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하로바·볼쇼이 발레 갈라… 러-우 전쟁 안 끝났는데 괜찮을까?
한국 정부, 자유로운 민간 교류 범위 넘는 상징성 고심
국내 주요 공연장, 예술단체, 기획사가 연말을 맞아 2024년 연간 프로그램을 잇따라 발표하고 있다. 이 가운데 발레 장르는 눈길을 끄는 공연이 많다. 국립발레단이 존 노이마이어의 ‘인어공주’(5월)를 처음 선보이며, 40주년을 맞이하는 유니버설 발레단은 케네스 맥밀란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8년 만에 공연한다. 그리고 예술의전당은 발레리나 박세은을 앞세운 ‘파리오페라발레 에투알 갈라’(7월)를 준비했다. 또 컨템포러리 발레를 내건 서울시발레단이 내년 중반 창단 공연을 할 예정이다.
여기에 러시아 스타 무용수들의 내한 공연이 예정돼 있다. 우선 마린스키 발레단 수석무용수인 김기민의 ‘발레 수프림’(5월)이 2년 만에 열린다. 이에 앞서 볼쇼이 발레단 간판스타 스베틀라나 자하로바의 ‘모댄스’(4월)와 볼쇼이 발레단 주역 무용수들의 ‘볼쇼이 발레 갈라’(4월)도 한국 관객을 찾아올 예정이다. ‘모댄스’는 패션 브랜드 샤넬 설립자 코코 샤넬의 일대기를 담은 작품으로 2019년 러시아 볼쇼이 발레단에서 자하로바를 위해 만들어졌다. 자하로바와 함께 볼쇼이 발레단 주역 등 단원들이 출연한다. 당초 2021년 한국에서 공연될 예정이었으니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미뤄졌다. 그리고 ‘모댄스’와 비슷한 시기에 열리는 ‘볼쇼이 발레 갈라’는 볼쇼이 발레단 수석무용수 등이 다수 출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하 러-우 전쟁)이 1년 10개월째 진행 중이어서 ‘모댄스’와 ‘볼쇼이 발레 갈라’의 내한 공연이 논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한 공연이 실제로 이뤄질지도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이런 우려 때문에 ‘발레 수프림’은 김기민과 콤비로 오는 마린스키 발레단 수석 발레리나 외엔 영국, 독일, 프랑스, 미국 등의 발레단에서 활동하는 무용수들과 함께할 예정이다. 앞서 2022년에도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과 볼쇼이 발레단의 주역들이 대거 참여할 예정이었으나 전쟁 관련 논란을 의식해 빼는 것으로 결정됐다.
‘모댄스’ 기획사 관계자는 “정치와 예술은 분리돼야 한다. 순수한 문화예술의 가치는 이어가야 한다”면서 “러시아 발레를 기다리는 공연 애호가들도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볼쇼이 발레 갈라’ 기획사 관계자는 “최근 푸틴 대통령이 한러 관계 개선 의지를 드러냈다. 이런 상황에서 양국간 문화예술 교류만이라도 좀 더 늘리면 좋지 않을까 싶다”고 밝혔다.
러-우 전쟁 직후 세계 각국에서 러시아 예술가와 예술단체의 공연이 중단됐지만, 전쟁이 길어지며 ‘친(親)푸틴’ 성향이 아닌 러시아 예술가들은 서방 무대에 다시 서고 있다. 우리나라도 한-러 민간 예술가(단체) 사이의 자율적 교류를 제한하고 있지 않아서 그동안 연주자, 지휘자, 무용수 등이 내한한 바 있다. 이 중에는 지난해 10월 서울국제발레축제의 ‘월드 발레스타 갈라’에 출연한 볼쇼이 발레단 수석무용수인 알리오나 코발료바와 솔리스트인 드미트리 비스쿠벤코도 있다. 하지만 자하로바와 ‘볼쇼이 발레 갈라’는 러-우 전쟁 이후 내한한 러시아 예술가들과 성격이 다르다는 지적이다.
자하로바는 러시아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와 함께 친푸틴 예술가로 손꼽힌다. 푸틴이 자하로바의 생일에 직접 선물과 꽃을 보낼 정도. 러시아 두마(연방의회 하원)를 두 차례 역임한 자하로바는 푸틴으로부터 훈장을 받기도 했다. 이 때문에 러-우 전쟁 이후 그의 해외 공연은 러시아와 친밀한 카자흐스탄,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중국에서만 이뤄졌다. 전쟁 이전에 세계 각국의 러브콜을 받던 것과 천양지차다. 만약 한국에서 ‘모댄스’ 공연이 예정대로 이뤄진다면 러-우 전쟁 이후 러시아와 대립하는 국가들 가운데 처음이다. 한국도 미국 주도로 러시아를 제재하는 ‘글로벌 수출통제 연합’(GECC)에 속해 있다.
‘볼쇼이 발레 갈라’ 역시 자하로바의 ‘모댄스’와 비슷한 처지다. 볼쇼이 발레단이 마린스키 발레단과 함께 러시아를 대표하는 국립 발레단이기 때문이다. 발레는 냉전 시절 소련의 외교적 병기로 활용되는 등 정치적 상징성이 크다. 우크라이나 문화부 장관이 지난해 12월 세계 각국에 러시아의 발레 공연을 보이콧해 달라고 부탁한 것도 이런 맥락 때문이다. 서방의 대다수 국가는 러-우 전쟁 이후 자국 문화예술 기관에 볼쇼이 발레단을 비롯해 러시아 국립 기관(단체)과 작업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지만, 러시아에 뿌리를 둔 클래식 발레 공연까지 중단하지는 않고 있다.
그런데, 지난해 10월 일본 도쿄에서 러시아 국립 모이세예프 발레단 공연이 올라가 논란이 일었다. 러시아를 비롯해 각국 민속무용을 기반으로 한 모이세예프 발레단은 당초 2020년 예정됐다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연기됐었다. 이 행사를 주최한 일러교류협회는 “정치적으로 어려운 시기일수록 문화예술 교류가 중요하다”며 강행했다. 모이세예프 발레단이 워낙 권위 있는 단체인 데다 30년 만에 일본을 방문했기 때문에 3회 공연은 거의 매진을 기록했다. 하지만 공연을 앞두고 우크라이나 출신 피란민과 러시아에 비판적인 일본인들이 공연 중단 요청 서명운동을 벌이는가 하면 공연 기간 극장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문화체육관광부 예술국 관계자는 “자하로바와 볼쇼이 발레 갈라는 그 상징성 때문에 정부가 생각하는 민간 예술가(단체)의 자유로운 교류 범위와 다소 거리가 있다. 두 내한공연은 논란이 일어날 수 있는 예민한 문제여서 좀 더 알아봐야 할 것 같다”면서 “정부는 민간에서도 러-우 전쟁에 대한 국제사회의 정서를 고려해 교류를 추진하길 바라고 있다”고 밝혔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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