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에 다시 오면 먹고 싶은 음식 [세계여행 식탁일기]
여행지에서의 한 끼 식사를 기록해 보려고 합니다. 음식 한 접시는 현지인의 환경과 삶의 압축판이요, 정체성이라 여기기 때문입니다. 매일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음식을 먹는 즐거움을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기자말>
[김상희 기자]
여행은 설렘이다. 한편 여행은 긴장이다. 설렘이 긴장을 이기면 여행이 즐겁다. 불행히도 긴장이 설렘을 초과하는 경우도 있었다. 브라질의 초거대도시 상파울루(São Paulo)에 첫 발을 디뎠을 때가 딱 그랬다.
▲ 브라질에서 본 이과수 폭포 |
ⓒ 김상희 |
아르헨티나에서 브라질 이과수로 넘어와 폭포 관광을 할 때만 해도 '국적 불문 인종 불문'의 관광객 속에 익명의 관광객으로만 있으면 됐다. 이과수에서 상파울루로 오니 덩치 큰 낯선 거인 앞에 선 어린아이처럼 위축되었다.
▲ 브라질을 넘어, 남미 최대 도시인 상파울루 시내 |
ⓒ 김상희 |
상파울루 공항에서 버스와 전철을 교대로 타고 리퍼블리카역 출구로 막 나왔을 때였다. 어디선가 고소한 기름 냄새가 났다. 늘 그렇듯 맛있는 냄새는 여행자를 무장해제시킨다. 공원 한편 노점에서 기름에 뭔가를 튀기고 있었다. 제 4의 맛이라는 기름 맛의 유혹에 넘어가주기로 했다.
▲ 파스테우 사우가두(Pastel Salgdado) |
ⓒ 김상희 |
길거리 음식 하나 사 먹었을 뿐인데 상파울루란 도시가 조금 편해졌다. 숙소에 체크인도 성공적으로 했고 식재료도 몇 가지 샀다. 저녁은 '페이조아다(Feijoada)'를 먹으러 갔다. 사진과 음식 이름만으로 무슨 맛일지 무슨 재료일지 가늠되지 않아 궁금했던 요리였다. 접시에 국물이 잘박한 고기 요리가 밥과 함께 나왔다. 고기에는 팥처럼 보이는 검붉은 콩이 섞여 있었다.
▲ 파라티(Paraty)의 로컬 식당에서 먹었던 페이조아다 |
ⓒ 김상희 |
'페이조아다'란 이름 자체가 '콩 요리, 콩으로 만들었다'는 뜻을 갖고 있다고 한다. 내가 먹은 페이조아다는 콩과 돼지갈비를 넣어 같이 끓인 스튜 요리였다. 옛날 흑인 노예들이 주인이 먹지 않는 고기의 특수 부위나 부산물을 콩과 함께 끓여 먹던 데서 유래한 음식이라고 한다. 요즘은 쇠고기를 쓰기도 하고 돼지고기 중 특별히 맛있는 부위를 콩과 함께 뭉근히 오래 끓여 만들고 주말 특별 가정요리로 먹는다고 한다.
상파울루를 거쳐 파라티(Paraty)와 리우데자네이로(Rio de Janeiro)까지 보름을 여행했다. 막연히 축구의 나라, 커피의 나라로 알았던 브라질은 인구 2억이 넘고 제조업과 서비스업 중심의 내수경제가 탄탄한 경제대국이라고 한다. 건물과 도로, 버스와 지하철 등 각종 인프라도 현대도시다웠고 국민소득도 높다고 한다.
신용카드 결제가 어찌나 잘 되는지 현금 쓸 일이 거의 없었다. 길거리 과일 노점상도 카드 리더기를 갖다 놓고 장사하고 있었다. 베를린보다 파리보다 카드 결제가 잘 되었다. 리우데자네이로 지하철은 한국에서 만든 언택트 체크카드로 찍고 탔다. 지구 반대편 도시의 지하철 인식기에서 내 카드가 작동한다는 게 신기했다.
한편 길거리에는 노숙자와 남루한 차림의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이 구걸을 하거나 길가는 사람을 위협하지 않았고 그 사람들 때문에 직접적으로 위험하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그러나 여행자로서 다분히 신경이 쓰였다. 고급 상점과 세련된 쇼핑몰, 초고층 빌딩과 잘 가꿔진 도심 공원 이면에 '빈부격차'라는 어두운 그늘을 갖고 있었다.
나는 여행지를 떠날 때마다 다음에 다시 온다면 이 나라의 어떤 음식을 맨 처음으로 먹게 될까를 떠올려보곤 한다. 멕시코가 타코, 페루가 세비체라면 브라질에 다시 온다면 브라질식 가정식 백반, 페이조아다를 먹고 싶다. 그리고 노숙자가 사라진 상파울루를 걸어보고 싶다. 과거 두 차례의 재임기 동안 빈부격차 해소에 공이 컸던 룰라 대통령이 다시 3선 대통령이 되었다고 하니 그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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