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전시]한진섭 개인전·마크 브뤼스:구름 속에 살다 外

김희윤 2023. 12. 18.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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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 이주의 전시는 전국 각지의 전시 중 한 주간 만나볼 수 있는 다양하고 매력적인 전시를 정리해 소개합니다.

▲한진섭 개인전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바티칸에 서다(S. Andreas Kim TaeGon, unveiled at the Vatican) = 가나아트는 조각가 한진섭의 개인전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바티칸에 서다'를 전관에서 개최한다. 한진섭은 한국 작가 최초로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 성(聖)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조각상을 세우며 작가로서 특별한 성과를 기록했다. 약 10년 만에 개최하는 이번 개인전에서 작가는 그 일련의 과정을 상세히 소개하며, 나아가 그가 추구하는 예술 세계를 조명하고자 한다.

김대건 신부님, 2023, Bianco Carrara, 27 x 19 x 58 (h)cm [사진제공 = 가나아트]

반세기 동안 돌이라는 하나의 물성에 천착해 온 작가 작품의 맥을 관통하는 궁극적인 주제는 ‘삶’이다. 작업 초기에는 구상을 바탕으로 한 인체 중심의 조각을 선보였으나 2007년 해태제과의 의뢰를 받아 해태상을 제작한 것을 계기로 동물상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이후 십이지(十二支)를 주제로 동물상을 만드는 등 동물을 의인화한 조각을 제작했다. 2010년대에 들어서며 특수 재질로 만든 모형에 조각낸 돌을 모자이크처럼 붙여서 만드는 붙이는 석조(石彫) 시리즈를 제작하며 작업의 영역을 확장해왔다. 딱딱하고 차가운 돌 속에서 형상을 꺼내고, 생명을 불어넣어 재창조하는 한진섭은 한국 조각의 전통적인 재료와 작업 방식, 서구 조각의 현대성과 조화를 추구하며 조형 세계를 구축해왔다.

전시는 지난 9월,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 설치된 김대건 신부 성상 제작 및 설치 과정을 보여주며 한진섭이 독자적으로 구축해온 그의 예술 세계를 반추해보는 자리가 될 것이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위해 바티칸에 설치된 것과 동일한 형태의 김대건 신부상을 60cm 크기로 한 번 더 제작했다. 작업은 큰 성상과 함께 이탈리아에서 시작했으나, 결국 한국에서 최근까지 작업하여 완성했다. 작은 크기지만 큰 성상 제작 못지않게 공이 많이 들었다. 작가는 “오히려 이 작업이 더 어려웠다. 같은 것을 두 번 하니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라며 “이 작업을 마무리하면서, 바티칸의 김대건 신부상이 내 힘으로 이뤄낸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성령의 도움이 있어서 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한진섭 조각가가 지난 14일 서울 종로구 가나아트센터에서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에 설치된 김대건 신부 조각상 제작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작가는 김대건 신부 성상 제작 작업을 맡기 전 하우현성당에 한덕운 토마스 복자상, 버드내 성당에 정하상 바오로 성상 그리고 대전교구청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상을 제작했다. 세 성상 모두 한국의 전통 의상인 갓을 쓰고 도포를 입고 있다. 이는 기존 작업에서는 볼 수 없었던 정교한 사실 조각으로 그의 작업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그가 천주교 신자이면서, 돌 조각을 오래 해왔고, 이탈리아에서 10년 동안 유학을 한 경험이 있으며, 또 이탈리아 현지에서 작업이 가능한 작가였기 때문에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 설치되는 김대건 신부 성상 제작을 맡을 수 있었다. 이러한 과정을 두고 작가는 “어쩌면 제게 일어났던 일들이 결국 바티칸의 베드로 대성당에 김대건 신부상을 세우기 위한 훈련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모든 것이 다 신의 계획이 아니었을까”라고 회고한다. 전시는 2024년 1월 14일까지,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마크 브뤼스 '구름 속에 살다' = 갤러리 508은 마크 브뤼스의 평면작업을 소개하는 국내 첫 전시 '구름 속에 살다'를 진행한다. 1998년 부여조각심포지엄 참가 이후 25년 만에 다시 찾은 한국에서의 이번 전시는 작가의 최근 평면작업을 선보이는 첫 전시다.

마크 브뤼스 '구름 속에 살다' [사진제공 = 갤러리 508]

조각가이자 화가이며 설치미술가인 마크 브뤼스는 작품의 일시성과 이벤트성에 관심을 갖고 1960년대 누보레알리즘 운동의 중심작가로 활동해왔다. 동양을 사랑하고 많은 관심을 갖고 있어 한국과 일본에 체류한 경험이 있으며 전 세계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면서 이를 아상블라주, 콜라주, 세라믹, 회화 등 다양한 형태의 창작을 통해 서로 다른 문화적 체험을 작업으로 승화시켜왔다.

작가는 1937년 네덜란드의 소도시 알크마르에서 태어났다. 네덜란드 아른험 미술학교에서 공부한 후 파리로 건너가 나무로 된 오브제 작업을 시작으로 파리에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평론가 피에르 레스타니가 이끄는 프랑스 아방가르드 미술운동 누보 레알리즘에 합류하면서 제2회 파리 비엔날레에 참가하며 활발한 작가 생활을 이어갔다.

