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기온에 따개비 더덕더덕… 올해 ‘못난이 가리비’ 식탁 오른다

김성훈 2023. 12. 18.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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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고성 앞바다 수확 현장 가보니
따개비 제거 간소화 가격 30% 낮춰
방사능 검사·세척 등 신뢰도 높여
갓 수확한 가리비에 따개비가 잔뜩 붙어있는 모습.

경남 고성군 앞바다. 가리비가 가득 담긴 그물 줄이 크레인에 딸려 올라오자 가리비들은 반갑다는 듯 입을 열어 “딱, 딱, 딱” 소리를 냈다. ‘헤엄치는 조개’ 가리비는 패각을 여닫는 근육인 관자가 큼직하게 발달해 고급 식재료로 꼽힌다.

지난 14일 전국 가리비 생산량의 3분의 2를 책임지는 고성 앞바다에선 수확이 한창이었다. 어민들은 가리비 양식장에 떠 있는 부표를 보고 수확 시기를 판단한다. 가리비가 크게 자라면 부표가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가라앉기 때문이다.

가리비 수확은 보통 9월 말부터 다음 해 5월까지 이뤄지지만 올해는 이상고온과 예측 불가능한 해류로 작황이 좋지 않다고 한다. 가리비 가공공장을 운영하는 정해문 효성식품 대표는 내년 3월쯤이면 조업이 모두 끝날 것으로 예상했다.

“매년 국립수산과학원에서 굴 씨앗 방사 시기를 알려줍니다. 알이 해류를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알이 줄에 잘 붙을 수 있는 시기에 뿌려줘야 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올해는 굴이 엉뚱하게 가리비에 많이 붙었어요. 그렇다 보니 가리비에 갈 영양분을 함께 붙은 굴이 흡수해서 가리비가 자라지 못했어요.”

가리비는 바닷속에서 밧줄에 고정해 키우다 보니 껍질에 다른 생물들이 붙게 마련이다. 올여름 해수 온도가 최고 29도까지 치솟으면서 가리비에 붙는 따개비의 양도 훨씬 많아졌다고 한다.

지난 14일 경남 고성군 가리비 양식장에서 가리비가 가득 든 그물망이 크레인으로 들어 올려지고 있다.


가리비는 찜이나 구이로 가열해 먹기 때문에 따개비가 붙어있어도 먹는 데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울퉁불퉁한 모습이 보기 좋지 않아 따개비를 제거해 판매된다. 따개비를 없애는 과정은 수작업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시간도 오래 걸리고, 인건비도 많이 든다. 올해는 고물가로 어민들의 부담이 더 커졌다.

이마트 수산매입팀 문부성 바이어는 추운 작업장에서 따개비를 떼어내는 고령의 할머니들을 보면서 ‘못난이 가리비’ 상품을 구상했다. 신선도, 영양, 맛 등 품질에는 전혀 이상이 없으나 미관상 상품성이 떨어지는 식재료를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전략이다. 따개비 제거 작업을 간소화해 상품 생산 시간은 절반으로 줄였고, 가격도 30% 이상 낮췄다.

“가리비는 굴과 달리 해를 넘기면 죽어버립니다. 잡물을 떼어내려다 상품화 시기를 놓치면 냉동하거나 폐기처분하는데, 1년 농사를 망치게 되는 셈이죠. ‘못난이 가리비’가 나오면서 어민들은 판로가 확보되고, 소비자들은 저렴한 가격에 가리비를 먹을 수 있게 됐습니다.”

가리비의 변신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고성·통영 일대는 전국 최대 굴 산지기도 하다. 석화에서 굴을 분리해 포장하고 상품화하는 노하우가 쌓여있는 곳이다. 이마트와 어민들은 가리비살을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그렇게 탄생한 ‘홍가리비 관자살’은 껍질 버리기를 불편해 했던 젊은 소비자들의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가리비를 가공하는 공장 내부로 들어서면 흡사 반도체 생산라인과 같다. 위생모와 가운을 입고 에어샤워실로 들어서면 강한 바람으로 작은 먼지까지 모두 털어낸다. 손과 장화를 소독하는 과정도 필수적이다. 오염물질이 유입되지 않도록 외부공간과 철저히 분리했다. 세척과 선별 과정을 거친 가리비살은 자동포장 기계로 향해 비닐에 담긴다. 포장이 완료된 가리비살은 수확 당일 자정까지 물류센터로 옮겨지고, 다음날 오전 전국 이마트 매장에 진열된다.

이마트는 가리비와 굴을 소비자가 안전하게 섭취할 수 있도록 방사능 검사를 비롯한 다양한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30여년 어업에 종사한 양모(50)씨는 방사능보다 불황이 더 무섭다고 토로했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이슈가 발생했을 때 업종 전환을 고민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작년보다 매출이 늘었습니다. 품질 관리가 까다로운 대형마트는 신뢰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한 결과인 것 같습니다. 어민들은 방사능보다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는 경기 불황이 더 무섭습니다.”

고성=글·사진 김성훈 기자 hunh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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