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염장이'가 부러워한 80대 할머니의 죽음

이진순 2023. 12. 1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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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피하지 않고 맞이한 사람들에서 배워야 할 것

[이진순 기자]

병원에서 생을 마치는 사람들 비율이 한국은 약 70%로,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게 나타났다는 기사를 읽었다.

엔딩노트, 생전 장례식, 연명의료와 완화의료, 재택사, 안락사, 존엄사 등... 90대 어머니와 살면서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종종 접하게 되는 단어들이다(관련 기사: 90대 어머니와 50대 딸, 저녁 먹고 유언장 썼습니다 https://omn.kr/25jka). 

그런데 많은 단어들을 접하는데 비해,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만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만나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자료사진).
ⓒ 픽사베이
초등학교에서부터 죽음에 대한 교육을 하는 나라들이 있다. 가족에게 부담되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는 죽음, 의미 있는 사람과 함께 준비하는 죽음, 내 삶의 흔적을 정리하는 죽음, 통증 없고 품위 있는 죽음을 고민하게 만드는 미국, 일본, 독일 등 외국에서는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사회의 수준이 우리와는 상당히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안타까워진다.

왜 우리 교육은 엄청난 돈과 시간과 열정을 쏟아 붓는데도 삶의 핵심에는 다가서지 못하는 것일까? 삶의 핵심에 다가서지 못하도록 사회 구성원들을 미친 듯 몰아가고 있는 것이 오늘날 교육의 역할인 것일까? 그래서인지, 피할 수 없는 삶과 죽음의 문제는 개인들이 어렵게 마주해야 할 일로 남겨져 있는 듯하다. 

낯설고 불편해져버린 죽음

이렇게 죽음이 낯설고 불편해져버린 세상에도 죽음의 현장이 삶의 현장인 사람들이 있다. 30여 년 간 수천 번이 넘도록 염습(고인을 마지막으로 목욕시키고 깨끗한 옷을 입혀 관에 모시는 일)을 해왔던 사람에게 죽음은 어떤 것이고, 그는 어떻게 죽기를 바랄까?
 
▲ 대통령의 염장이  대통령 6명의 장례를 치렀고, 수천이 넘는 시신을 염습했던 염장이 유재철 씨의 책이다. 그는 단순히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 아닌, '예'를 행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고 한다. 매순간순간이 기도하는 삶을 살아가는 듯한 그의 모습에서 죽음을 대하는 삶의 품격이 전해져온다.
ⓒ 김영사
 
<대통령의 염장이>의 저자 유재철씨의 책을 보면(2022, 김영사), 장례지도사 유씨는 힘이 다 빠지기 전에 주변을 정돈하고, 인간관계를 정리하기 위해 생전 이별식을 하고, 숨쉬기 힘들어지면 목욕재계하고 좋아하는 옷 입고, 마지막 호흡을 느끼면서 떠나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고 임종 후 가족들이 작은 애도식을 해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무수한 죽음을 접했던 그는 어느 80대 할머니의 죽음을 특별하고 부러운(?) 죽음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할머니의 남편은 40세에 먼저 떠났고, 돌아가시기 전 분홍 치마저고리를 할머니에게 선물했다. 할머니는 그 옷을 제일 중요한 날에만 정성스레 꺼내 입었다. 나이가 들어 쇠약해지고 지병이 악화되어가자 할머니는 어느 날 갑자기 곡기를 끊으셨다. 같이 사는 아들 부부가 조금만 드시라고 간청해도, 정신이 있을 때 떠나겠다며 고요히 누워계셨다.

볕 좋은 어느 날, 할머니는 스스로 목욕한 뒤 아끼던 저고리를 꺼내 입으셨다. 그리고 볕이 드는 소파에 앉아 아들의 출근길 인사를 느린 손짓으로 받고 나서 누우셨다. 며느리가 설거지와 청소를 마치고보니 할머니는 이미 세상을 뜨신 상태였다. 할머니는 그렇게 스스로를 염습하시고 떠나셨다. 보통 염습 때는 입과 항문에서 이물질이 새어나오기 마련인데, 그 어떤 것도 나오지 않았단다.

유씨는 고인이 된 할머니를 하얀색 수의로 갈아입혔었다고 한다. 만약 유족에게 분홍 치마 저고리의 의미를 미리 들었더라면 굳이 삼베 수의로 갈아입혀 드리지 않았을 텐데, 이 이야기를 나중에서야 전해 들었다고. 유언이라든가 글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할머니는 본인의 장례식을 미리 준비하고 계셨던 것이다.

삶을 완성시키는 죽음 
 
▲ 드라이빙 미스 노마  자궁암 진단을 받은 90세의 어머니와 장기간의 캠핑카 여행을 떠난 아들 부부의 여행기이다. 이들의 용감함은 어떻게 가능한지, 어떻게 살다 어떻게 갈 것인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다. 아프면서도 유쾌하고 놀랍고 따뜻한 책이다.
ⓒ 흐름출판
 
존엄한 마지막을 다룬 또 다른 책. <드라이빙 미스 노마>의 주인공 미스 노마는 90세에 자궁암 진단을 받고, 아들 부부와 여행을 떠나기로 결정한다(소설 같지만 실화 기반이다).

이 가족은 캠핑카를 타고 1년이 넘게 미국 여행을 했고, 미스 노마는 캠핑카에서 아들 부부와 호스피스의 도움을 받으며 죽음을 맞았다. '당했다'는 말보다 '맞았다'는 말이 어울리는 죽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스 노마와 그 아들 부부가 삶을 살아가는 방식과 죽음을 대하는 방식 모두 내 마음에 긴 여운으로 남아있다.

오랫동안 지병을 안고 살았던 87세의 할머니가 계셨다. 어느 날, 간으로 전이된 위암을 발견하자 수술이 아니라 집으로 가는 것을 선택했다. 할머니는 먹던 모든 약을 중단하고, 미루어두었던 만남과 일들을 마무리 하셨다.

이렇게 3주 동안 삶을 정리하는 시간을 보내셨고, 평온하게 자면서 숨을 거두셨다고 한다. 당연히 주변에서는 끝까지 치료를 했더라면 하고 아쉬워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할머니는 "나는 지금까지 잘 살았어요. 더 이상 알고 싶지 않아. 이제 끝인 거지. 받아들여요"라는 말씀을 남기셨다. 김현아 교수의 책 <죽음을 배우는 시간>에서 만난 내용이다.

피할 게 아니라 받아들여야

죽음을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일반적인 문화는 '공포'와 '회피'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공포는 어쩌면 수많은 위험들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어진 중요한 생존능력일 것이다. 그러나 피할 수 있는 위험이 아니라 피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한 공포로 끝까지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삶을 정리하고 완성하며 맞이하는 죽음은 불가능할 것이다.

삶의 끝이 죽음임을 받아들이는 것, 삶의 정리와 완성을 위해 자신이 지금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는 것, 이것이 죽음 앞에 선 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최선은 미스 노마의 사례처럼 아주 특별한 마지막이어야만 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한 사람이 의미 있고 평온하게 삶을 완성하고 죽음을 맞을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 사회의 교육이, 의료가, 돌봄이 어떠해야 할지 바닥부터 찬찬히 들여다보는 시간이 절실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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