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보편적 출생등록제부터 서두르자

2023. 12. 18. 04:0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정익중
아동권리보장원 원장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외국인 아동의 출생 미등록률
한국인 아동의 40배

미등록 아동, 매매·학대 등
인권 사각지대에 떨어져

한국 국적 주자는 게 아니다
출생 등록 통해 공적체계에서
최소한 보호는 제공해야

우리나라는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다인종·다문화 국가에 진입한다. 내년에 국내 거주자 중 외국인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다인종·다문화 국가 기준인 5%를 돌파한다. 만약 불법체류자를 포함한다면 현재도 5%를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한국은 심각한 저출산·고령화 상황이므로 국가 필요에 따라 앞으로 훨씬 더 많은 외국인이 함께 살게 될 것이다. 그러면 과연 우리 사회는 다인종·다문화 국가로서 외국인과 공존할 준비가 되었는가. 안타깝게도 아직은 준비가 부족하다.

국내에서 태어난 외국인 아동은 태어난 순간부터 차별을 받는다. 올해 초 감사원 발표에서 2015~2022년 출생 미등록 영유아는 약 6000명이었는데, 그중 출생신고 의무가 없는 외국인이 약 4000명이었다. 단순 계산으로도 외국인 아동의 출생 미등록 확률이 40배나 더 높다.

의료기관의 출생정보 제출을 의무화하고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는 경우 지자체장이 직권으로 출생 등록해야 한다고 규정한 출생통보제가 내년 7월 시행 예정이지만, 외국인 아동은 출생통보제 대상에서도 제외된다.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은 그 적용 대상을 국민으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현행법상 국내에서 태어나 체류하는 외국인 아동은 부모의 국적국이나 그 주한 대사관에 출생신고를 하고 국내에서 90일을 초과해 체류하는 때에만 외국인 등록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외국인 부모가 가족 동반이 허용되지 않는 체류 자격이거나 불법체류 중인 경우, 혹은 난민이거나 무국적자인 경우에는 이마저도 쉽지 않다. 이런 이유로 출생 등록을 하지 못한 아동은 ‘존재하지 않는 아이’가 되어 적법한 체류 자격을 부여받지 못하고 외국인 등록도 할 수 없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와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한국에서 태어난 모든 아동이 부모의 법적 지위 또는 국적과 상관없이 한국 정부에 출생 신고를 하도록 보장하는 보편적 출생등록제를 마련할 것을 우리나라에 권고했지만 정부는 아직 이를 이행하지 못했다.

미등록 외국인 아동은 영아 매매, 불법 입양 등의 위험에 노출되거나 합법체류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모든 공적 사회체계 밖에 존재한다. 존재를 증명할 수 없는 정체성 문제뿐만 아니라 본인 인증을 못해 휴대전화 가입이나 통장 개설이 불가하고, 건강보험 가입이 어렵거나 학교 취학 통지조차 받지 못하는 등 건강권·교육권 침해 문제를 경험한다. 필수 예방접종, 의무교육 등 일부 영역에서는 미등록 외국인 아동도 이용할 수 있지만 당사자는 물론 업무 담당자마저 이런 제도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해 사실상 이용할 수 없는 상황도 빈번히 발생한다.

출생 등록이 불가한 외국인 아동은 학대 피해에도 취약하다. 주변에서 섣불리 개입했다가 아동 상황만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 탓에 신고 자체를 꺼려 외국인 아동학대가 쉽게 노출되지 않는다. 불행 중 다행으로 학대로 신고돼 외국인 부모가 가해자임이 밝혀져도 문제다. 벌금형이라도 나오면 그 부모는 본국으로 송환되고 부모와 분리된 학대 피해 외국인 아동에 대한 돌봄 공백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피해자는 학대피해아동쉼터 등과 같은 시설에 배치되고 수급비를 지원받는데, 국민이 아닌 미등록 외국인 아동은 정부로부터 수급비를 지원받지 못해 시설에 입소하기도 어렵다.

아동의 출생 등록될 권리는 인간의 기본권이다. 이는 외국인 아동에게 한국 국적을 주자는 것이 아니다. 출생 등록이 돼야 외국인 아동도 공적 체계에서 최소한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이는 인도적 차원은 물론 관리적 차원에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 출생한 아이 수를 정확하게 모르는데 무슨 정책이 가능할까. 모든 아동의 출생 정보를 누수 없이 획득해야 인구정책이나 질병통제 차원에서도 체계적 관리가 가능하다.

수많은 아동 관련 단체들이 함께한 ‘보편적 출생신고 네트워크’는 외국인 아동 출생 등록 법제화 캠페인을 지속하고 있다. 이러한 목소리가 국회로 전달돼 다인종·다문화 국가로서 제대로 준비할 수 있도록 이른 시일 내 보편적 출생 등록이 법제화되길 기대한다. 우리나라는 저출산·고령화, 다인종·다문화 국가 진입 등 무엇이든 속도가 정말 빠르다. 보편적 출생등록제에서도 속도를 내보자.

정익중
아동권리보장원 원장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