기 조장과 뭐가 다른가
▲ 세종보 담수를 위해 공사 중인 모습 |
ⓒ 이경호 |
▲ 세종을 다시 찾은 다시 찾은 장남이와 세종이의 모습 |
ⓒ 이경호 |
최근에는 환경부는 여기에 기름을 붓고 있다. 세종보 철거 결정을 뒤집고 복구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세종보를 존치해 담수하면 장남이와 세종이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진다. 세종이와 장남이는 장남평야의 남겨진 농경지에서 주로 서식하지만 금강을 배후 서식지로 활용한다.
두루미류의 경우 깊은 물이 아닌 낮은 습지에 서식하는데, 세종보를 재가동해 담수하면 두루미들의 배후 서식처는 수몰돼 버린다. 이런 일련의 과정이 중앙과 지방정부의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둘은 더 이상 장남평야를 찾지 않을 것이다.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만 해 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셈이다. 이런 대규모 담수는 멸종위기종 보호 책무를 방기하는 것을 넘어, 멸종위기를 조장하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혹자는 그깟 새 두 마리로 치부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생명이 죽음으로 내몰리는 일을 방치하는 것은 인류의 미래를 사지로 모는 일과 다르지 않음을 명심해야 한다.
올해도 평화롭게 월동하지 못하는 사태를 두고 봐야 하는 환경운동가로서 장남이와 세종이에게 미안하고 죄인이 된 느낌이다. 제발 정신 차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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