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울음소리 귀한 세상에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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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미숙 기자]
큰아들이 가정을 이룬 지 2년 만에 아기를 낳았다. 나이가 예순이 넘으니 아장아장 걷는 아이만 보면 왜 그리 예쁜지 나도 그런 보물을 안아 보고 싶었다. 그렇다고 그런 말을 대놓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알아서 하겠거니 했는데 어느 날 아들 부부가 아이 둘을 낳기로 2세 계획을 세웠다고 했다.
결혼과 함께 출산을 당연시 여겼던 우리 세대와는 다르게 요즘은 딩크(자녀가 없는 맞벌이 부부)족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인데 기특했다. 아무래도 우리 집이 3남매(2남 1녀), 며느리 친정이 4남매(3녀 1남)로 둘 다 형제자매가 많은 가정에서 자란 탓도 컸을 것이다. 또 먼저 결혼한 친구 아기를 보며 자식 낳고 키우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는지도 모르겠다.
추석 전날인 9월 28일 큰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병원이라며 며느리가 진통을 시작했단다. 출산일이 가까워 무리하면 안 되겠기에 명절인데도 집에서 쉬라고 한 지가 며칠 전인데 덜컥 겁이 났다. 아들은 의사 선생님이 지금 낳아도 아무 문제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지만, 예정일보다 한 달 가까이나 빨리 산통이 와 불안했다. 어떤 녀석이 저리 성미가 급한지 내심 궁금하기도 했다.
오후 세 시 20분쯤 드디어 제왕절개로 몸무게 2.5킬로그램인 아들을 낳았다는 연락이 왔다. 생각보다 무게가 적어 불안했지만 어쨌든 둘 다 건강하다니 안심이 됐다. 웃음이 절로 났다. 가슴이 벅차고 행복했다.
남편도 기분 좋은지 얼굴이 환하다. 큰아들은 이제 갓 세상 구경을 한 당당이(신당동에서 생겼다고 해서 지은 태명) 사진을 여러 장 보내왔다. 추석날 보름달처럼 찾아온 손자와 귀한 선물을 준 며느리가 고마웠다.
산모와 아이는 병원에서 1주일, 산후조리원에서 2주일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퇴원하는 날 오후 큰아들은 전화로 내게 직장까지 다니며 혼자 애 셋을 어떻게 키웠냐며 고생 많았고 고맙다고 했다. 아기를 보며 여러 생각이 들었나 보다. 아빠가 됐다는 책임감과 함께 모든 게 달리 보였으리라. 울컥했지만 다들 그렇게 부모가 된다며 도리어 좋은 가정을 이루고 자식까지 낳아 대견하다고 말해 줬다.
11월 18일 큰아들 집에 다녀왔다. 주말에 계속 바쁘기도 했지만 코로나로 병원 출입을 제한한다고 해 쉽게 가지 못했다. 우리 부부는 백일해 예방 접종까지 마치고 드디어 설레는 마음으로 당당이를 만났다. 신생아치고는 코랑 눈도 크고 얼굴이 말쑥했다. 이렇게 조그만 아기를 가까이서 보는 게 얼마 만인지 감회가 새롭다.
육아는 자신 있다고 여겼는데 생각과는 다르게 어색했다. 녀석도 벌써 엄마 품을 아는지 안자마자 운다. 할머니 노릇 제대로 하려면 다시 하나하나 배워야 할 모양이다. 그래도 내 팔 길이만 한 조그만 아기가 꼬물거리며, 살겠다고 젖병 빠는 것을 보고 있자니 애잔하기도 했지만, 생명 탄생이 경이로울 따름이다.
오늘도 가족 카톡에 손자 동영상과 사진이 올라온다. 나와 남편은 날마다 아이 사진 보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딸도 막내아들도 감탄사를 연발한다. 모두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진다. 벌써 콩깍지가 씌었다.
아이가 셋이라고 택시조차 서지 않고 아이 돌봄 시스템이 전혀 없던 시절, 하루하루 전쟁 치르느라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고 지냈다. 버겁고 힘들어 어서 빨리 세월이 지나가기만을 바라고 또 바랐다. 그래도 세 아이를 낳아 키운 것이 내 인생에서 제일 잘한 일이라 감히 말한다. 그런 세월이 있었기에 이런 행복을 맛보지 않나 싶다.
지금 일하는 학교에 친구 둘과 같이 근무한다. 점심 먹고 차라도 한 잔 마시는 시간이면 먼저 할머니가 된 친구들은 손주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예뻐서 어쩔 줄을 모르며 자랑하기 바쁘다. 팔불출이 따로 없었다. 그래도 그 마음을 이해하기에 맞장구를 쳤지만 실은 부럽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나도 드디어 팔불출 되기 경쟁에 동참하게 됐다. 스마트 폰 바탕화면은 이미 당당이 사진으로 도배를 했고, 꽤 오랜 시간 내 생활의 주인공이 될 듯싶다. 아기 울음소리가 귀한 세상이다. 팔불출이라고 흉을 봐도 괜찮다. 도리어 과시하고 싶다. 이런 경쟁은 계속해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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