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한 대외경제, 용단(勇斷)이 필요하다 [기자수첩-정책경제]
기재부, 재정 정책 유연성 확보 필요성
재정준칙 입법 ·FDI 등 금융 안정 장치
얼마 전 한 대학교수와 저녁 자리를 가졌다. 그는 최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발표가 국내 경제에 도움이 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역사적으로 볼 때 급격한 미국 금리 인상 후, 내리막길을 걷는 변곡점에는 큰 변화가 뒤따랐다는 견해다.
실제 90년대 중반 국제 금리가 곤두박질치자 1995년 멕시코 금융위기가 발발했다. 파장은 급속도로 번져 동남아시아를 지나 1997년 한국에서 마침표를 찍게 된다. 한국은 이른바 ‘IMF(국제통화기금) 사태’라는 가슴 아픈 외환위기를 마주했다.
2006년에는 정점을 찍은 미국 금리가 하락하자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졌다. 대출 상환 능력이 부족해진 미국의 많은 기업과 서민들은 눈물을 흘려야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잠잠했던 국제 금리는 경기 부양을 위해 돈을 풀자, 지난해부터 다시 급격히 치솟았다. 급격한 금리 인상은 세계 경제에 충격파를 던졌다. 그 여파는 금융 시장에 예기치 못한 타격을 입히기도 했다.
연준은 지난 13일(현지 시간)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성명을 통해 5.25~5.5%였던 기준금리를 유지하기로 했다. 내년엔 금리 중간값을 4.6%로 예상하며 3차례 인하 가능성을 시사했다.
며칠 뒤 뉴욕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는 금리 인하론은 위원 개인 생각에 그친다며 ‘시기상조’라고 일축했다. 러시아는 오히려 기준금리를 16%까지 올렸다. 연준 동결 발표와는 달리 금리 인상 여지가 조금은 남았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요동치는 세계 경제 파도 속에서 우리나라는 자신만의 경제정책 방향을 견지해야 할 시기에 놓였다. 미국 중앙은행 통화정책 결정에 각국의 주목도가 어느 때보다 높아진 상황이다. 불안정한 공급망과 물가상승은 각국 경제정책 입안자들에게 새로운 도전을 안겨주고 있다.
정부는 실업률과 경제 성장률 등 국내 경제 지표를 꼼꼼히 분석해 국제 금리가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예의주시해야 한다. 특히 중·장기 인플레이션 압박에 대응해 물가 안정을 최우선하는 반면, 기업 투자 활성화를 지원하는 방향도 놓쳐서는 안 된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요소는 국가 간 전쟁 등 지정학적 리스크다. 미-중 무역전쟁, 러시아-우크라이나 간 충돌 등 우리나라 역시 글로벌 이슈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에너지 가격 급등과 공급망 불안정은 기업 활동에 직격타를 입힐 뿐만 아니라 국민 삶의 질에도 영향을 준다. 정부는 에너지 자립도를 높이고, 다변화한 공급망을 확보하기 위해 전략적 대응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정부가 경제 방향타(方向舵)를 잡는 것은 어느 한 순간의 결정이 아니다. 연속적인 데이터 분석과 글로벌 이해도를 바탕으로 한 장기적 계획 수립에 달려 있다. 정부는 전문적이면서 시의성을 겸비한 정책 도출에 더욱 정진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국가 경제 콘트롤타워인 기획재정부는 재정 정책 유연성을 확보해야 한다. 경기에 부합하는 탄력적인 재정 운영으로 시장 신뢰를 유지해야 한다. 필요할 경우 적절한 재정 지출 확대로 경제에 긍정적인 자극을 줄 수도 있다.
불안정한 금융 시장을 달래기 위해선 가계 부채와 금융기관의 건전성 감시를 강화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시장 불안정성에 대비할 금융 안정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일궈내지 못한 ‘재정준칙’ 입법이 그에 대한 방안일 수 있겠다.
정부는 국제 금리 변동에 영향을 많이 받는 국내 수출입 기업들을 보호해야 한다. 기업 보호는 중·장기적 관점에서 고용문제와도 직결한다. 외국인 직접투자(FDI) 유치와 같은 무역 정책과 투자 유인 조정 등도 꾀해야 한다.
지금 국내 경제는 변화의 물결을 주도할 항해사가 필요한 시점이다. 정부는 국제적 긴장감을 예민하게 포착해 국내 경제 여건에 세심하게 반영해야 한다. 정부가 급변하는 세계 경제 파도를 헤쳐나가기 위해 기민하고도 현명한 용단(勇斷)을 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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