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탄생엔 지원 필요…예산 일괄 삭감으로 연구 막아선 안 된다 [강동재가 소리내다]
지난 8월 9일,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산하 출연연구기관 25곳이 내년도 주요 사업비 삭감을 통보받았다는 소식을 접했다. 순수 연구개발 활동에 사용하는 예산이 줄어든다는 소식이었고, 해당 결정과 그 과정들이 과학 기술과 우리나라를 위하여 옳은 판단인가 생각했다. 이에 KAIST 학부 총학생회장으로서 대학원 총학생회장과 만나 우리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논의했다.
당시 언론을 통해 ‘연구개발(R&D) 카르텔’이 예산 삭감의 근거 중 하나라는 기사를 접하며, 나의 행동이 자신을 카르텔화하고 그 밥그릇을 지키려는 모습으로 보일까 우려도 했다. 그러나 배우며 살아가는 학생으로서 우리의 생각과 목소리를 직접 전달하자는 결론을 내렸고, 이에 당일 저녁 성명문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KAIST 학부 총학생회·대학원 총학생회를 중심으로 과학기술특성화대학 및 국내 여러 대학교에 연대를 요청했고, 학부 및 대학원 포함 총 총 9개 학교의 뜻을 모아 11개 학교가 뜻을 모아 ‘과학기술 분야 R&D 예산 전면 삭감 정책에 대한 성명문’을 발표했다.
이후 ‘R&D 예산 삭감 대응을 위한 대학생 공동행동’이 출범했다. 4대 과학기술원과 POSTECH, KENTECH, 그리고 국립대학교 및 사립대학교의 학생들이 뭉쳤고 총 11개 대학의 전국 각지 담당 학생들과 온라인 회의를 진행했다. 그렇게 10월 30일, ‘공부할 수 있는 나라, 연구하고 싶은 나라를 위하여’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나는 그동안 여러 간담회에 참석했고 ▶R&D 예산을 일괄 삭감해서는 안 된다 ▶정책 결정 과정에서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과학자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해왔다. 이에 대한 답변으로 ‘과학계에 존재하는 비효율을 없애야 한다’는 의견을, 글로써 또 말로써 적지 않게 보고 들어왔다. 무조건 예산을 증액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예산이 낭비되어도 이를 무작정 방치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하고 싶은 것이 전혀 아니다. 과학을 사랑하며 이를 통해 우리나라 발전에 이바지하고 싶은 한 사람으로서, 내가 전하고 싶은 말은 오히려 그 반대다.
성공 가능성 희박한 연구에도 투자 필요
과학계에서 주목할만한 발전은 우연한 관찰로부터 비롯되는 경우도 많다. 실험 도중 실패에서 얻은 결과로부터 중대한 발견 또는 발명을 하는 경우도 여럿 찾아볼 수 있으며, 세렌디피티(Serendipity·우연한 발견이나 발견)는 과학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특히 기초과학의 경우, 성공 가능성이 희박한 연구를 위해서도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하고 다양한 연구가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환경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그러나 ‘실패할 수 있는 연구에도 투자해야 한다’라는 이야기와 ‘예산이 낭비되는 것을 막지 말아야 한다’라는 이야기는 절대 같아질 수 없고, 동일하게 받아들여져서도 안 된다.
녹색형광단백질(GFP)로 2008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시모무라 오사무 박사(마틴 챌피, 로저 치엔 공동 수상)의 이야기를 들여다보자. 시모무라 박사는 실험에 지친 어느 날 샘플을 모두 싱크대에 버렸는데 우연히 여기에서 파란빛을 보았고, 당시 싱크대에 남아있던 바닷물의 염분 속 칼륨이 발광 원인이라고 생각하여 연구에 박차를 가해 GFP를 찾게 되었다고 한다.
위 이야기를 통해 ‘싱크대를 매일 깨끗하게 유지하지 않아도, 남아있던 바닷물처럼 이것이 우연한 발견을 낳을 수 있으니 과학자들의 모든 행동을 무조건 존중해야 한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매일 설거지를 하지 않아 후처리 비용이 많이 발생한다면, 이를 관리하는 것이 효율적인 운영이 될 것이다. 그리고 국민의 혈세를 사용하는 일에 있어, 이렇게 효율적으로 개선해가는 일들에 우리 과학자들이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시모무라 박사에게 노벨상을 선물한 연구가 이루어진 데에는 그가 설거지를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점보다는 사소한 관찰을 놓치지 않고 열정적인 태도로 임하는 사람이라는 점이 훨씬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실제로 그는 미국 워싱턴주의 해변에서 매일 3000마리의 해파리를 채집하였고, (그가 추산하기를) 85만 마리의 해파리로부터 단백질을 분리하여 그 성질을 연구했다고 한다. 운영을 효율적으로 개선하더라도 성공 가능성이 낮은 연구에도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면 1%의 영감에 대해 과학자들은 포기하지 않고 정진해나갈 수 있다. 그러나 당장의 활용성과 성공을 담보하는 연구에만 지원이 이루어진다면, 과학자들의 피땀으로 만들어지는 99%의 노력은 1%의 영감이 아닌 기존의 연구들에 국한되어 이루어질 것이다.
비효율 차단할 거름망 만들면 돼
비효율이 발생한다면 이에 대해 상세히 들여다보며 낭비를 예방하고 이를 처단할 수 있는 거름망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과학자들을 조금 힘들게 할지라도, 세금은 귀중히 사용되어야 하기에 거름망이 꼭 필요하다면 그 절차를 감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 모든 과정은 현장의 목소리를 바탕으로 하여 진행되어야 한다.
과학자들은 국가의 지원을 빼돌리려 고민하고 이를 악용해 본인의 배를 채우려는 사람들로 뭉쳐있는 집단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우리(과학자와 정부)는 대한민국의 발전이라는 같은 꿈을 꾸고 있으며, 이는 서로에게 반드시 공유되어야 하는 부분이다. 누군가가 비효율을 지적한다면, 그 비효율을 없애기 위한 방안을 함께 고민하면 된다. 모든 분야의 예산을 일괄적으로 삭감하는 방식은 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제 식구를 감싸며 본인도 그 식구가 되고자 낭비를 못 본 척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큰 눈을 가지고 논리적으로 옳은 말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과학자 집단에 없을 리 없다. 그것은 ‘보편적인 진리나 법칙의 발견을 목적으로 한 체계적인 지식(과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의 가슴 속에나 남아있는 기본일 것이다. 국가는 그런 과학자들이 기술의 발전, 국가의 발전을 위해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과학을 공부하고, 누구보다 우리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과학 기술이 국가 발전에 꼭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국가의 존중과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을 외치고 싶다. ‘과학자를 아껴주세요!’
강동재 KAIST 총학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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