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시스템 손질…중복 투자 줄이고 관리 방점
투자 시스템 손질
중복 투자 줄이고 관리 방점
재계는 이번 인사가 인수합병(M&A)을 기반으로 성장한 SK그룹의 외연 확장·관리(Boundary Spanning) 전략을 재점검하라는 최태원 회장의 뜻이 담겨 있다고 본다.
SK그룹은 1980년 대한석유공사(현 SK이노베이션), 1994년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에 이어 2012년 SK하이닉스까지 3대 ‘인수합병’으로 재계 2위에 올랐다. 최근 SK그룹 안팎에서 입길에 오른 M&A·지분 투자 건은 대부분 해외 기업이다.
SK하이닉스가 인텔로부터 인수한 중국 다롄 공장과 미국 솔리다임은 그룹 전체 유동성에 압박을 주고 있다. 베트남과 미국에 투자한 기업의 지분 가치도 크게 하락하고 있다. 국내를 넘어 해외까지 다각화(Diversification)하며 외연 확장·관리를 숨 가쁘게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상 신호를 면밀히 감지하는 역량이 부재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드세던 배경이다.
이에 따라 최창원 부회장은 SK그룹 전체 투자 시스템을 정상화시키는 한편 중복 투자 조율, 자원 재정비 등의 역할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최창원 부회장은 보수적이고 신중한 성품의 경영자로 알려진다. 그는 독자 경영 행보에 나선 이후 기존 주력 사업과 신사업 간 차별적인 조직 관리에 능수능란했다는 평가다.
투자형 지주사 중심 파이낸셜 스토리 또한 숨 고르기에 돌입한다. SK그룹은 지주사 역할 고도화, 다변화에 앞장서며 성장동력 발굴을 위한 투자를 늘려왔다. 하지만 고금리 장기화로 투자금 회수에 실패하는 등 부작용이 속출했다.
SK하이닉스는 2021년 인텔에서 약 11조원을 주고 인수한 낸드사업부(솔리다임)가 골칫거리다. SK하이닉스 자회사인 미국 솔리다임은 지난해만 3조원 넘는 순손실을 기록했다. 2025년까지 잔금 20억달러도 치러야 한다. 과점 구조의 D램 시장과 달리, 낸드 시장은 다수 사업자로 파편화돼 있어 공급 감축을 통한 가격 조절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다. 낸드 시장은 업황 회복 시기를 가늠하기조차 힘든 분위기가 지속되고 있다. SK㈜·SK E&S가 최대주주로 있는 수소 연료전지 기업 플러그파워는 2021년 투자 당시 주당 29.99달러였으나 최근 실적 부진에 따른 유동성 위기로 주당 3.99달러로 곤두박질쳤다.
SK스퀘어는 이커머스 업체 11번가 상장이 무기한 연기된 데다 이사회에서 11번가 콜옵션(미리 정한 가격에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을 포기하자 거센 역풍을 맞고 있다. 당시 계약에는 ‘드래그앤콜’ 조항이 포함돼 있었다.
즉, SK스퀘어의 경우 지난 9월까지 기업공개(IPO)를 완료하지 못하면 컨소시엄이 SK의 지분까지 강제 매각(드래그얼롱·Drag Along)할 수 있게 하되, 그 전에 SK가 지분을 되살 수 있는 권한(콜옵션)을 부여했다. SK스퀘어는 배임 논리를 앞세워 콜옵션 포기 논리를 정당화하려 하지만 시장 반응은 싸늘하다. 이번 사태로 드래그앤콜 조항이 무력화될 것이라는 냉소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이에 따라, SK그룹은 이번 정기 인사와 함께 기존 조대식 의장이 총괄하던 수펙스 내 투자1·2팀을 SK㈜ 산하 4개 투자센터와 합쳐 SK㈜로 통폐합·축소한다. 계열사 간 중복 투자를 대폭 줄이고 신규 투자보단 관리, 회수로 전략의 무게 중심이 옮겨질 전망이다.
SK온 수율 책임질 듯
이번 인사에서 가장 의외로 평가받는 대목은 이석희 사장의 귀환이다. 재계 관계자는 “이석희 사장이 다시 귀환했다는 건 그를 불러들일 수밖에 없었던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 촌평했다.
재계에서는 이석희 사장이 SK온의 수율(收率·정상품 비율) 관리를 책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석희 사장은 SK하이닉스의 고질적인 약점으로 꼽혔던 D램 미세 공정 기술 발전과 수율 안정화에서 성과를 냈다는 평가를 받던 인물이다. 그만큼 SK온에서는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이슈가 수율이다. 2차전지처럼 기술력이 원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특수 산업에서는 수율이 곧 제조원가다. 증자와 차입금 등으로 조 단위 레버리지를 일으킨 상황에서 수율마저 적정 범위에서 관리되지 않을 경우 손익 관리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SK온은 포드와 세운 미국 합작 공장의 수율 관리에도 각별한 노력을 쏟는다.
최재원 수석부회장과 이석희 사장은 SK온 현금창출능력을 확대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SK온은 국내 배터리 3사 중 연결 기준 영업손익과 순손익 모두 적자를 기록한 유일한 기업이다. SK온은 올 상반기 4762억원 영업손실을 낸 데 이어 3분기에도 860억원 적자를 냈다. 올 3분기 누적 순손실은 6010억원이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른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 규모 확대로 두 분기 연속 적자 규모를 줄였지만, 영업 활동으로 벌어들이는 현금은 거의 없다.
이런 가운데 올 들어 SK온은 국내 2차전지 셀 메이커 가운데 가장 공격적으로 자금을 끌어왔다. SK온은 올 상반기에만 8조원 넘는 자금을 조달하면서 투자자에게 연 7.5%의 수익률(IRR·한투PE)을 보장해야 하며 가까운 시기에 IPO까지 성사시켜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물론 영업 활동에 따른 현금 유입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당장 전기차 시장 설비 투자(CAPEX)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외부 자금 조달이 불가피했던 측면이 있다.
그러나 전기차 시황이 급변하면서 공격적인 자금 조달은 재무 구조에 부메랑으로 돌변했다. SK온이 결과적으로 내년 전기차 시황을 오판한 것 아니냐는 뒷말도 따랐다. 그룹 계열사 SK스퀘어가 11번가 콜옵션을 포기하면서 시장에서 ‘드래그앤콜’ 조항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한 것도 부담스럽다. SK온 역시 한투PE 측과 ‘드래그얼롱+콜옵션’ 조합으로 구조를 짰다. 금융권 관계자는 “SK온은 영업 활동으로 벌어들이는 현금흐름이 전무한 상태에서 대규모 투자가 진행됐던 터라 재무 관리의 필요성이 더욱 중요한 시점”이라고 귀띔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38호 (2023.12.13~2023.12.1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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