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인터뷰]"홍콩ELS, 등 떠밀렸다면 '투자'가 아냐…모르면 내 돈 넣지 말아야"
"금리 높은 상품이라면 '합리적 의심'부터 해야"
"원금 전액 보상해라." 지난 15일 금융감독원 앞에서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투자자들이 첫 집회를 열면서 외친 구호다. 집회장 곳곳에서 머리가 하얗게 센 고령자들이 눈에 띄었다. 이날 H지수는 5700.39로 마감했다. H지수는 2021년 2월, 1만2228.63 꼭짓점을 찍고 3년 내내 떨어졌다. 이젠 정점의 46%로 추락했다.
H지수가 급격한 반등세를 못 탄다면 내년 1월부터 투자자들은 원금 손실을 보게 된다. 상품에 처음 가입했던 3년 전과 비교해 H지수가 떨어진 비율만큼 손해가 난다. 내년 상반기(1~6월)에 만기 금액만 9조2000억원이다. 이중 절반만 손실로 잡아도 4조원이 날아간다.
"나는 몰랐다." 투자자들 주장의 핵심은 이거다. 자주 가던 은행 지점 직원이 권유해서 뭔지도 모르고 가입했다는 게 그들의 말이다. 이복현 금감원장이 '70대 투자자' 예를 들며 고령층이 도마에 올랐다. 주요 은행들의 H지수 ELS 전체 판매액 중 거의 절반이 60대 이상의 몫이었다.
이런 의문이 뒤따른다. 손실 책임은 고령층에게 ELS를 판매한 은행이 온전히 져야 하나. 고령층을 완전무결한 피해자라고 볼 수 있을까.
12년 동안 은퇴자들의 금융 생활을 분석하고 교육해 온 김진웅 100세 시대 연구소장에 물음을 던졌다. 연구소는 NH투자증권에 소속돼있다.
- 이렇게 대규모 손실이 우려되는 사태가 왜 생겼나.
▲증권사에 가는 사람과 은행에 가는 사람은 다르다. 증권사는 원래 리스크 테이킹(Risk taking)을 하는 사람들이 간다. 위험한 게 싫은 사람들은 은행 거래를 많이 한다. 은행 고객이 증권사보다 10배 이상 많다. 은행이 움직였으니 영업도 적극적으로 이뤄졌다. 은행에서 ELS를 파니까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무슨 상품인지도 모르고 가입한 고객들이 실제로 꽤 많을 거란 얘기다.
증권사와 거래해 본 고객은 'ELS를 은행도 파는구나'라고 생각했을 거다. 반면 투자 경험 없는 고객은 은행이 파는 특판상품 정도로 이해했을 수 있다. 그러다가 '3년 안에 H지수가 50% 하락할 경우'라는, 확률적으로 굉장히 낮은 조건이 현실로 나타났다. 상품을 다루는 금융기관(은행)과 상품(ELS) 간 모순이 생기면서 이런 사태가 터진 거다.
-고령층이 부각되는 이유는 뭔가.
▲젊은 사람들은 집 사고 아이 키우느라 여윳돈이 없다. 가계금융복지조사를 보면 우리나라 순 자산규모 상위 1% 평균 나이가 63세다. 이런 사람들이 파생상품에 투자한다. ELS처럼 원금손실 발생지점이 있고 조건이 붙는' 구조화'된 상품이 어려운 건 사실이다. 그래도 60대면 인지능력이 젊은 층과 비교해 뒤떨어지지 않는다. 다양한 투자 경험이 있고 ELS 성격을 잘 누구보다 잘 아는 고령층도 많다. 그 정도 자본력을 가진 분들이 나는 몰랐다고 하는 건 앞뒤가 안 맞다. 물론 자산 제약이 있고 투자 경험이 없는 고령 투자자도 있을 거다. 각자 경우가 다를 텐데, 고령층에게 ELS 추천한 은행이 무조건 잘못한 거다? 이건 냉정하게 봐야 한다.
-'고령자=피해자'라는 프레임에 대한 생각은.
