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 주먹'으로 美 본토 노린 北…"한·미 핵우산 뚫겠다" 능력 과시
한·미의 “핵 사용시 정권 종말” 경고에 대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대답은 미 본토 타격이 가능한 ‘만리 주먹’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이었다. 전날 남한 전역을 사정권에 둔 단거리탄도미사일(SRBM)을 발사한 지 불과 약 10시간 만이다. 한·미가 핵협의그룹(NCG) 2차 회의에서 일체형 확장억제, 즉 핵우산 강화 방안을 구체화하기로 한 직후 보란 듯이 한·미를 노린 핵탄두 탑재 가능 미사일을 연이어 쏜 것이다.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북한은 18일 오전 8시 24분쯤 평양 일대에서 동해를 향해 ICBM 1발을 발사했고, 직각에 가까운 고각으로 발사된 미사일은 약 1000km를 비행한 뒤 동해에 떨어졌다. 북한의 ICBM 발사는 올해 들어 다섯 번째로, 지난 7월 이후 약 다섯 달 만이다.
일본은 보다 구체적인 정보를 공개했다. 일본 방위성의 분석에 따르면 북한이 쏜 ICBM은 이날 오전 8시 24분쯤에 발사돼 오전 9시 37분 홋카이(北海)도 오쿠시리(奧尻)섬 서쪽 약 250㎞ 거리 동해 상에 낙하했다. 비행시간은 약 73분, 비행거리는 약 1000㎞, 최고 고도는 약 6000㎞를 넘는 것으로 추정했다. 또 탄두 무게에 따라 사거리는 1만5000㎞ 이상으로, 미국 전역이 사정권에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7월 시험발사한 고체연료 방식의 신형 ICBM ‘화성-18형’과 유사한 궤적인데, 국가안보회의(NSC) 역시 이날 상임위원회 뒤 “(북한이)소위 군사정찰위성을 발사한 데 이어 고체연료 사용 ICBM을 발사했다”고 규탄했다. ‘고체연료 기반 ICBM’ 규정은 이날 쏜 미사일을 화성-18형으로 본다는 뜻으로 해석 가능하다.
앞서 북한은 전날 오후 10시 38분쯤 SRBM을 발사했다. 미사일은 약 570km 비행한 뒤 동해 상에 떨어졌다. 이는 평양과 부산 간 직선 거리(약 520km)를 넘어선다. 남한 전역이 사거리 내에 들어간다는 뜻으로, 특히 같은날 부산작전기지에 입항한 미 핵추진 잠수함 미주리함(SSN-780)을 노린 것으로 보인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한·미 모두를 타격할 수 있는 핵능력을 보유해 핵우산을 뚫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며 "당분간 핵능력 고도화에 더욱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만리눈 이어 美 본토 타격 ICBM 꺼내
앞서 김정은은 위성 발사 직후인 지난달 22일 "공화국 무력이 이제는 만리를 굽어보는 '눈(위성)'과 만리를 때리는 강력한 '주먹(ICBM)'을 다 함께 수중에 틀어쥐었다"고 밝혔다. '미사일의 눈' 역할을 하는 군사정찰위성 발사 성공을 공언한 뒤 실제로 미국을 직접 겨냥한 ICBM 카드를 꺼내 '핵능력 완성' 과시에 나선 것이다.
한동안 남측과 주일 미군기지를 비롯한 한반도 일대를 노린 전술핵 개발에 몰두하던 북한이 이처럼 본격적으로 다양한 미사일 플랫폼을 가동하고 나선 건 국제 정세가 열어준 '기회의 창'을 최대한 활용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에서 '두 개의 전쟁'을 치르며 미국의 안보 여력이 분산될 여지는 커졌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는 제재를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러시아가 뒷배를 봐주고 있다. 북한은 이미 러시아와의 불법 거래를 통해 위성 관련 기술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성공했다.
중국 역시 미국과의 전략 경쟁 국면에서 북한을 전략자산처럼 활용하고 있다. 실제 이날 박명호 북한 외무성 부상과 왕이(王毅)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겸 외교부장이 만나 전략적 협력을 논의했다고 중국 외교부가 밝혔다. 북한이 ICBM을 쏜 날이지만, 이를 묵인이라도 하듯 개의치 않고 북한과 밀착하는 모습을 연출한 것이다. 국무위원인 왕이가 차관에 불과한 박명호와 회담한 것 역시 북한을 각별히 대한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충실한 '도발 계획표' 이행
북한이 도발의 수위를 높이는 것 역시 예상된 수순이다. 북한은 위성 발사 이튿날인 지난달 22일 밤 평양에서 중거리탄도미사일(IRBM)로 추정되는 미사일을 발사했지만, 고도 1~2㎞ 상공에서 폭발했다. 군 당국은 당시 북한이 고체연료 기반의 미사일 기술을 확대하고 있다는 평가를 내놨다. 북한은 고체연료 방식의 신형 ICBM인 화성-18형을 지난 4월과 7월 시험 발사하는 등 관련 기술의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내 전문가들은 북한이 이날 발사한 미사일도 화성-18형일 것으로 보고 있다.
미사일 전문가인 권용수 국방대 명예교수는 "전반적인 비행 특성이 고체연료 방식의 ICBM인 화성-18형을 두 번째로 시험 발사한 지난 7월과 유사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 시험 발사를 통해 북한이 화성-18형의 고체연료 추진시스템에 대한 신뢰성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이어 "북한이 내년에는 ICBM의 정확성과 생존성에 직접 관련이 있는 다탄두(MIRV) 기술의 완성을 위한 다양한 시험발사를 시도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김정은이 연말 ICBM 카드를 택한 데는 내부적 요인도 있어 보인다. "2023년은 5개년계획 완수의 결정적 담보를 구축해야 하는 중요한 해"라고 직접 강조했지만(지난해 11월30일 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11차 정치국회의), 사실 내세울 만한 경제 분야의 성과가 변변치 않기 때문이다.
정대진 원주 한라대 교수는 "북한의 ICBM 발사는 한·미 NCG 회의 전부터 예상됐던 시나리오 중 하나"라며 "한·미의 확장억제 강화에 대한 맞대응이자 내부적으로는 연말 전원회의를 앞두고 내부결속을 위한 성과를 염두에 둔 측면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일 안보협력 뭉쳐도 '우리는 쏜다'
"한·미·일이 실시간 미사일 경보정보 공유 체제를 수일 내에 정상 가동하기 위한 최종 검증 단계"(18일 합참 관계자)에 돌입한 가운데 북한이 대비 태세를 점검해보려는 의도라는 분석도 나온다.
동시에 이는 정면돌파 의지로도 볼 수 있다. 3국이 미사일 경보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할 경우 보다 정확한 탐지와 분석이 가능한데, 이조차 상관 없다는 듯 '막을 테면 막아봐라' '우리는 쏜다'는 식의 행태이기 때문이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은 군사정찰위성 발사 성공을 계기로 자신감이 넘치는 분위기를 이어나가는 모습"이라며 "연말 전원회의를 계기로 ICBM 역량 강화 및 군사정찰위성 연속 발사와 같은 계획을 내놓으며 핵강국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전념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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