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물가에 흔한 버드나무가 알려주는 지혜

김현정 2023. 12. 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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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밖에 남지 않은 달력을 보며 ‘한 해가 또 저무는구나’ 하고 시간이 빨리 지났음을 매번 느끼게 되는 12월입니다. 여기저기 북적거리는 연말행사와 비교되게 식물들은 조용히 겨울을 맞이하죠. 겨울을 맞이한 숲은 무채색으로 변해갑니다. 그런데 이맘때 소나무·잣나무와 같은 바늘잎나무도 아니고, 사철나무·동백 같은 늘푸른나무도 아니면서 푸른 이파리를 유지하는 나무들이 있어요. 그중에서 냇가에 주로 사는 버드나무에 관해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우리 주변 식물들의 비밀 이야기: 버드나무

버드나무의 이름은 ‘부드럽다’ ’부들부들하다’라는 말에서 왔다고도 하고 뿌리나 가지·줄기가 잘 뻗어가고 잘 휘어서 ‘뻗는다’는 뜻으로 버드나무라고 한다고도 해요. 버드나무는 봄에 꽃을 피우고 곧바로 솜털 같은 열매를 만들어냅니다. 씨앗으로 번식할 수도 있지만 흔히 꺾꽂이라고 부르는 방식으로 번식이 잘되죠. 자라는 곳이 주로 물가라서 꺾인 가지가 물을 따라 흘러가다가 물가 어딘가에 정착해서 뿌리를 내고 자랄 수도 있습니다. 버드나무의 속명 살릭스(Salix)는 켈트어의 sal(가깝다)과 lis(물)의 합성어로 추정되는데요. 그 뜻대로라면 과거 사람들도 물 가까이에 사는 나무라는 것을 인지하고 이름을 지었을 것 같죠.

옛날 그림이나 시 등에는 버드나무가 꽤 자주 등장합니다. 버드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마치 헤어지는 연인의 손짓 같아 보일 수도 있고, 부드러운 모습이 여인의 모습을 상징하는 것 같기도 하고,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겠지만 그냥 흔하기 때문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예술작품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버드나무의 쓰임새를 흔히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 주변 식물들의 비밀 이야기: 버드나무


조리나 바구니 등은 매일 쓰고 부엌에서도 사용하는 물건이라 작고 가벼워야 하죠. 이런 도구를 만들 땐 대나무·싸리나무 등 다양한 나무들을 사용했는데 버드나무도 아주 유용했습니다. 곡식을 까불러서 속이 찬 낱알과 그렇지 않은 것을 분리하는 것을 ‘키’라고 하는데 주로 버드나무, 특히 키버들이라고 하는 종류로 많이 만들었죠.

양치질이라고 부르는 이 닦는 행위도 버드나무와 관계가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입안을 가시어 헹궈 내는 일을 양지 또는 양지질이라고 했는데, 한자를 풀어보면 버드나무 양(楊)에 가지 지(枝)자를 썼죠. 한마디로 버드나무 가지예요. 옛날에는 버드나무를 잘근잘근 씹어 솔처럼 만들어서 이를 닦거나 조각내서 이 사이의 음식물 찌꺼기를 빼내거나 했습니다. 그래서 ‘양지질’이라고 부르던 것이 ‘양치질’이 됐다고 해요. 양지는 또한 나무로 만든 이쑤시개를 뜻해요. 불교도들에게 냇버들가지로 이를 깨끗이 하게 한 데서 유래하죠. 할머니·할아버지 등이 이쑤시개를 흔히 ‘요지’라고 부르곤 하는데요. 요지는 이쑤시개를 이르는 일본어로, 역시 한자로 ‘楊枝’라고 씁니다.

우리 주변 식물들의 비밀 이야기: 버드나무

이러한 생필품 말고도 버드나무가 유용하게 쓰이는 분야가 또 있습니다. 바로 의약품인데요. 인류는 오래전부터 진통과 소염, 해열을 목적으로 약을 써 왔어요. 이집트에서 발견된 파피루스에는 이미 기원전 1500년 무렵에 버드나무와 포플러나무 껍질을 사용해서 통증과 열을 치료했다고 기록돼 있죠. 기원전 5세기 무렵 히포크라테스가 버드나무 껍질에서 추출한 즙을 사용해 통증을 다스렸다는 기록도 있고요. 『동의보감』 등 한의서에도 버드나무 껍질을 달여 먹으면 진통 효과가 있다는 내용이 나오죠. 버드나무 껍질에서 이러한 효과를 나타내는 성분은 살리실산인데, 위장장애 등의 부작용이 있어요. 이를 개선하기 위해 1897년 펠릭스 호프만이 아세틸살리실산을 합성했죠. 바로 최초로 합성된 해열∙소염 진통제 아스피린입니다.

버드나무는 겨울이 되어도 잎이 단풍 들거나 시들지 않고 거의 이듬해 1월까지도 매달려 있습니다.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물 공급이 원활해서 그런 게 아닐까요. 물가를 좋아하는 버드나무가 그 선택으로 인해 다른 나무보다 오랜 시간 광합성을 하고 그 에너지로 쑥쑥 자라는 것은 결국 자신에게 맞는 환경에서 사는 덕분이라고 봐요. 연말연시를 맞이해서 나에게 맞는 환경은 어떤 곳인지 생각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글·그림=황경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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