멕시코와 미국을 여행한 뒤에는 당시 전위 예술운동 플럭서스(Fluxus) 그룹과 활동했고, 거리에서 행위예술을 하면서 전위음악가인 존 케이지와 협업을 하기도 했다. 1970년대에는 환경예술에 심취하여 버려진 오브제로 아상블라주 작업에 몰두하였다. 1980년대에 이르러 회화작업에 눈을 뜨면서 감성적 색감의 다양한 평면작업을 병행하며 화가로서의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공원 대형조형물 설치작업을 위해 6개월간 서울에서 생활하며 한국문화를 경험했다. 그의 평면작업은 프랑스 화장품회사 겔랑재단이 대거 소장, 파리 퐁피두센터 국립미술관에 기증하면서 본격적으로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이번 전시는 물 먹인 캔버스에 마른 파스텔을 사용한, 색의 번짐 효과를 극대화하여 고대 벽화에서 우러나오는 템페라 기법을 응용한 평면 작업이 특징이다. 동화 속 이미지 같은 몽환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그의 회화는 폐기물을 합성하여 만들어내는 아방가르드 오브제 조각 작업과는 사뭇 다른 작가의 감성적 평면작업을 선사한다.

숨은 성운을 향한 릴레이 인사, 2023, 염료, 리오셀, 실크사, 145.5 × 112.1cm [사진제공 = 갤러리조선]

▲신현정 개인전 '림파 림파!' = 갤러리 조선은 독자적 회화 언어를 구축해온 신현정 작가의 개인전 '림파 림파!'를 통해 염색 천들이 변형되고 재조합한 다양한 작품을 선보인다.

전시는 가늘고 미미하지만 힘차게 생명을 이어가는 투명한 림프처럼, 물질과 신체 사이를 유연하게 헤엄쳐 나가는 작가의 회화 표피들이 연주하는 색의 향연이다. 회화의 구성요소로서 표면과 지지대를 해체하고 확장하는 자신만의 회화 언어를 쌓아온 작가는 특히 명상과 요가 수행을 통해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몸과 마음, 자연과 인공, 대상과 주체와 같은 이원론적 세계를 통합하는 내면의 집중에 몰입해왔다.

작가는 여전히 예측 불가능한 외부 환경에 노출된 인간의 한계 앞에서 자신을 내려놓고 변화를 허용하는 확장된 주체로서 회화를 모색한다. 전시는 ‘고정됨’없이 끊임없이 흐르고 변화하는 물의 생명력을 매개로 상호작용하는 물질의 결합과 충돌을 '림파 림파!'라는 리드미컬한 구호에 담아낸다. 림파(Lympha)는 물을 의미하는 라틴어로 우리 몸의 길을 촘촘하게 연결하는 림프(Lymph)의 어원이다.

저항 끝에 다다르는 투명함, 2022, 아크릴, 염료, 탈색된 면, 실크, 레이온, 치자, 먹, 멀베리, 블루베리, 깃대, 가변크기 [사진제공 = 갤러리조선]

물질과 비물질, 인간과 비인간, 생명체와 비생명체, 자연과 비자연을 구분 짓는 이분법적 경계들은 사실 그들 각자가 처한 조건의 ‘취약함’ 앞에 비로소 평등하다. 작가는 이러한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문제를 마주하고 포용하는 서로 다른 객체로서 회화의 표면을 제안한다. 이는 예술의 견고함에 종속된 회화의 권위를 내려놓고 세상과 소통하고 상호 관계 속에 호흡하는 회화로서 그 자체의 전율을 위한 성과다. 생활 속에 쉽게 접할 수 있는 멀베리(뽕나무잎), 아크릴, 락스(탈색 작용)와 같은 염료가 물과 만나며 생성되는 무늬와 흔적들을 세심하게 관찰하여 표면으로 옮겨온 작가는 이들이 몸에 침투하여 세포와 반응하고 변형되어 다시 배출되는 현상에서 착안해, 염료들이 물을 만나 자기의 습성대로 천 위에 창발할 수 있도록 사용자로서 손을 내려놓는다.

이를 ‘내맡김의 시간’ 이라고 명명한 작가는 주체를 내려놓고 물질들이 스스로 작동하고 상호 관계하며 조직화하도록 기다리는 객체 지향적 태도를 견지한다. 그는 또한 우리가 입고 벗는 리넨, 실크, 텐실과 같은 다양한 천을 염색하고 스테인리스 스틸 지지대에 걸쳐 놓으면서, 회화를 일상의 공간 안으로 연결한다. 창작 활동의 주체로서 신체와 객체로서 태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작가는 자연과 인공, 인간과 물질, 예술과 일상이 공생하는 포용하는(inclusive) 회화, 그리고 더 나아가 추상회화가 세상과 만나는 지점의 ‘다다름’을 고민하는 사유하는(thinking) 회화로 확장해 나간다. 전시는 23일부터 2024년 1월 17일까지, 서울 종로구 소격동 갤러리조선.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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