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와 손자가 함께, 일본 '임업'의 가치
[김성호 기자]
▲ 영화 <우드잡> 포스터 |
ⓒ (주)엔케이컨텐츠 |
임업은 특별한 산업이다. 어제 만들어 오늘 팔고 내일 다시 새로 만드는 일이 흔한 다른 산업군과 달리, 임업은 상당한 시차를 두고 산업을 꾸려가게 마련이다. 투자와 생산부터 판매를 통해 수익창출에 이르는 한 순환을 가리켜 학계에선 소득순환구조라 부른다.
이에 따르면 제조업은 며칠부터 몇 달, 농업은 수개월에서 1년까지가 필요한 게 보통이다. 비교적 순환주기가 긴 축산업은 수년까지 필요한 경우도 있는데 종 개량 및 호르몬 주사 등을 놓는 방법으로 비육에 필요한 시간을 크게 단축하는 것도 가능하다.
임업은 순환주기의 측면에서 위 산업들과 근본적으로 구분된다. 파종하고, 묘목을 심어 나무가 목재로 쓸 수 있을 만큼 자라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들기 때문이다. 아주 짧게는 5년, 길게는 100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기다려서야 나무가 목재로 태어나게 된다. 생산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나무를 심고 숲을 가꾸는 일은 제가 팔 목재를 위해서가 아닐 때도 많다. 말하자면 임업은 전 세대에게 받은 것을 잘라 팔고, 이후 세대에게 줄 것을 심고 가꾸는 일이 되겠다.
임업을 주인공으로 삼은 영화
<우드잡>은 임업에 대한 영화다. 가히 임업이라는 산업이 그 주인공이 되었다 해도 좋을 만큼 이례적 조명을 받는다. 임업은 그 특성상 도시로부터 소외된 산간벽지에서 이뤄지고 젊은이들에게 각광받는 직업도 아니어서 매체가 주목하는 경우가 흔치는 않다.
그러나 명성 높은 감독 야구치 시노부가 임업을 배경으로 한 편의 경쾌한 작품을 찍어내니 임업이라는 가깝지만 낯선 산업의 진가를 대중에 알리게 된 것이다. 특히 건설부터 가구, 소소한 소비재에 이르기까지 임업을 통해 생산된 나무제품의 활용률이 높은 일본이 임업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한눈에 내보이는 작품이다.
▲ 영화 <우드잡> 스틸컷 |
ⓒ (주)엔케이컨텐츠 |
삼나무를 가꾸고 베어 파는 일
휴대전화 전파도 잡히지 않는 오지에서 산림관리 연수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처음엔 전단에 나온 어여쁜 여자가 있을 걸 기대했으나 역시나 고되고 험한 일은 남성들 몫일 밖에 없다. 연수생도 전부 남성으로, 히라노는 첫날부터 프로그램에 지원한 걸 후회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쉽게 떠날 수도 없는 노릇, 우여곡절 끝에 연수를 마치니 이제는 실습시간이 닥쳐오기에 이른다.
실습은 연수를 한 곳에서 한참을 더 들어가야 하는 오지 가무사리 마을에서 진행된다. 1년 간의 실습을 마쳐야 벌목꾼으로의 자격이 주어지는 가운데, 히라노는 산전수전 다 겪은 벌목꾼 이다 요키(이토 히데아키 분)의 집에서 식객으로 지내며 실습을 하기에 이른다. 위로 수십 미터는 족히 뻗어있는 높은 삼나무에 올라 그 씨를 채취하고, 또 종일 산 곳곳을 나다니며 묘목을 심는 일이 모두 그의 몫이 된다. 나무를 베는 일 또한 여간 위험한 것이 아니어서 히라노는 잔뜩 긴장한 채로 하루하루의 고된 업무에 몰두할 밖에 없다.
▲ 영화 <우드잡> 스틸컷 |
ⓒ (주)엔케이컨텐츠 |
관객에게 임업의 가치를 알게끔 한다
영화엔 이 외진 마을을 아끼는 이들이 여럿 등장한다. 이시이만이 아니라 이다와 같은 벌목꾼들 또한 이 마을과 임업에 남다른 애정을 보인다. 도시에서 온 이들이 임업을 외진 마을에서 해야 하는 투박하기만 한 일처럼 여기는데 반해, 이 일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며 온 열정을 다하는 사람들이다. 도시와 산골의 격차만큼이나 임업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극명하게 엇갈리는 가운데, 히라노는 조금씩 임업의 의미와 그 중요성을 이해해 간다.
영화는 관객 일반과 얼마 다르지 않은 히라노가 임업이라는 특수한 산업을 이해하기까지의 과정이다. 100년을 기른 삼나무를 잘라 시장에 내어놓는 게 이 마을의 벌목꾼들이다. 그들은 마을의 공동 자산인 산에서 나무를 심고 키운 뒤 잘라서 파는데, 할아버지가 늙어 심은 것을 젊은 손자가 베어야 할 만큼 긴 시간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이들은 나무를 베는 일보다도 산과 나무를 가꾸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으니, 하나의 산업을 가꾸는 데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한지를 알도록 한다.
▲ 영화 <우드잡> 스틸컷 |
ⓒ (주)엔케이컨텐츠 |
백 년을 두고 기르는 산업의 힘
필요한 목재는 거의 수입을 통해 구하고, 우리 숲에서 우리 나무로 무엇을 만들 생각을 잘하지 못하는 것이다. 국토의 70% 이상이 산지인 상황에서 숲을 제대로 활용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 시기가 길었으니 임업을 기간으로 한 지역 산업이나 문화가 태동할 수도 없었다.
반면 일본의 숲 가운데선 수백 년을 이어온 임업 현장이 적지 않단 점이 인상적이다. 백 년의 시차를 두고 할아버지와 손자가 서로를 바라보며 함께 일을 해내가는 지속성이 순환주기가 짧은 산업에 익숙한 눈에는 낯설게만 보인다. 야구치 시노부가 영화에서 의도한 것이 바로 이 게 아니었을까 한다. 도시에서의 안온한 삶을 살면서는 좀처럼 얻지 못할 시야와 감상을 갖도록 하는 것, 그로부터 외면되고 사라지기엔 아까운 문화를 드러내는 것 말이다.
나무를 키우고 관리하며 잘라 팔기까지 누가 어떤 마음으로 무슨 노력을 하는가를 영화는 관객 앞에 내보인다. 그 끝에서 관객은 나무를 전처럼 쉽고 편하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만 생각하지 않게 된다. 100년의 시간을 두고 숲을 관리하는 <우드잡> 속 벌목꾼들의 모습을 보다 보면, 그만큼 큰 견지에서 나라와 가정, 삶을 꾸려가지 못하고 있는 오늘의 우리 모습을 반성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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