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이냐 주주냐…상장 보험사 13조 해약환급준비금 '딜레마'

올해 새 회계기준 시행되며 도입
가입자에겐 새로운 안전망이지만
배당 축소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상장사 배당 이미지. ⓒ연합뉴스

국내 주식시장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보험사들이 가입자의 계약 해지에 대비해 쌓아두고 있는 준비금이 13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객들로서는 환급금을 떼일 염려가 적어 안전하다는 의미지만, 주주로서는 배당받을 몫이 쪼그라들 수 있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시선이 엇갈린다.

보험사의 실적이 눈에 띄게 개선되면서 배당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는 가운데, 새 국제회계기준(IFRS17)에 따라 해약환급준비금에 소홀할 수 없는 업계의 입장이 맞부딪히면서 딜레마가 될 것으로 보인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3분기 말 기준 국내 10개 상장 보험사의 해약환급준비금 잔액은 총 12조7873억원이다. 해약환급금준비금은 올해부터 IFRS17이 시행되며 새로 마련된 회계 항목이다. IFRS17로 보험부채를 시가 평가하게 되면서 부채가 줄고, 이로 인해 해약환급금이 부족해질 가능성에 대비해 도입됐다.

보험사별로 보면 상장사들 중 현대해상의 해약환급금준비금이 4조3916억원으로 최대였다. 이어 한화생명(2조8396억원)과 DB손해보험(2조1076억원), 한화손해보험(1조5704억원)의 해당 금액이 조 단위를 기록했다.

나머지 상장 보험사들의 해약환급금준비금은 ▲동양생명 6063억원 ▲삼성화재 2591억원 ▲흥국화재 1021억원 ▲롯데손해보험 656억원 순이었다. 삼성생명은 해약환급금준비금을 적립하지 않고 있다.

상장 보험사 해약환급금준비금 현황. ⓒ데일리안 부광우 기자

금융당국은 IFRS17에 따라 감소된 보험사 부채가 자본 내 이익잉여금으로 전환되고, 이 과정에서 주주 배당 가능 이익이 증가해 제한 없이 사외로 유출될 우려가 있어 해약환급금준비금을 신설했다고 설명한다. 해약환급금준비금을 주주 배당 가능 이익에서 제외, 해약환급금 부족액의 사외 유출을 방지할 수 있을 것으로 금융당국은 기대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구조 상 해약환급금준비금이 확대될수록 주주에게 나눠줄 수 있는 배당 가능 이익은 축소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해약환급금준비금은 자본의 이익잉여금 내 항목으로 책정되지만, 회사가 임의로 사용할 수 없는 법정준비금이다. 이익잉여금이 비슷하더라도 그 안에 해약환급금준비금으로 잡혀 있는 액수에 따라 배당 여력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보험사들의 이익이 크게 늘어나면서 쏠쏠한 배당을 예상했던 주주들에게 이런 측면은 아쉬운 대목일 수밖에 없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1~3분기 보험사들의 당기순이익은 총 11조422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7.2% 증가했다. 손보사는 7조232억원으로, 생보사는 4조3993억원으로 각각 45.8%와 49.4%씩 당기순이익이 늘었다.

금융권 관계자는 "해약환급금준비금은 구조적으로 배당 가능 재원을 위축시키는 원인이 될 수 있는 만큼, IFRS17가 적용된 올해부터는 보험사의 배당을 가늠할 때 추가적으로 따져봐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다만 "해약환급금준비금이 전체 배당 규모를 판가름할 단일 요인이 아니고, 금융 리스크에 대한 대비 차원에서 과도한 배당을 자제하라는 당국의 주문 등 다양한 외부 요소들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