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고 규모 공연 시장, 잇따라 사라지는 대학로 소극장 [2023 대중문화 결산-공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한파를 겪었던 공연 시장이 빠르게 회복하면서 올해 연 1조원 시대를 열 것으로 보인다. 이미 3분기까지 8000억원을 돌파한 가운데, 공연 성수기인 연말 효과까지 더해지면 연간 기준 역대 최고 매출을 기록할 것으로 보고 있다.
대형 공연들의 잇따른 성공으로 공연 산업에 기록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지만 그로 인한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특히 부적절한 수익을 얻기 위한 밀캠·밀녹 유통과 암표의 성행은 해결하지 못한 숙제로 남았고, 서울의 대극장에만 집중된 시장에서 소외된 소극장들이 문을 닫는 등 양극화 역시 공연계의 씁쓸한 성장의 이면을 보여주고 있다.
올해 1조 규모 성장 가능…2년 연속 역대 최고 매출 전망
예술경영지원센터 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에 따르면, 올해 3분기까지 국내 공연 시장의 티켓 판매액은 총 8295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역대 최고였던 전체 공연시장 매출 9725억원과 비교하면, 올해는 연말 특수까지 더해 총 1조원 규모를 넘어설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직전 해인 2019년 총 공연시장 매출이 약 8530억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는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역대 최고 매출을 경신할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매출 상승을 이끈 건 대중음악이다. 대중예술 장르가 차지하는 공연건수 비중이 전체의 19% 수준밖에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티켓예매수는 30.4%, 티켓판매액은 53.2%로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3분기 공연시장만 보더라도 싸이의 흠뻑쇼를 비롯해 방탄소년단 슈가, 블랙핑크, 세븐틴, NCT 등 아이돌 그룹의 투어 공연 그리고 포스트 말론 내한 공연 등이 매출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뮤지컬도 시장 규모를 키우고 있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과 ‘레미제라블’은 각각 13년, 8년 만에 한국어 프로덕션으로 관객을 만났다. 특히 ‘레미제라블’은 한국어 라이선스 공연 10주년이다. 이밖에도 ‘그날들’ ‘레베카’ ‘드라큘라’ 등이 10주년 기념 공연을 올렸다. 안정적으로 새 시즌을 이어가는 와중에 ‘레베카’는 올해 100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밀리언셀러’ 작품으로 등극했다. 국내 뮤지컬 가운데 100만 관객을 모은 작품은 ‘명성황후’ ‘캣츠’ ‘시카고’ 등 총 10개로 늘었다.
공연계 좀먹는 암표·밀녹 유통
공연에 대한 대중의 수요가 커지면서 부적절한 방법으로 이익을 편취하려는 사람들이 공연계를 멍들게 하고 있다. 제작사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협회 회원사 작품의 밀캠 약 233개가 불법으로 주요 인터넷 사이트 등에서 유통됐고, 자체 설문조사 결과 25개 회원사 중 15개 회원사가 ‘밀캠의 불법유통 문제가 심각하다’는 의견을 냈다.
정부는 뒤늦게지만 집중 단속 방침을 전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저작권범죄과학수사대는 이달 말까지 연극과 뮤지컬, 연주회 등 공연을 무단으로 촬영·녹화한 밀캠을 불법으로 유통하는 행위를 집중단속 하겠다는 방침이다. 특히 영리 등 목적으로 적발된 불법 유통업자는 엄정하게 처벌하겠다는 계획이다. ‘저작권법’에 따르면 연극과 뮤지컬, 연주회 등의 공연 밀캠 영상을 영리 목적 또는 상습적으로 유통하는 행위로 적발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이런 시도가 밀캠의 일시적인 유통을 막을 순 있어도 이 행위를 뿌리 뽑을 수는 없다는 것이 공연계의 중론이다. 실제로 앞서 몇 차례 저작권법 위반으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사례가 있지만 적게는 50만원에서 많게는 3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은 것에 그쳤다. 이에 따라 공연계에선 밀캠, 밀녹 유통을 막기 위해선 공연을 몰래 녹화하는 행위를 처음부터 금지해야한다고 입을 모은다.
밀녹 유통만큼 심각한 것이 암표상이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대중음악 공연 암표 신고는 2020년 359건에서 2년 만에 4224건으로 훌쩍 뛰었다. 문제는 암표가 단순히 한 기획사의 손해를 넘어 실제 사기 피해를 내는 사회적 문제로 번지고 있는데, 정작 정부는 문제 해결에 있어서 뒷짐만 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암표가 만연한데도 관련 법은 50년 넘게 그대로인 상태다. 관련 단체들은 암표 관련 법률 개정을 요청하는 청원을 제기하는 등 꾸준히 목소리를 내고 있다.
33년 역사의 학전도 폐관…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대학로 소극장
대형 작품에 관객들의 관심이 쏠리면서 대학로 소극장은 코로나19 이후 경영난과 건물주의 재계약 불가 통보 등으로 꾸준히 어려움을 겪었다. 앞서 나무와 물, 정미소, 종로예술극장 등이 문을 닫았고 경영난에 시달리던 세실, 동숭아트센터 등은 주인이 바뀌어 운영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2002년부터 21년간 운영되던 한얼소극장도 올해를 끝으로 극장 문을 닫을 위기에 놓였다.
특히 1991년 설립돼 대학로를 대표하는 소극장으로 자리매김했던 극단 학전이 33년의 역사를 뒤로하고 내년 3월 문을 닫기로 결정하면서 공연계에 충격을 안겼다. 이미 코로나19 유행 전부터 지속적인 재정난에 시달려 왔고, 김민기 대표가 최근 암 진단을 받으면서 더는 운영이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학전은 가요계에서도, 연극계에서도 상징적인 공간이다. 1990년대에는 통기타를 든 가수들이 학전에서 라이브 콘서트 문화를 이끌었고, 1994년 초연한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4000회 공연을 돌파했다. 설경구, 김윤석, 황정민, 장현성, 조승우를 비롯해 나윤선, 윤도현 등 학전이 배출한 배우, 음악인도 상당하다.
이곳에서의 소중한 추억을 가진 배우와 가수들은 폐관 소식에 힘을 모으기로 했다. 일명 ‘학전 어게인(AGAIN)’ 프로젝트다. 내년 2월 28일부터 폐관 하루 전날인 3월 14일까지 약 2주 동안 학전 출신 배우와 가수들이 모여 학전 극장에서 릴레이 공연을 열 예정이다.
시장 규모의 성장도 물론 중요하지만, 역사가 담긴 공간들이 사라지는 것 대해 업계에서는 대학로 소극장을 보호할 수 있는 대비책,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소극장을 활성화하고 연극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다양한 공간지원 사업 계획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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