▲대부분 투자자는 "이게 다 은행 직원 때문"이라고 할 거다. 자기 책임 회피다. 물론 은행 책임이 없다는 게 아니다. 실적 올리려고, 인사고과 때문에 공격적으로 팔기도 했을 거다. 그럼에도 투자의 출발점은 내 의사 결정이어야 한다. 금융상품에 돈을 넣을 때는 '아무도 나를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자세로 접근해야 한다. 안 그러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 "이거 쟤가 하라고 해서 믿고 했더니 망했어." 지금 투자자들은 이런 식이다. 그건 투자가 아니다. 남이 해준 결정으로 출발하는 건 정상적인 자산 관리와 거리가 멀다.
투자할 때 가장 중요한 건 '합리적 의심'이다. 예를 들어 정기예금 금리보다 ELS 금리가 3%포인트 더 높다면 의심해야 한다. 어딘가 위험하니까 이자를 더 주는 거다. 그런데 투자자들은 그런 위험은 무시하고 금리에만 꽂힌다. 은행에서 안전하게 굴리고 싶다고 하면서 수익성을 보고 판단한다. 이런 행태가 이번 사태의 또 다른 원인이다.
-그렇다면 고령층은 자산을 어떻게 굴려야 하나.
▲은퇴하고 나면 현금 흐름이 끊긴다. 그때부턴 수십 년 동안 쌓아온 국민연금이나 퇴직연금, 개인연금으로 생활한다. 이게 한 축이다. 다른 한 축은 욕망과 관련된 돈이다. 더 좋은 집으로 이사하고, 더 좋은 차로 바꾸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 이런 욕망을 충족하는 데 쓸 돈은 딱 정해놓고 투자해야 한다. 수익이 날 때마다 하고 싶은 걸 하면 된다. 실패해도 일상생활에 부담을 안 주는 선까지가 투자 금액이다. 워런 버핏도 시행착오를 겪는다. 경험을 쌓으면서 배워나가야 한다.
하지만 '시간에 쫓기는 돈'은 투자하면 안 된다. "이 돈이 없으면 노후 생활이 불가능하다." 그런 돈을 ELS에 넣는 건 큰일 날 일이다. 아무리 은행 직원이 조기상환 받을 수 있다고 해도 세상에 100%란 것은 없다.
'크로스 체크(cross-check)' 하는 것도 방법이다. 임플란트할 때도 치과 세 군데는 가보라고 하지 않나. 은행에서 복잡한 금융상품을 추천받으면 증권사에도 물어봐라. 요즘엔 증권사 접근성이 좋아졌다. 적은 돈으로도 거래를 많이 튼다. 증권사 지점이 근처에 없다면 전화로라도 물어보고 참고해라.
-아예 은행의 ELS 판매를 막자는 의견도 나온다.
▲내가 잘 아는 곳에 투자해야 한다. 그래야 실패 확률을 줄일 수 있다. 잘 모르겠다면 일단 최소한의 금액만 넣자. 공부한다는 생각으로 해보면 된다. 십수 년 전에도 은행에서 ELS를 팔았다. 지금 손해 보게 생겼으니까 팔지 말자고 하는 거지, 그동안 번 사람들도 많다. 정기예금만 드는 것보다 투자 상품을 이용해야 수익률이 더 높아진다. 다만 그걸 잘 알고, 제대로 이용을 해야 한다.
우리나라 고령층은 부동산 위주로 자산 형성을 해왔다. 상대적으로 금융 분야를 잘 모른다. 자신의 돈이 걸린 일인데 관심과 노력을 크게 안 쏟는다. 남이 "여기가 좋대"라고 하면 시장이 뜨기 시작한다. 정점에 갔을 때 우르르 쏠린다. 내 돈이 걸린 판단을 남에게 맡겨선 투자로 돈 벌기 힘들다. 지금 이 사실을 집단적으로 학습하고 있는 과정인데, 학습비가 너무 비싸다.
심나영 기자 sn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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