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포커스] 전문가와 점쟁이 사이

2023. 12. 18.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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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이맘때가 되면 한반도 정세 평가와 전망에 관련된 발표나 세미나가 이어진다.

귀갓길 택시 안에서는 운전기사한테서 내년에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일장 강연을 조용히 들어야 했다.

많은 사람이 내년 한반도를 전망하면서 가장 큰 변수가 미국 대선이라고 한다.

나도 이제 북한과 한반도 문제에 있어 점쟁이가 아닌 전문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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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군사안보)


매년 이맘때가 되면 한반도 정세 평가와 전망에 관련된 발표나 세미나가 이어진다. 이와 관련해 글이나 발제를 부탁받곤 한다. 연말에 북한이 전원회의를 마치고 그 결과를 발표하고 나면 결국 다시 해야 할 것인데 지금 이걸 꼭 해야 하나 투덜거린다. 결국 상상력을 동원해 공상과학영화 시나리오를 작성해 발표한다. 연례행사와 같은 일이라 안 하면 뭔가 찜찜하지만 결국 북한의 발표로 부끄러움이 밀려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망 기사를 작성한다며 무작정 “내년엔 어떨까요”라는 질문을 던지는 기자들의 전화를 하루에도 몇 통씩 받게 된다. 간혹 북한이 언제쯤 어떤 군사적 행동을 할 것인지, 다음엔 어떤 미사일을 쏠지, 7차 핵실험은 언제 할지와 같이 구체적인 질문을 해주면 고맙기까지 하다. 내 답변의 첫마디는 “그런 건 점쟁이에게 물어보세요”라고 일단 기선 제압부터 하고 시작한다. 그래놓고는 스스로 점쟁이로 빙의되어 설을 푼다. 전화를 내려놓고 나면 허탈하고 얼굴이 화끈거린다.

올해도 다르지 않지만, 질문만은 좀 더 자극적이다. 군사적 충돌 가능성을 넘어 전쟁까지 언급한다. 아마 9·19 군사합의가 사실상 실효성을 잃게 된 때문일 것이다. 경제 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나온 질문도 남북한 전면전 가능성이다. 동창 송년 모임에 갔더니 북한 전문가 왔다며 술안주 삼아 “이러다 전쟁 나는 거 아니냐”라는 질문 아닌 질문을 던진다. 귀갓길 택시 안에서는 운전기사한테서 내년에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일장 강연을 조용히 들어야 했다.

책상에 앉아 지난해 이맘때 썼던 글들과 인터뷰 내용을 뒤적거렸다. 소설같은 지난 글을 다시 읽는다는 것이 유쾌한 일은 아니다. 올해 북한과 한반도에 대한 예측 중 나를 가장 실망스럽게 한 것은 그 어느 때보다 남북 간 군사 충돌 가능성이 큰 해로 보았다는 것. 북한이 경제에 매진하는 환경 조성을 위해선 군사 대결 중심의 현 국면 돌파가 필요하며, 이에 따라 역설적으로 군사 행동을 감행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남북 간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해서 예측이 틀렸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북한을 예측하고 전망하는 것은 맞고 틀림의 문제가 아니다. 당위성이나 자기 희망적 사고가 아니라 나름의 논리적 근거를 바탕으로 예측하고 전망했다면 부족함의 문제일 뿐이다.

많은 사람이 내년 한반도를 전망하면서 가장 큰 변수가 미국 대선이라고 한다. 그러나 한반도 문제는 미 유권자들의 선택에 고려 요소가 아니다. 북한은 학습효과를 통해 미 대선 전후 1년간은 미국이 자신들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으리란 걸 알고 있다. 북·중, 북·러 수교 75주년인 내년, 시진핑 중국 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북 가능성과 양국 관계 심화가 한반도에 더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 내년은 북한이 2025년까지인 5개년 계획의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내치(內治)에 집중해야 할 시기이기도 하다. 적당한 수준에서의 군사적 긴장감과 위기감을 유지하면서도 경제집중 노선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미래를 예측하고 전망하더라도 그 결과는 누구도 확신하기 어렵다. 다양한 변수에 둘러싸인 한반도에 미래에 어떠한 일들이 벌어질 것인지 정확하게 예측하는 건 신의 영역이다. 현재만이라도 제대로 볼 수 있다면 앞으로 나타날 변화의 요건을 도출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북한이 무엇을, 언제 할까를 단순하게 예상하기보다 북한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고 남북 관계가 어떠한 상태인지 정확히 인식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나도 이제 북한과 한반도 문제에 있어 점쟁이가 아닌 전문가가 되고 싶다.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군사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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